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인터뷰, 낭만을 동경하는 헤어 디자이너
Q. 자기소개
- 나이는 27살이고, 낭만을 동경하는 INTJ입니다. 낭만을 동경한다는 이유가, 옛날에 인스타에 되게 많이 나왔던 노래... 뭐였지? 낭만젊음사랑! 그 노래를 듣고 낭만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사람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뉘더라고요.
낭만을 사는 사람이 있고, 낭만을 존경하는 사람이 있고, 낭만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낭만을 사는 사람은, 말 그대로 낭만을 진짜 살고 있는 거야. 욜로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낭만이 없는 사람은 안정적이지만 좀 삭막하게 살고 있긴 하겠지.
근데 '낭만을 동경하는 사람'은 딱 나 같더라고. 낭만을 원하지만 낭만 속에 살지는 못하는... 현실에 치일 수도 있고. 이게 가장 사회인다운 모습이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잖아요?
낭만을 언제나 동경하지 이게 낭만이지 하는데 사실은 낭만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내가 볼 때 난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 맨날.
https://youtu.be/J8F-sVVNPZg?si=Kh5dR5kVO1KoKw3e
Q.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 사람도 사랑하고, 내 일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우선 일에 관해서는, 제가 느끼기에 저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죽을 의향도 있어요. 사회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내가 사회의 일부분으로 있어야만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만든 이 사회의 메커니즘이 필요 없어진 사람은 도태되는 건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 중에 선택한 게 타투랑 미용이었어요. 만약 대학교를 못 갔으면 타투이스트를 했을 건데, 그것도 미용이랑 똑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니까.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만든 결과물에 대해서 만족하고 좋아해 주니까.
중요한 건 내 고객이 기쁜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결과물을 사람들이 호응해 주는 것이 기쁘다.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를 사랑한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저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저는 제 일보다는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여자친구보다는 저를 사랑해서 모든 관점이 저에 맞춰져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만든 걸 남들이 좋아하니까 좋은 거야, 내가 만든 걸 당신이 좋아해 주니까 좋아요가 아닌 거죠.
만약 고객이 마음에 안 들어한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에요. 내가 만들어서 나는 마음에 들지만 당신은 마음에 안 들어? 그건 좋지 않아요. 대신 다시 해주거나 부가 서비스를 해줘야 되긴 하겠죠.
그런데 적어도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아요. 그래서 일을 오래 한 것 같아요. 정말 잠도 거의 못 자고 할 일이 너무 많기도 한데 그런 성향 덕분에 좀 오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직원들은 고객들이 컴플레인 걸면 너무 힘들고 충격적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고 생각은 해요. 고객들이 컴플레인 거는 내용에 '핀트'라는 게 있잖아요. 그 핀트를 얼마나 잘 잡아내느냐의 싸움인데, 그걸 보통 업계에서 '니즈'라고 해요. 고객이 싫어하는 거, 그것만 알면 되는데 파악을 못 했을 때 상황이 터지는 거죠. 내가 못 알아챈 거니까 아무리 최선을 다 했어도 내 능력 부족인 거죠.
Q.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무언가에 몰두했던 경험이 있나요?
- 농구를 사랑했죠. 사랑은 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다쳐서 거의 뛸 수도 없어요. 애정이 컸기 때문에 몸이 괜찮았다면 지금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오늘 체육관 빌렸을 수도 있어요. 이거 끝나고 농구하러 갈려고.
어쨌든 중학교 때 이후로 선수를 그만뒀고, 계속 취미로만 하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잘하는 선수들 보고서 아쉽긴 했어요. 농구를 잘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몸이 되게 약해요. 대신에 남들보다 높이 뛰고 남들보다 빠르고 머리를 많이 써요. 경기할 때 남들이 보기에는 좀 들이박는다고 할 수 있는데, 상대 선수의 습관을 계속 봐요. 그래야 뚫리니까. 몸이 안 좋으니까 살아남으려면 약한 선수는 뭔가를 키워야 되는데, 저는 머리를 키웠어요.
