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인터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를 만들어가는 공연기획자
Q. 자기소개
- 29살 여성, MBTI는 ESFP.
직업은... 내 직업은 뭘까? 예술 잡돌이야 예술 잡돌이. "이거 누가 해?" 하면 "제가 합니다."라는 일을 하고 있어요.
문화예술분야(무용)에서 주로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하는데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하네요.
Q.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 같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
일단 나는 사랑에는 항상 태도가 동반된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서 나는 일을 사랑하려고 하는 태도 자체도 사랑에 포함을 시키거든.
그리고 사람이든 일이든 항상 내가 좋아하고 애정하는 것들은 결국 나를 다시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하는 것 같아. 그렇게 애를 쓰는 과정과 태도가 사랑이야.
살아보니까 나는 타인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고 박애적인 사람도 아니어서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것 중에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동물이나 말을 못 하는 것들.
사랑이라고 정의 내릴 때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하거든.
'쟤가 뚱뚱해도 좋은가, 먹는 것만 밝혀도 좋은가, 눈치가 없어도 좋은가.'
이 질문에 동물들은 성사가 되는데 사람은 안 되는 거지.
동물이 뚱뚱하고 먹을 것만 밝히고 눈치가 없어, 너무 귀엽잖아!
근데 사람이 그런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혐오스러워.
그러니까 나는 이런 걸 뛰어넘는 것들이 나한테는 사랑이라고 느껴져.
영화 '아가씨' 목욕 씬 알지. 사랑이라는 게 그 사람을 동물이나 아기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구나. 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어떤 상태여도 괜찮아야 하는 거구나.
Q. 남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약간 동물 보듯이 하는 것 같아. 아직 사람으로 대하지는 않는 것 같아.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남자친구가 자취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기본적인 것들을 아예 몰라. 밥 먹고 나서 치우는 법, 세탁기 사용법 그런 걸 아예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을 하고 애정이 있는 걸 보면 약간 동물 보듯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
근데 그래도 고등 동물이잖아. 그래서 내 말에 공감을 해준 적도 있고 고민도 들어주는 걸 보면 고차원적인 정서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물보다는 큰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내 입으로 얘기하면서도 동물에 빗대는 게 맞나 싶지만...
고양이나 강아지가 반려동물로 채택된 데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소를 보고 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이러지는 않잖아. 그 귀여움이 생존 전략인 거야!
이걸 소재로 한 무용 공연이 있거든?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라는 작품인데 나는 너무 공감이 돼. 얘네가 하는 게 다 작고, 둥글고, 서투른 애들이잖아. 그래서 나는 내 남자친구도 항상 뭔가 작고, 둥글고, 서투른 존재처럼 보이나 봐.
이유가 없어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내내 생각을 해봤는데, 이런 원초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내 눈에는 너무 작은 생명체처럼 보이니까. 너무 동물화 시키는 건가?
https://youtu.be/WWt-bIehYLE?si=47EipAlHsB5F17W-
Q. 일에 대한 생각은 어때? 내가 보기에 너는 일을 사랑하는데
- 이 기괴한 사회에 왜 자꾸 속해 있으려고 하나 생각을 해봤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동경'인 것 같아.
그들의 태도는 너무 불친절하지만 이 업계에 계속 속해있는 이유.
그들의 예술적 사고를 동경하지만 자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들의 예술적 세계관을 함께 구현해 내는 게 우리의 일이고 나도 그 과정 속에 함께하는 일원으로서 만족감을 느끼니까.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안무, 조명, 연출 외에도 처리해야 할 행정적 절차가 굉장히 많아. 진짜 서류에 서류에 서류에 서류....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야.
그런 것들에 의의를 두고 이 일을 하지 않나 싶은데 요새는 또 많이 바뀌었어. 옛날에는 진짜 일이 전부고 모든 게 일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먹고살 만큼만 하고 나를 좀 돌보자.
옛날에는 90%였다면 이제는 한 60% 정도? 많이 떨어졌지. 나머지 40%는 나를 위해 집중하자.
동경하는 이유에 내 정서적 결핍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그게 채워졌나 봐. 그리고 해보니까 이 사람들도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생각도 들고 거기서 오는 실망감과 회의감도 있으니...
Q. 번아웃을 이겨내고 계속하고 있잖아. 사실 다른 업종에 비해서 소통도 더 중요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까 에너지 소모도 크고 업무 난이도도 높다고 생각하거든. 이겨내고 성장한 비결이 있어?
-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대신 조금 더 마음 처리를 잘하는 방법은 있지.
일과 나를 동일시하면 안 돼.
