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100명에게 묻다.

네 번째 인터뷰, 15년 지기 고향친구

by 산토끼


Q. 자기소개

- 저는 이제... 인생을 좀 거꾸로 살고 있는 이십 대 후반 늦깎이 대학생입니다.



Q.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사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너무 회의적이어가지고... 일단 어릴 때부터 사랑이란 거를 일단 못 느꼈어요. 부모님이 항상 싸웠어. 항상 싸우고 아빠가 밥상 엎고... 엄마 울고... 진짜 그 신파란 신파는 다 찍는 그런 가정이었단 말이야.


엄마 아빠가 하루 건너 하루 물어봤어.


"넌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 거냐?"


그럼 나는 '그럴 거면 굳이 왜 같이 사느냐?'


어릴 때부터 사랑이라는 거를 못 느끼겠는 거야.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어지고, 어차피 좋아서 결혼해 봤자 저렇게 되는데 '나라고 저렇게 안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근데 또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어.


언니가 결혼을 했잖아.


7년? 8년 연애하고 결혼을 했어. 근데 언니가 솔직히 곁에 두기 좀 힘든 사람이야. 나도 힘들어. 그런데 남편이 진짜 잘 받아줘. 그리고 크게 싸우지도 않아. 언니가 처음에 결혼도 하기 싫어했었는데 남편이 진짜 차분하고 길게 시간을 들여서 잘 설득했어.


형부가 나랑도 친구였었거든? 나, 언니, 동생, 형부 이렇게 넷이서 자주 같이 놀아. 근데 그러면은 형부가 운전을 한단 말이야. 그럴 때 조수석에서 언니는 잘 때가 많아. 근데 항상 보면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머리 쓰다듬고 손 잡고 이래. 그냥 다 예뻐해 주는 게 눈으로 보이는 거야.


그리고 언니가 막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막 진짜 대충 하고 다니잖아. 예쁘게 하고 다니는 일이 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자꾸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니까... '아 쟤 귀엽다.'라는 눈으로 쳐다보니까 생각이 들더라고.


'아 진짜 사랑이 있는 건가? 진짜로 사랑이 있구나.'


그래서 옛날에는 절대 비혼이었는데 요즘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도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Q. 사랑한 적 있나요?

- 굳이 사랑이라고 말하자면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했던 것 같아. 친구... 친구보다는 가족한테 헌신을 많이 했어요.


내가 일찍 돈을 벌었잖아. 언니랑 동생 학비 지원, 생활비 지원... 말고도 내가 그냥 사주는 거 있잖아. 나는 회사 들어가서 처음 해본 경험들이 너무 많았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이제 돈을 버니까 둘한테도 경험시켜 줄 수 있잖아.


그래서 걔네들한테 뭐 엄청 사주고 어디 데리고 다니고 그런 걸 많이 했어. 그런 경험들이 너무 좋았는데 얘네는 아직 못 느껴 봤으니까, 그리고 다른 친구들하고 놀 때 그런 데 가서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래서 나는 내 동생을 사랑하는 건가 싶어. 왜냐면 나는 동생이랑 지내는 시간이 진짜 많아. 우리 통화 가끔씩 한 세 시간씩 할 때도 있거든? 왜냐면 걔랑 제일 잘 맞아. 그리고 걔랑 놀 때 제일 재밌어. 그러니까 어딜 가든 편하게 갈 수 있는 거야. 진짜 약간 오래된 연인 같이. 어디 갈 때 '아 여기 혼자 가기 싫은데 누구 데리고 가지? 얘 데리고 가면 되겠다!'이렇게 되는 거야.


너랑 나랑은 헤어지면 끝이잖아? 근데 무슨 짓을 해도 어떻게든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관계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서로 어디 가고 싶으면 데리고 가는 사람이 서로거든. 그리고 항상 뭔가 더 해주고 싶어, 아무래도 동생이니까.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동생이 좀 특이하잖아. 그래서 옆에서 내가 마음이 안 좋았지.