불암고 시대표로 있었던 적 있었는데, 경기를 이겨서 콜이 왔는데 거절했어요. 왜냐면 그때 다쳤었거든.... 그 정도에서 전문적인 케어까지 받았으면 KBL(대한민국 프로 농구 리그)까지 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계속 올라갈 수 있었을 것 같아.
Q. 삶을 대하는 특별한 태도
- 저는 사실 행복을 원하진 않아요. 오히려 돈에 많이 가까운 삶을 살고 있어요. 나를 사랑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무조건 있어야 돼. 돈이 없으면 안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돈이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돈이 있어야 행복한 거니까 돈이 더 큰 거죠.
그래서 실제로도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제가 작업하고 씻고 포트폴리오 적고 그러면 한 새벽 2시쯤에 자요. 근데 다음 날 못 해도 6시 반에는 일어나야 돼요. 4시간 가까이 자면서 거의 5일을 버티고 일주일에 5일 근무지만 하루는 교육을 가야 해서 사실상 6일 근무예요.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 저는 지금 이렇게 투자하고 있는 게 나중에 분명 돈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언제나 남들보다 빨리 해결책을 찾는 편이에요. 큰일이 나면 당황하긴 하겠죠? 저도 사람이니까. 근데 그게 남들보다 확실히 짧은 것 같아요. 어차피 당황해서 해결책을 못 찾으면 그 감정에 더 깊숙이 빠져버려요.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는 거죠. 그래야 그 감정이 사라지니까.
감정? 중요하죠, 근데 감정이 일을 해결해 주지는 않아요.
일은 머리가 하는 거고 감정은 가슴이 느끼는 거니까.
Q. 감정적으로 지쳤거나 타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 사람들이 살면서 세 가지의 모습을 한다고 하잖아요.
사회가 나를 보는 모습, 사회에 보이는 모습, 나만 아는 내 모습.
팁을 주자면 나만 아는 내 모습은 아무거나 괜찮아요. 뭐 극우나 극좌 세력일 수도 있고 사이코패스여도 상관없어요. 그거는 당신만 알고 있는 거니까.
근데 사회에 보이는 모습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돼요. 저처럼 서비스 직업이라면 상대를 사람으로 생각 안 하면 돼요. 페르소나(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했던 가면. 현대에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사회적 가면 혹은 또 다른 자아의 의미로 쓰인다)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변검술처럼 계속 바꾸는 거죠. 처음에 이야기했던 고객의 니즈에 따라서도 내 모습을 싹 바꿀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 저를 싫어한다면, 저도 똑같이 싫어할 겁니다. 다만 네가 날 싫어하는 것보다 좀 더 싫어하게.
전에 같이 일하는 동료랑 싸운 적 있는데, 그 사람이 막 울면서 자기가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냐고 물어봤어요. 그럼 그 반응은 제가 상대방이 싫어할만한 모습을 효율적으로 보여줬다는 증거겠죠? 그래서 저는 한 마디 더 했어요.
"그걸 모른다면 그게 당신 잘못이 아닐까요?"
그 사람이 가장 싫어할 것 같은 모습을 선택해서 또 이야기를 한 거예요.
Q. 동정이나 연민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편인가요?
- 아니요. 동정도 있어요.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애는 착한데 상황이 안 좋아서 좀 이상하게 말한다. 근데 그게 제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이해해 줍니다.
예를 들어 맨날 늦어요. 근데 할머니가 치매라서 보호소 같은 데다 데려다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오래 걸린다. 그러면 차라리 내가 원장님한테 얘기해 줄 테니까 출근 시간 좀 늦추라고 말해 줄 수도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 피해를 주는 거. 저는 이래 보여도 남들한테 피해는 안 줍니다. 손해 봐도 내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이득 봐도 나만 이득 보는 장사를 하지... 근데 만약 우리 집단에 피해가 간다? 그거는 안 됩니다.
Q. 문신의 의미
- 그냥 다 저한테 하는 얘기예요. 나침반의 화살표는 제가 나아갈 방향, 어떻게든 제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가장 큰 화살표도 제 손끝으로 해 놓은 거예요.
