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상실이 빈 공간에 집을 짓는 법: 낸 골딘(Nan Goldin)의 작품

by 까나리

처음 <애도: 상실의 끝에서> 전시를 머릿 속으로 기획할 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정해둔 몇 명의 작가들이 있었다. 대여 가능 여부, 어떤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직관적으로 전시에 꼭 넣고 싶다고 생각했던 몇 작가들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낸 골딘(Nan Goldin, 1953~)이었다. 전시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고, 할당된 예산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작품을 운송해 올 여력은 없었다.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낸 골딘 작품의 소장처를 찾기가 힘들었고, 아주 오래 전에 경주의 우양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전시에서 낸의 작품을 본 게 기억났다. 덕분에 우양미술관의 협조를 구해서 정확히 원했던 의미의 작품 두 점을 전시할 수 있었다.


사진은 특히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의 조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대여해 온 작품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이 작품에 한해서 조도를 상대적으로 낮춰야 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사진의 선정성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었고, 따로 세운 가벽의 구석에 두 점을 전시해야 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아쉬움이 컸다. 작품이 디스플레이 되는 위치는 전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아쉬움을 대신해, 여기서는 낸 골딘의 작업에 대해 자유롭게 풀어써보려 한다.


도1. 붉은 색, 1995, 12 mounted cibachrome, 142x161.3cm, 우양미술관 소장


<붉은 색(RED)>(도판1)은 실제로 전시되었던 우양미술관의 소장품 중 하나다. 낸 골딘의 작품은 주로 시대를 증언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차원에서 해석된다. 실제로 그의 사진들이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드랙퀸이나 마약 중독자들, 레즈비언과 함께 지내면서 당시 미국 기준 '하위 문화'를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에 낸의 작품을 걸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주목한 부분은 증언으로 남은 결과물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낸이 그 생활을 하게 된 과정이었다. 내가 낸의 작품에서 읽어낸 것은 상실한 것으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과 의문, 그리고 그것을 버텨내기 위한 한 인간의 분투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상실은 낸의 마음 속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커다란 집을 지었다.


낸이 11살이던 때 그의 언니인 바바라(Barbara Goldin, 1946~1964)가 자살했다. 철길 위에서 달려오는 기차 앞에 누운 채였다. 부모님은 어린 낸에게 성 정체성으로 갈등을 겪었던 바바라의 선택을 사고사로 알렸다. 딸의 자살을 용인할 수 없어 동네에도 바바라의 죽음을 쉬쉬했다고 한다. 바바라의 자살로 인한 충격과 이를 숨기려 했던 부모님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낸은 14살에 가출했다. 언니의 자살 이야기는 <자매, 성자와 시빌>(Sisters, Saints and Sibyls, 2004–2022, 3Ch Video, 35분 17초)(도판2)이라는 작품이 되었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겠다는 집념과 끈기, LGBTQ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2024년에 와 스쳐지나가며 보기엔 마치 거대 담론처럼 보인다. 한 개인의 처절함, 생존을 건 기록, 함께 있어도 느끼는 외로움, 어찌할 도리 없는 두려움 같은 울퉁불퉁한 감정들은 정제된 언어와 함께 화이트 큐브에 걸리는 순간 더 매끈해진다.


그러나 사실 낸의 시선은 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상실에서 출발했다. 언니는 왜 죽었을까, 부모님은 왜 이걸 숨기고 싶어했을까, 언니는 열두살에 정신과 시설에 구금되어서 어떤 종류의 폭력에 시달렸을까, 그것은 정말로 잘못이었을까. 이것들이 낸이 살아가면서 말하기로 한 것들이다. 낸은 헤로인 중독으로 치료 받고, 손목 부상으로 인한 진통제에 중독되어 또 다시 치료받았다. 1980년대 친하게 지냈던 낸의 친구 중 많은 이들은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자 그대로 자신의 생을 건 의문들과 남겨졌다는 사실에 대한 외로움은 낸의 마음 속에 차곡히 집을 짓는 벽돌이 되었다.