어릴 때 놀이터에서 놀림받고 오면 내가 남자애들이랑 싸워가지고 걔네 부모님한테 가서 혼나고 그랬었어.




Q. 우애(友愛)란 뭘까? 나는 외동이라서 모르겠어

- 나도 어릴 때는 동생 진짜 별로 안 좋아했단 말이야. 근데 또 어디서 놀림받고 오는 거는 못 참았어. 어디서 맞고 오는 거는 더. 약간 그런 거 있잖아. 장난감 갖고 놀다가 재미없어서 놔뒀는데 다른 애가 집어 들면은 싫은 거. 약간 그런 느낌일 것 같은데. 본능인 것 같아.


자취방 현관문. 우측 상단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Q. 그렇다면 가족에 대한 사랑은?

- 난 가족에 대해 책임감이 컸어. 사랑보다는 책임이 컸어. 그러니까 책임보다는 부담감이라는 게 더 컸어.


고등학생 때 정신병 맥스(max)였단 말이야. 왜냐면 내가 장녀 역할을 다 했잖아. 일단 집안 형편이 진짜 안 좋았어. 엄마가 붕어빵 장사 시작하기 전까지는 가난의 끝이었는데 제일 먼저 돈 벌 수 있는 애가 나였잖아.


그러니까 엄마 아빠 둘 다 나한테 의지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무조건 성공해야 된다.' 이 압박감에 애들하고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가 잘 되지도 않고...


나도 그 나이 때는 놀고 싶잖아!


공부도 잘 안 되는데 또 애들하고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해, 부담감 때문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거야. 놀면은.


그래서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잘 모르겠어. 뭐라 정의를 내리기가 힘든 게, 엄마랑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알겠어. 근데 나는 그 사랑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해.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무슨 말이냐면 엄마 아빠가 항상 나한테 좀 미안해하긴 해. 왜냐하면 제일 먼저 돈을 벌었잖아. 그리고 나한테 돈 많이 빌리고 그랬었단 말이야. 근데 미안해하면서도 내가 엄마 아빠를 완전히 마음 놓고 좋아할 수가 없는 이유는, 엄마 아빠가 나에 대한 뒷담을 잘하거든.


내가 한때 집에 생활비 보내주다가 너무 스트레스받아가지고 새해 연락을 안 받았어. 그러니까 이제 자매들한테 뒷담을 한 거야. 근데 어차피 내 귀에 다 들어오잖아?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면서도 좀... 모르겠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건 알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엄청 욕하거든.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사실 잘 모르겠어. 나는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을 물질적인 거 외에는 딱히 못 해 줄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해. 그래도 내가 가끔씩 전화해서 애교 떨고는 해 주거든? 근데 그게 진심은 아니야. 그냥 내가 안 해주면 너무 힘들어할까 봐...


부모님이 또 맨날 자책한단 말이야. "너한테 못해준 게 많다." 이런 식으로... 그럴 때는 또 그런 것 때문에 살가운 딸 역할을 하는 거지. 하지만 거기에 진심이 담겨 있지는 않아.



Q. 그렇다면 네가 선택하고 만들어 갈 가족은 어떡하면 좋겠어?

- 내가 좋은 걸 배운 게 딱히 없잖아. 그런데 잘못된 건 또 많이 배웠잖아. 지금 잘못된 경험만 학습해 가지고 잘 모르겠네.


서로가 좀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지금 우리 가족은 그게 안 됐어. 무슨 말만 하면 매가 돌아오니까.


우리끼리 아직도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게 "야, 우리 때 집에 가서 보자라는 말 나왔으면 그 자리에서 지렸다."


성인이 돼서 장난에 진심을 실어서 툭 던져도 장난으로만 돌아와.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말하기가 싫어지잖아. 더 이상 깊게 말하기가 싫어지는 거야. 그러면 나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리고 소통하지 않는 거지.



