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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 시프리앙 가이야르 작품 톺아보기(1)

by 까나리

우리나라에서 시프리앙 가이야르(Cyprien Gaillard, 1980~)는 아마도 대중적으로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닐 것이다. 사진이나 비디오 작업을 하기도 하고, 작품 속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풍경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은 아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시간을 보내면서 비디오를 봐야하고, 또 그 속에 나오는 풍경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대부분이 서양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권의 다름에서 오는 정서적 충돌이랄까. 게다가 나는 비디오나 미디어 기반 작업은 정말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회화 같은 평면 작업은 관람자가 그 앞에 서서 그 내용과 직접 교감할 수 있다. 작품이 매개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관람자를 마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반면 비디오 작업의 경우엔 작품과 나 사이에 비디오를 재생하는 기기나, 스크린 같은 매개가 존재한다. 이 매개가 관람객의 정서가 작품에 곧바로 꽂히는 것을 일정 부분 가로막는다. 나 역시 전공하기 전까지 영상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만이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나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니까(이혼 이후론 남자 볼 때도 얼굴만 본다), 어려운 걸 보기 전에 일단 시프리앙 가이야르의 잘생긴 얼굴로 시작해볼까나.. 어때요 우리 애 잘생겼죠(?)


cyprien gaillard.png 시프리앙 가이야르, 출처 Sprüth Magers 홈페이지


시프리앙 가이야르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스위스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고, 지금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열렸던 전시는 2020년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렸던 개인전이다. <애도: 상실의 끝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 그의 작품을 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표작인 <호수아치(The Lake Arches)>(2007)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대여 요청을 했다가 곧 전시에 출품될 예정으로 대여 불가능 회신을 받았다. 그 이후론 이 젊은 작가의 작품 소장처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직접 문의를 했다. 친절한 담당자분이 이메일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작품을 소장하지는 않고 있으며, 베를린 기반의 갤러리인 스프루스 마거스(Sprüth Magers)에서 작품을 대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덕분에 스프루스 마거스 측에 컨택해서 영상 작품 한 점을 빌릴 수 있었다. 국내에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Real Remnants of Fictive Wars IV)>(도판1)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real remnants of fictive wars IV.jpg 도판1. Real Remnants of Fictive Wars IV, 2004, 35mm 필름비디오, 컬러, 무음, 4분 15초 © Cyprien Gaillard


사실 나는 미디어 작가와 협업을 할 때는 매번 긴장하곤 한다. 물론 전시를 열 때 긴장 안 하는 일도 없긴 하지만서도. 경험했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엄청난 디테일을 요구했다. 빔 프로젝터의 안시(ANSI)나, 스크린의 재질과 규모, HD 플레이어의 사양, 렌즈의 사용시간 등등.. 한 번의 잘못된 의사소통이 신뢰를 깨뜨리고, 그게 기관의 신뢰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였다. 기관과의 신뢰가 깨지면 어떻게 되냐고? 안 그러면 좋겠지만 작가가 그냥 그 나라와는 이제 전시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 때 한 번 신뢰관계를 구축해 놓으면 다음 번에 일하기가 절대적으로 수월해진다. 여기에 따라오는 성취감은 덤이다.


위에서 얘기한 것과는 좀 다르게, 가이야르는 스크린 없이 흰 벽에 투사만 해도 DP가 가능하다고 해주었고 빔 프로젝터 역시 고사양을 요구하지 않았다. "스크린 페인트라도 칠해줄까?"라고 물었더니 그러면 더 좋다고 말해주었을 뿐. 이건 가이야르가 디스플레이를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전시를 하는 것이 작품의 속성과 자신의 의도를 더 잘 드러내기 때문에 말해줬던 것이다.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시리즈는 총 5부작으로 이뤄져있다. 그 중 4번인 도판1의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는 가이야르가 베트남의 한 정글에서 찍은 것이다. 그는 직접 이 정글에 소화기를 설치해두고, 소화기에서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나가는 모습을 35mm 필름에 담았다. 연기는 군데 군데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화면 전체를 뿌옇게 채웠다가 차츰 차츰 베트남의 정글 식물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진다. 가이야르는 디지털 카메라를 쓰지 않고 굳이 35mm 필름 카메라로 찍고 이걸 디지털로 변환했다. 35mm 필름을 사용한 것은 옛날 베트남 전쟁 영화에 나오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적 지식이 조금 필요한데, 35mm 필름은 일반적으로 오래된 영화들에서 사용했던 카메라다. 예를 들자면, 1967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가 대표적이다. 35mm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건 지금의 상업영화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를 위한 편집이나 특수효과 같은 정보 가공에 훨씬 더 용이하고 화질이 선명한 디지털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제작비 절감은 물론이다. (그 와중에도 필름 카메라만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들도 있긴 하다. 키오스크에 적응 못하는 옛날 사람들 같다. 그 중 데미안 샤젤을 제외하면 디지털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필름 카메라의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하면 렌즈가 빛을 모은다. 그 상이 필름의 민감한 셀에 화학작용으로 저장된다. 현상과정을 거치면서 필름에 상이 그 형태로 굳는다. 이 과정에서 필름 그레인이 생긴다. 빛을 받은 입자가 풍화된 느낌을 주는데, 35mm 필름으로 찍을 때 특유의 탁한 색감과 노이즈 같은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가이야르가 원한 것이 바로 이런 뿌옇고 흐릿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흰색의 벽에 낮은 해상도의 빔프로젝트로 투사하면 "오히려 좋아!"가 된 것이다.


