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유령의 언어를 잡아채다

우리를 위한 새로운 시공간 만들기: 박영숙의 사진작업

by 까나리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작가전이나 상부의 지시로 해야했던 전시를 제외하고, 내가 기획전을 만들 때 항상 염두에 뒀던 건 이 전시를 통해 내 인생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였다. 실제로 나는 전시를 만들 때 내 안에서 나온 무수한 질문들에 대답하며 작품 하나 하나를 선택하고 이들을 엮었다. 애도와 관련한 전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는 이미 이혼을 하고 약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고, 이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재정의 해야만 했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던 나의 선택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으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 분명했다. 상실과 후회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혼 이후의 힘든 시간들을 애도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만 내 인생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그래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는데 애도하는 건 더 어려운 문제였다.


전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논문을 읽고,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점차 내 안에서 생겨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상실은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도처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상실감은 '이혼'이라는 커다란 이벤트에서 온 것이 아닌, 사소한 기억들의 총합이었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데서 오는 패배감.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 느끼는 실망감. 어떤 대상이 나의 상상을 완전히 비켜나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이질감. 한 명에게는 며느리로 예쁨 받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시기 받는 마음 사이의 간극. 내 선택으로 만든 가족과 제도적으로 남이 될 때 느끼는 모멸감. 각자의 인생을 착실하게 살아가는 형제자매 사이에서 돌연변이가 된 것 같은 소외감. 이런 혼란들이 더해져서 상실의 강을 이뤘다.


하여튼, 화이트 큐브인 미술관이 나에게 어려웠던 건 그런 점에서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새하얗게 칠해진 정방형의 공간에 작품이 들어오는 순간, 작품이 가지고 있던 맥락이 순식간에 잘려나간다. 화이트 큐브가 비판 받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간 순간도 이것과 닿아있다. 사람들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공공성을 부여했지만, 결국은 미술관도 하나의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어디에 소장되는지, 어떤 전시에 출품되는지에는 미술관을 둘러싼 내외부적 권력이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에 출품될 작품을 선정하고 이야기를 만들 때는 한층 더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글쓰기는 이런 것에서 자유롭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과 미처 몰랐던 것들을 되새기며 박영숙의 사진 작업을 골랐다. 박영숙은 우리나라의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진작가다. 그의 작업 대부분이 다양한 방식으로 굴곡진 여성들의 인생에 바치는 헌사이지만, 미술관에서 전시를 올릴 때는 여성주의적 맥락은 소거하고 상실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었다. 예를 들면 박영숙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미친년 프로젝트_갇힌 몸, 정처없는 마음>(2002)(도판1) 같은 것들이다.


갇힌몸 정처없는 마음.png 도1.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_갇힌 몸 정처없는 마음, 2002


<미친년 프로젝트>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느끼는 소외감, 억압, 착취당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이 부엌에서 고등어를 손질하다가 말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떠올리며 '아들이 살아는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잡아낸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식칼과 피가 흥건한 고등어, 손질하던 고등어를 잡고 있는 맨손 같은 디테일에 눈길이 사로잡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부엌처럼 일상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넋을 놓는 여성들의 서사다.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당함과 소외감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순간 여성들은 쉽게 '미친년'이 된다. 미친년으로 표상된 시공간에서 잠시나마 자유롭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유물론적인 나는 다시 부엌에 갇혀있다. 여전히 고등어를 손질하고, 굽고, 끓이고, 청소를 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여러 순간들에 사로잡힌 채, 부엌에 갇힌 몸 속에서 마음은 정처없이 떠돈다.


박영숙의 여성 해방주의적 작업은 <마녀>(1988)(도판2)에서 시작됐다. 이 작품이 김혜순 시인의 시 <마녀 화형식>을 읽고 마녀로 불리며 희생된 여성들을 위로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박영숙이 스스로 그렇게 밝혔기 때문이다. 박영숙은 <마녀 화형식>의 마지막 문장인 "(…) 몸 전체에 부끄러운 불길을 매단 채"를 읽고 이것을 이미지화했다고 했다. 문학과 시각기호는 이토록 첨예하게 얽혀있고, 각각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태어난 두 작가는 고유한 서사를 가진 여성들을 새로운 공간에 위치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김혜순 시인이 인터뷰에서 "남자 평론가들이 늘 나를 '마녀' 계열로 분류하는데, 조금만 실험적이면 초현실로 규정하고 본다. … 나를 포함해 한국의 숱한 여성 시인들은 '유령'의 목소리로 시를 쓴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1) 떠도는 유령의 언어들을 마치 영매처럼 잡아채어, 현실과 문자 혹은 시각언어를 해체해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witch, 1988.png 도2. 박영숙, 우리 봇물을 트자_마녀, 1988


서양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김혜순 시인이 바리데기에서 전거를 찾았다면, 박영숙은 이 새로운 여성상을 '우마드(WOMAD)'로 표현했다. 삶에 경계를 두지 않고 여기저기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민(nomad)과, 낯선 곳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그 삶을 살아내는 여성(women)의 특징을 합해 우마드라는 21세기의 새로운 여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마드는 네가지 속성의 여신으로 이뤄져있다. 풍요의 여신, 사랑의 여신, 분노의 여신, 죽음의 여신(도판3)이다. 긍정도 부정도,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모두를 끌어안는 풍요의 여신, 성적 수치심과 억압된 성적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끌어내게 하는 사랑의 여신. 전쟁의 논리와 폭력의 언어를 꾸짖는 분노의 여신, 그리고 타자의 아픔을 모두 끌어안고 종국에는 긍정하게 하는 죽음의 여신이다. 우마드가 표상하는 바는 명확하다. 아픔도 슬픔도, 성적 수치심도 쾌락도, 당신의 아픔도 모두 내 것이자 당신의 것이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긍정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가치 개념이 많이 바뀌어 가는 변화무쌍한 세월들을 다 감당해 내었다.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그녀들의 삶은 매우 찬란했고, 현란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이곳에 서있을 수 있다.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고, 주어진 소명을 다 감당하고,
모두 극복하였기에 여기에 서있는 것이 감동이다.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형편으로 서로 다르게 살아낸 그녀들의 삶이 그래서 소중하다."
ㅡ박영숙


arariogallery-park-youngsook-womad-goddess-of-salvation-and-death-2004.jpg 도3.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_헤이리 여신 우마드_구원과 죽음의 여신, 2004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는가를 떠올려보면 나는 '사랑이라는 건 결국에 사라지고, 의리나 책임감만 남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때는 생각했던)는 사람을 선택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한 중대한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책임감으로 그 형태가 천천히 변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나는 책임감이라는 것을 사랑에서 뚝 떼어내서 마치 업무를 대하는 마음처럼 생각했고, 결혼 생활이란 그런 형태의 마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다양하게 무지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사랑과 의리, 우정과 책임감은 끈질기게 한데 뒤섞여있어 반듯하게 떼어낼 수 없다. 이 중 하나를 떼어내어 완벽히 분리하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의 여지를 차단하는 일일 뿐이다.



(1) 김혜순 시인 인터뷰 중 인용: <마녀라니요, 차라리 우리는 유령입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6/2017081600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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