Q. 기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는 확신의 사랑인 거지?

- 사랑하긴 하는데 가끔씩 힘들면 고양이도 잘 못 돌볼 때가 있어. 그래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해.


그래도 나는 잘 때 걔네가 내 옆에 와서 같이 자는 거, 그게 제일 행복해. 그때가 제일 행복해. 나는 그런 게 사랑이 아닐까 싶거든.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한데 가끔 '대학가지 말고 그냥 회사 다니면서 얘네랑 잘 살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해.


사람보다는 동물한테 사랑을 주는 게 더 편해.


봄, 나물이



Q. 가족 외에 연인을 비롯한 타인과의 연애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 솔직히 연애를 하고 싶은 이유가 다른 사람 하는 게 부러워서지,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쌓고 사랑을 하고 이런 거를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기대는 게 잘 안 돼.


난 남한테 기대는 게 싫어. 나는 살아오는 내내 그게 너무 부담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힘들었던 얘기를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절대로 안 해. 그걸 남이 안 겪었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나를 부담스럽게 여길까봐...


그래서 그냥 가볍고 재미있게만 지내느라 관계들이 되게 가벼워. 깊게 가는 관계가 없어.



Q. 연애를 하더라도 꼭 기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 내가 너무 말을 안 해도 그 사람한테는 서운할 수 있잖아.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까 봐 두렵기도 하고. 그리고 끝이 안 좋을까 봐. 나의 단점을 말했는데 끝이 안 좋으면 그게 또 내 약점이 될 수 있잖아.



Q. 그렇다면 스스로는 사랑하는지

-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랑하긴 해. 전에는 진짜 참는 것만 배웠거든? 참고 무조건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 야근도 하는 와중에 사이버 대학도 다녔었거든. 엄청 바쁘게 살았어. 그게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집에 가는 길에 버스가 끊겼는데 택시비가 아까워서 집에 걸어가는데 그냥 우는 거야.


그냥 울고, 집에 가서도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그러고 또 집에서 뭔가를 안 해.


원래 게임하는 것도 좋아했잖아. 근데 집에서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해. 밥도 안 먹어서 몸무게가 거의 40kg까지 빠졌어.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러니까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리고 나는 평생 입원이란 걸 해본 적도 없는데 응급실 가서 급성 담낭염으로 쓸개를 뗐어.


그때 사람이 쉽게 갈 수 있구나를 느꼈거든. 그리고 '다른 삶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그때 선언했어 "난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줄 수 없다."


나는 대학이라는 걸 경험 못 해봤잖아. 그래서 이제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대학을 왔어. 돈 없을 때는 조금 후회도 하는데 그래도 재밌어. 진짜 너무 다른 세상인 거야.


그래서 나는 퇴사하고 대학 가는 게 내 생에 제일 이기적인 선택이었어.


마이스터고 진학을 선택을 했던 이유도 우리 집이 가난하니까 돈을 빨리 벌어야 해서 그런 거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어.


돈 때문에 너무 서러웠거든. 나 지금 자취방에 장난감 가득 있잖아. 다 결핍이야. 안 사줬으니까. 난 그게 너무너무 갖고 싶었어.


그 시기에는 나한테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지.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등록금을 낼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 길밖에 없었어.


그런데 대학은 아니야.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어.


그리고 나는 야망이 있었거든. 계속 발전하고 싶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고. 그런데 회사 사람들은... 그러니까 대졸들은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어떻게든 진급은 할 거니까 자기 계발을 안 하는 거야. 그걸 보고 이 회사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싶었어.


그리고 나는 단순업무만 하는 것도 싫었거든. 좀 더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단순업무만 주니까 그런 게 싫어서 대학을 간 것도 있어. 대학을 가면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고 계속해서 배우고 나아갈 수 있잖아.