작품을 올릴 때 그 작품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 같아. 옛날에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그 프로젝트를 내가 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건 내가 한 거는 아니지.
내 역할은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해 주는 일이니까.
나를 갈아 넣을 필요도 없고 잘 안 돼서 속상해도 어쨌든 내 거 아니고 저 사람 건데 내가 그렇게까지 우울해할 필요 없다, 나는 여기서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부분만 가져가면 된다라고 생각하려고 해.
Q. 현재의 직업적 목표는?
- 자리 욕심은 크게 없어.
다만 공연계에서, 아직까지 현대 무용은 홍보가 잘 되지 않고 있고 예산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여건이 된다면 조금 더 기획이나 홍보면에서 새롭고 신선한 시도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
Q. 지나간 사랑 중 특별했던 사랑에 관하여
- 사람은 다 시절 인연이더라고.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는 것 같아.
옛날에는 그걸 안 믿었는데 살아오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진짜 많이 바뀌었거든. 계속 연락할 것 같은 친구들도 다른 직업을 갖거나 연락할 수 있는 구실을 못 찾으면 결국 빠이빠이 하게 되고...
초중고를 같이 나온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걔를 너무 사랑했던 것 같아. 걔를 너무 사랑했는데 내 사랑의 방식이 잘못됐던 거지. 그래서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가 꽤 됐거든. 근데 아직도 꿈에 나와. 이런 거 보면 내가 걔를 사랑했나 봐. 엄청.
나랑 엄청 반대인 동성 친구였어. 반대라서 끌린 것도 있고 내가 그때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그랬는지 남자친구처럼 대했던 것 같아. 연락이라든지 어디 놀러 가자든지 엄청 많이 했는데 서툴렀나 봐.
왜 연애도 스무 살 초반에 하는 거랑 후반에 하는 거랑 다른 것처럼, 걔 입장에서 많이 무례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결국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어졌는데 계속 꿈에 나오고 하더라고.
Q.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 과거에는 엄청 방치했던 것 같아. 지금은 담배도 끊고, 몸에 안 좋은 거 안 하고, 술도 오늘은 좀 마셨는데 이제는 잘 안 먹어. 옛날에 진짜 술 정말 정말 좋아했거든.
그리고 피해의식이 약간 있었나 봐. 사람들 모여 있으면 '저 새끼들 내 얘기 하나?' 이런 생각했었단 말이야.
근데 이제는 내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해.
Q. 사랑에 관해 영감을 받은 작품
- 같이 작업한 안무가가 있는데 주제가 '사랑과 폭력'이었어.
그거에 대해서 되게 많이 이야기를 하고 리서치를 같이 했는데, 결국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이 폭력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반드시 모순되는 지점이 있거든?
가벼운 예를 들자면 어른들의 사랑은 잘 먹이는 거잖아? 근데 계속 더 먹으래. 배부르고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강요하고 억지로 먹이면 그건 폭력인 거지.
이런 식으로 진짜 한 끝 차이라서 사랑도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잘 표현이 되어야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가 있다는 걸 느꼈어.
그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순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게 무용으로 풀어내면 컨택(contact: 창작 및 즉흥, 동작 수행 등을 위해 두 명이상의 무용수들 간에 이루어지는 물리적 접촉)이라는 게 있잖아.
컨택할 때도 리더와 팔로워가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끌어주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되잖아. 특히나 약속되지 않은 움직임들이 예측불가능한 타이밍에 발생하는 즉흥컨택을 할 때는 에너지 조절을 진짜 잘해줘야 되거든?
우리가 리서치할 때 즉흥컨택을 진짜 많이 했는데 에너지 정도가 다르니까 갈수록 한 사람은 고조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게 즉흥컨택이 아니라 폭력, 진짜 그냥 싸움이 되는 거야.
안무가가 그런 걸 원했어. 사랑과 폭력, 모순.
Q. 사랑이 뭘까요?
- 아, 그 넷플릭스 시리즈인가? '러브 온 더 스펙트럼(Love on the spectrum)'.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연애 리얼리티 쇼를 찍더라고. 사실 처음에는 좀 의아했는데 결국 그 사람들은 짝을 찾아가.
근데 생각 자체가 엄청 특이해.
어떤 사람은 자기가 공주고 왕자 같은 사람을 찾는다고 하고, 누구는 즐겨 보는 전쟁 영화가 있는데 이거를 같이 볼 수 있는 사람, 놀이동산에 가서 퍼레이드를 같이 해줄 사람... 그런데 결국 그거를 같이 해줄 사람을 찾아가.
그래서 그때 느꼈어.
자신과 스펙트럼이 맞는 사람이 있구나.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아가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