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새겨지는 이미지

말하기 대신 보여주기: 빌 비올라(Bill Viola)의 비디오 작품

by 까나리

일상적으로 불안을 마주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약해지는 나 자신의 체력이나, 원치 않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으로 소진되었을 때, 또 그 경험으로 인해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두려워질 때. 이 감정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 자신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다른 예시는 어떨까. 부모님의 신체 기능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아야 할 때, 나를 세상에 있게 하고 먹이고 입힌 존재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몸부림쳐야 할 때. 의료 용어로는 더이상 적극적 치료의 의미가 없어 서서히 죽어가는 하나의 존재를 바라보아야 할 때. 보존적 치료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경제적 부담을 지며 해야하는지 두려워질 때. 아무도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은데도 결정은 내 손에 달렸을 때.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내정된 죽음과 그로 인한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다.


모순적이게도 이 불안감은 살아있는 것, 즉 실존과 끝없는 고리를 이루며 서로 만난다. 자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온전한 존재로 남고자 하는 욕망이다. 가까운 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살아남은 자의 남은 생에생긴 빈 자리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는 욕망이다. 어디까지가 의료적 행위의 여정이고 이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은 내가 맺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삶은 계속되고 또 언젠가 끝난다.


빌 비올라(Bill Viola)의 작품들은 대개 비디오 아트에서 시간개념의 사용이나, 청각을 끌어들여 관객의 경험을 확장시켜온 의미에 집중해 해석된다. 실제로 빌 비올라의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 차원의 비디오 재생을 넘어, 공간에 대한 전체 경험에 가깝다. 빌 비올라 스튜디오가 작품을 전시할 때 공간에 꼭 맞는 스크린과 프로젝션, 사운드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2년 빌 비올라의 <트리스탄의 승천(Tristan's Ascension)>과 <불의 여인(Fire Woman)>을 전시할 때, 스튜디오 측에서는 기획자인 나에게 새로 제작해야 하는 스크린의 크기와 재질, 벽면의 페인트 컬러, 가벽의 위치와 높이, 흡음재를 부착해야 하는 위치가 기재된 정확하고 상세한 도면을 보내주었다. 무려 4m의 천고에 맞게 새로 제작한 약 3.6m의 대형 스크린과 벽면에 부착된 스피커, 혹여나 소리가 다른 공간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스크린 맞은 편 벽에 부착한 흡음재로 공간이 완성되었다. 들인 공만큼이나 오롯이 빌 비올라의 작품만을 위해 최적화 된 공간이었다. 거대한 스크린 앞에 앉은 관람객들은 끝없이 쏟아지는 물줄기의 소리를 듣고 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여인의 이미지를 보며 완전히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빌 비올라의 작품이 단순한 비디오가 아닌, 공간에 대한 경험 그 자체로 여겨지는 이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빌 비올라의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죽음과 구원이다. 54분간의 영상인 죽음(The Passing, 1991)(도판1, 도판2)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제작한 작품이다. 숨소리와 함께 재생되는 영상은 표면적으로 크게 두가지 주제를 나타낸다. 아이의 탄생과 어머니의 죽음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감싸안은 담요는 곧바로 물 속에서 인물과 함께 감겨드는 천조각으로 변한다.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물을 둘러싼 천은 사망한 사람을 덮는 천으로 바뀌었다가, 또다시 물 속에 잠기는 이미지로 순식간에 바뀐다. 화면은 일렁대는 촛불이었다가, 물 속이었다가, 사막이었다가, 텅 빈 사원이 된다. 영상은 아이의 탄생과 노인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나의 맥락으로 전달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관람자를 물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사막으로 밀어냈다가 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존재의 필멸성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렇게 이뤄진 불합리해보이는 조합은 계속해서 물 속으로 잠겨드는 것처럼 막연한 공포감으로 이어진다.


도1. 빌 비올라, 죽음, 1991, 54분 13초, 스미스소니언미술관 소장. ⓒ1991 Bill Viola.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NY.
도2. 빌 비올라, 죽음, 1991, 54분 13초, 스미스소니언미술관 소장. ⓒ1991 Bill Viola.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NY.


비올라는 스크린 속에 있는 이미지가 삶의 과정이고, 이 이미지는 우리 몸에 새겨진다고 했다. '인간은 왜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가'라는 결코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그는 말하기(to be said) 대신 보여주기(to be shown)로 응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어가는 과정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이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적인 이미지로 흘러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런던에 위치한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 Cathedral)에 설치된 빌 비올라의 작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순교자들(Martyrs(Earth, Air, Fire, Water), 2014)(도판3, 4)은 영국 내 성당에 미디어로서는 최초로 영구설치된 작품이다. 4패널로 설치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일반적인 옛날 기독교 교회 건물에 사용되던 제단화의 형식을 변형한 것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사도 바울을 주교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기독교 성인들이 순교한 방식은 서양권에서 작품화 되면서 흔히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 걸린 빌 비올라의 작품 역시 사도 바울은 아니지만,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도판3에서 보이는 가장 오른쪽 패널이다. 거꾸로 매달린 성인은 물을 맞으며 순교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서구인들은 세상만물을 구성하는 4원소가 흙, 공기, 불, 물이라고 믿었다. 영상에서 이 네가지 원소에 의해 순교하는 성인의 이미지는 결국 세상 모든 것들에 의해 고통받고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한다. 대성당에 설치된 이 작품은 결국 현대적으로 변용한 성화이면서, 살아가는 동안 고통받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도3. 세인트폴 대성당에 설치된 빌 비올라의 <순교자들>. Photo: Peter Mallet. 출처 「아폴로」리뷰.
도4. <순교자들> 확대 이미지. 출처 세인트폴 대성당 홈페이지.


빌 비올라는 작품과 관련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생활에 대해 좀처럼 밝히지 않는 작가였다. 그러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설치된 <순교자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순교에 대해 근본적으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건 주로 믿음, 양심, 정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이다. (…)
우리는 선한 것, 진실된 것을 파괴하려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우려는 인간 존재의 용기와 회복력을 발견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 존재한다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 선물에 대해 우리가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지,
그리고 우리의 살아감과 죽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여부다."(5)


지난 7월, 빌 비올라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미술계의 큰 상실이다. 그는 살아감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또한 선물이고 그로 인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한 사람이었다. 마침내 살아간다는 고통에서 벗어나 길고 긴 안식에 든 그가, 부디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세상은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었음에 평안히 눈을 감았기를 바란다.





1) 빌 비올라, 죽음(The Passing)(도판 1) 이미지 출처: https://americanart.si.edu/artwork/passing-77235

2) 빌 비올라, 죽음(The Passing)(도판 2) 이미지 스크린샷 출처: https://youtu.be/PobXKwTJLfk?si=1C7zycgsUHsbrOQn

3) 빌 비올라, 순교자들(Martyrs)(도판 3)「아폴로」 리뷰 이미지 출처: https://www.apollo-magazine.com/bill-viola-martyrs-st-pauls-cathedral/

4) 빌 비올라, 순교자들(Martyrs)(도판 4) 전경 이미지 출처: https://www.stpauls.co.uk/martyrs-and-mary-by-bill-viola

5) 빌 비올라 언급 인용: https://www.stpauls.co.uk/martyrs-and-mary-by-bill-viola

5) 빌 비올라 언급 인용: https://www.stpauls.co.uk/martyrs-and-mary-by-bill-vi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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