잘못된 것들이 비밀로 부쳐지고, 사람들을 파괴한다.
내 언니는 이 모든 것들의 희생양이었지만, 그녀는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반란이 내게도 시작점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낸 골딘

The wrong things are kept secret, and that destroys people.
My sister was a victim of all that, but she knew how to fight back.
Her rebellion was a starting point for my own.
She showed me the way.

—Nan Goldin (1)


도2. 낸 골딘, <자매, 성자와 시빌(2004-2022)> 설치 전경, © Nan Goldin, 사진 Lucy Dawkins, 출처 가고시안 홈페이지


언어와 시각기호가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미끄러져 나가는 동안에도 낸은 착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았다. 약 50년, 반 세기의 시간을 건너 내가 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매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처절한 집중력과 그에 따른 건조한 시선이다. 낸의 작품 중 유명한 것들은 침대 위에 남자친구인 브라이언과 함께 앉아있는 자화상이다.(도판3, 도판4) 해가 지는 시각인듯 오렌지빛으로 물든 방 안에서 낸은 브라이언과 함께 침대에 앉아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따뜻해야 할 공간에서 이 둘의 시선은 겹치는 법이 없다. 침대 위에서 멀리를 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 브라이언의 모습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낸의 시선은 혼자 있기엔 연약하고, 함께 있어도 고독하며, 사랑해도 갈등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3. 낸 골딘, 브라이언과 기모노를 입은 낸, 1983, © Nan Goldin,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도4. 낸 골딘, 침대에서의 낸과 브라이언, 1983, 58.9x39.4cm, © 2024 Nan Goldin, 출처 MoMA


실제로 브라이언은 낸에게 자주 폭력을 휘둘렀다. 3년간의 관계 끝에 마침내 낸은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흠씬 두들겨맞은 한 달 후의 낸>(도판5)은 그 결연한 마음의 증거물이다. 폭행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빨갛게 피가 고인 왼쪽 눈, 양쪽 눈 아래의 멍으로 브라이언이 휘두른 폭력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자기파괴적인 관계가 남긴 상흔이라기엔 화장을 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채 렌즈를 응시하는 낸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외출 전 화장을 하고 립스틱을 바르며 자신의 카메라로 얻어맞은 자기 모습을 찍었을 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자화상은 더이상 폭력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않을 것이며, 내게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 그 관계를 미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살아가며 겪는 고통들은 때때로 나를 자기파괴적인 결정으로 몰아넣는다. 그 자기파괴를 멈출 힘 또한 자신에게만 있다. 고통은 빈 공간이었다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것이 된다.


도5. 낸 골딘, 흠씬 두들겨 맞은 한 달 후의 낸, 1984, 69.5x101.5 cm © Nan Goldin, 출처 테이트


낸은 자신이 약물중독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그는 자신이 찍은 동성애자들, 여장남자, 마약중독자들에 대해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하길 거부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그 사람들의 사진을 사용할 때마다 사용해도 될지 동의를 구한다고 했다.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다. 낸에게 그 사람들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그 사람들은 "피가 아닌, 순간을 위해서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비슷한 도덕의식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2) 낸이 언니를 잃고 자기 속에서 피어오른 수많은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은 세계가 양분해 규정해둔 성별의식에 대항하는 증거가 되었다. 낸의 작품은 또 가족이란 혈연으로만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사람은 왜 사랑하고, 갈등하고, 이해하고, 집착하는지에 대한 자기표현이다. 이렇게 상실은 거대한 빈 공간이었다가, 내가 부여한 힘으로 다른 가치관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을 짓는다.







(1) 도판2 및 낸 골딘 언급 인용 출처 : https://gagosian.com/exhibitions/2024/nan-goldin-sisters-saints-sibyls/

가고시안이 기재한 바에 따르면 바바라는 12살부터 6년간 정신과 구금 시설을 드나들었고, 주로 반항적인 행동이나 성적으로 도발하는 행동, 바람직하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고 한다. 또, 나이 많은 흑인 남성과 데이트하고, 다리 털을 깎는 걸 거부하고, 성 정체성을 혼란스러워 한다는 보고서가 있었다고 한다.


(2) 낸 골딘 언급 인용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4/mar/23/nan-goldin-photographer-wanted-get-high-earl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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