근데 고졸은 거기서 멈춘단 말이야. 내가 멈추려고 멈추는 게 아니라 나아가기 힘든 구조야.


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우리 동생이 매일 물어보는 게 "복권 당첨되면 일할 거야?". 나 복권 당첨돼도 무조건 일할 거야.


나 퇴사한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좋은 직장에 나이도 어려서 결혼하면 딱 좋은데, 남편이랑 맞벌이하면 딱 좋은 조건인데 왜 퇴사를 하냐는 거야? 그리고 여자들은 나이 들면 취직하기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럴 바에는 시집을 가라는 소리가 진짜 90% 였어.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하면 내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도 계속 뭔가를 사부작사부작했어.


그리고 내가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거든? 거기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자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자신감도 높은 사람들이 많았어.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본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거기서도 조금 영감을 받았지.


사실 또 재취업할 생각 하면 막막하긴 하거든? 그래도 나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해.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이런 삶을 몰랐겠지? 대학생활의 즐거움도 몰랐을 거고.



Q. 네가 지금까지 한 말들을 관통하는 게 있거든. 네가 겪었던 아픔을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게 큰 거 같아. 그리고 네가 겪어서 좋았던 거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경험시켜주고 싶어 하고

- 어 맞아, 진짜 남들이든 가족이든. 그래서 처음에 돈 벌고 얼마 안 됐을 때 막 애들 놀이공원도 데려가고, 언니 데리고 여행도 가고. 그리고 나는 여행이 너무 좋았으니까 퇴사하기 전에 모은 돈 가지고 마지막으로 가족여행 보내줬어. 베트남, 나는 다 같이 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었어.




Q. 삶에 있어 사랑은 필수인지?

-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사랑은 필수가 아닌 것 같은데, 나를 위하는 행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지만 살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노력하는데 남을 사랑하는 거는 잘 모르겠어요.



Q. 사랑에 관해 영감을 받은 작품

- 개인적으로 진짜 이해가 안 갔던 작품이 있어.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자기 딸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과거로 돌아가서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를 놔두고 다른 사람이랑 다시 결혼을 해. 그래서 난 이해가 안 갔어. 난 나 자신의 행복이 우선일 것 같은데 딸을 만나는 게 나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어.


난 사랑에 대한 작품을 봐도 크게 감흥이 없는 게, 내가 아직 사랑을 못 해봐서 그런가 봐.




Q. 사랑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현재의 생각을 한 문장이나 단어로 표현한다면?

- 이제... 신(神) 같은 거 아닐까? 없지만 있다고 믿는... 실체가 없지만 우리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것.


그리고 '마음껏 사랑하고 상처받아라'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됐잖아. 적어도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세상이지 않나.






이번 인터뷰는 저의 중학교 동창이자 15년 지기 고향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글을 쓰는 내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묘하게 기분이 들떴습니다 :)


동생이 괴롭힘을 당하자 패죽이겠다며 치마를 올려입고 방과 후에 다른 학교까지 찾아가던 모습, 집에서 하는 첫 생일파티라며 초대해서 한 상가득 차려주셨던 친구네 부모님, 사물함 문짝을 뜯어서 계단에서 타던 계썰매...


네, 친구는 어렸을 때 부터 덩치는 제일 작았지만 씩씩하고 당찬 아이였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취직이 잘 되는 특성화고로 진학했어요.


머리도 좋으면서 왜 대학을 안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고 빨리 돈이나 벌고 싶댔어요.


그런 줄 알았죠.


그렇게 우리들 중 가장 먼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기숙생활을 하게 된 친구는, 바빴는지 어느 순간 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때도 그냥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얘를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원래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오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보다 타인을 이해하는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사람 마음은 첩첩산중이라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다가 아닐 수 있잖아요.


이번 기회로 기꺼이 심연을 드러내준 친구에게 감사하고,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듯이 남은 날들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피워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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