실제로 가이야르의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를 보면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이 떠오른다. 그가 이야기한 '옛날 베트남 전쟁 영화 분위기'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만들고 1979년 개봉한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고요했던 베트남의 정글은 곧이어 폭격이 쏟아지면서 연기가 가득찬 곳이 된다. 아래 도판2, 3, 4를 보면 시프리앙 가이야르가 의도한 것이 어떤건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vlcsnap-2014-01-29-15h26m24s154.png 도판2. <지옥의 묵시록> 시작 장면에서의 정글, 1979,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묵시록2.png 도판3. <지옥의 묵시록> 전쟁 이후의 정글, 1979,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아포칼립스 나우.png 도판4. <지옥의 묵시록>에서 연기의 표현, 1979,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여기까지가 시프리앙 가이야르가 작품 표현을 위해 사용한 기술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작품의 내용으로도 들어가보아야 한다.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에서 고요한 베트남의 정글에 피어오르는 소화기의 연기는 이윽고 다시 정글 속으로 흩어진다. 대자연에 인위적으로 사람(작품에서는 시프리앙 가이야르 본인)이 개입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5번 반복되는 것이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시리즈다. 도판5의 다섯번째 시리즈에서는 고풍스러운 프랑스 성을 배경으로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가 사라지는 인간의 개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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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5.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V>, 2004, 35mm 필름을 비디오로 변환

시프리앙 가이야르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마모시키는 것들'과 '인간의 개입'에 대해 보려면 앞서 말했던 <호수아치>(2007)(도판6)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정확히는 이 작품이 그의 작업 전체가 나타내는 바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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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6. <호수아치(The Lake Arches)>, 2007, 1분 39초, 무음, dvd


<호수 아치>는 시프리앙 가이야르가 여름에 자신들의 친구들과 물놀이 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한 작품이다. 핸디캠으로 찍은 것처럼 카메라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친구들 두 명이 호수로 신나게 다이빙을 하는데, 이내 그 중 한 명의 코가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온다. 호수가 너무 얕았기 때문이다. '아프긴 한데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표정으로 걸어나와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남성의 뒤로, 고대 유적지처럼 낡아버린 아케이드 형태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곳의 이름은 불어로 하면 <The Arcades du Lac>, '호수의 아케이드'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이 곳은 1981년 파리 외곽, 베르사유 근처에 지어진 아파트 복합단지다. 이 주택단지는 스페인 건축가인 리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이 설계한 곳인데, 르 코르뷔지에에 대항하면서 포스트 모던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프로젝트 중의 일부다. 만들어질 당시에는 '시민들을 위한 베르사유'로 불리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도 없다. 이유는 그 때 당시 농촌과 이주해 온 난민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주거단지인데, 미디어에서 낙인 찍히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나면서 여론도 돌아섰기 때문이다. 점차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지면서 지역도 쇠퇴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필요하니까 만들었는데 결국 소외받고, 건물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쇠락해간다. 이제는 거의 물 속에 잠긴 고대문명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 와중에 거기에 놀이 삼아 뛰어든 젊은이들이 대조적이다. 쇠락한 정책 앞의 나이브한 놀이판이랄까. 이 지점은 <지옥의 묵시록> 영화와도 비슷하다. 미군들이 베트남 마을 하나 전체를 통으로 날려버리다가도 윈드 서핑을 즐긴다. 물론 내용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광기에 가깝고 가이야르의 작품 속 청년들은 해맑지만, 영화는 분명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와 <호수 아치>를 매개한다. 아니, 오히려 그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These 'monuments', living memories of their time,
personify the fragile strength of a youth having blindly aged. —Laurent Kronental
이 '기념비'들은 그 시대의 살아숨쉬는 기억이자,
눈 먼 채 나이 들어버린 청춘의 유약한 힘을 상징한다. - 로랑 크로넨탈


Laurent_Kronental_-_ArchDaily_(19).jpg 프랑스 사진가 로랑 크로넨탈이 새벽에 찍은 The Arcades du Lac과 82세 노인.



(* 너무 길어져서 두 편으로 쪼개야겠다. 시프리앙 가이야르에 대해 친절하게 한국어로 풀어쓴 글은 지금 현재까지 내가 찾아본 바로는 없다. 그래서 다소 길어지더라도 친절하게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길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이기도 하고. 아, 전시 만들 때 이만큼 공부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덧붙여, 이번 편에서는 애인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해야겠다. 가이야르가 35mm 필름 비디오를 강조할 때부터 그것과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했는데, 영화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시간을 들여 이걸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35mm 필름 영화와 베트남 전쟁사를 다룬 고전영화들, <지옥의 묵시록>이나 <풀메탈자켓>, <플래툰> 같은 영화 목록을 영화 덕후인 그가 알려주었다. 특히 <가상 전쟁의 실제 잔재 IV> 스틸컷 한 장면을 보자마자 바로 "아 이건 <지옥의 묵시록>에서 영감 받았나보다"라고 말해준 덕분에 생각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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