옷밖으로 드러나는 타투들은 제 주관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의미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제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그려뒀어요. 사슴이 있는데 수사슴이 '명예'예요. 저는 명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돈 명예 거의 같다고 봐요. 돈은 명예고 명예는 돈이에요.
어깨 뒤쪽에도 하나 있는데, 그거는 엄마. 제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
Q.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 화를 안 낼 때... 제가 화를 엄청 많이 내요. 일할 때도 화를 내고 살짝이라도 핀트가 나가면 바로 쌍욕 하거든요. 이게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애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래요. 처음에는 돌려 말해도 보고 이런 거 아니라고 얘기도 해보고 뭐 페널티를 주기도 해 봤는데 못 알아들어요. 근데 면전에 대고 쌍욕 하니까 확 알아듣더라고요. 그런 말 있잖아요, 맞아야 안다고. 맞기 전까지는 모르더라고요.
근데 여자친구한테는 화를 잘 안 내요. 한 번 더 생각해 봐요. 저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아닌데 원래 했던 방식을 바꿔서라도 이 상황을 부드럽게 이어가고 싶어 하는 걸 느꼈을 때 사랑이라고 느껴져요.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내가 기존에 이용하던 사회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만 특별한 루트를 사용하는 거예요. 내가 원래 안 그러는데 너니까 해줄게...라고 굳이 말하진 않지만, 뭐 그런 마음이 드는 거.
Q. 사랑을 표현하시나요?
- 확실하게 말로 표현해요. 진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요. 근데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말하면 안 돼요. 습관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정말 뜬금없는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걸 선호해요. 왜요? 그게 사랑이니까.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얘기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특별한 순간의 감정인 거지. 누구나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뜬금없이 연인이 양치하고 있는데 사랑한다 해본 적 있으세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띄엄띄엄 생기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관심이지.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인과 부부로서의 사랑은 일시적이면 안 돼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거, 관심이지.
그래서 저는 누가 봐도 사랑한다고 할 것 같은 타이밍에 말을 잘 안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건 진짜 그 상황에 느껴야 되는 감정이 맞으니까.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근데 언제나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산책하던 도중에도, 양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자다 깨서 눈 마주쳤을 때도 사랑한다 하고 다시 잘 수도 있어요. 언제나 느끼고 있어야 되는 일관성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변해서도 안 되고 바뀌어서도 안 돼요. 내가 처음에 느낀 감정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예민하고 계획이 틀어지면 화를 많이 내는데, 여자친구는 봐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냥 그런 모습을 인지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사랑해 줄 용기까지는 있어요. 어느 정도 원래 계획을 벗어나도 원래 그런 애니까 그냥 그렇다 치자 해요. 제가 유일하게 계획을 세워도 변수까지 생각하는 사람. 혼자 계획 세울 때는 변수 생각 안 해요, 변수 안 만들면 되니까. 변수는 사실 여러 번 경험하면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그걸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데 걔는 그냥 그러라고 해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사랑을 그래프로 그리자면 어떻게 해서든 조금씩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야지 단 한순간도 내려가면 안 돼요. 그래서 연애초반에는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요. 만나러 가지도 않아요. 연락도 원래 잘 안 해요. 처음에는 투자하기가 너무 쉽거든요. 집에 데려다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365일 매일 만날 때마다 집에 데려다줄 수 있나요? 없어요. 그러니까 전 처음부터 데려다주지 않아요. 처음부터 "어, 가." 하고 각자 가면 나중에 "오빠 변했어."라고 했을 때 "아니야 나 초반에도 안 데려다줬어."라고 할 수 있어요. 난 변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는 일관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일관성=불변'이라는 건데 그 정의를 가지고 있다면 바람도 안 나요. 사실 연애하면서 가장 불안한 게 그거잖아요. 저는 그게 제일 불안해요. 가장 큰 가변성을 띄고 가장 변수를 예측할 수 없는 범위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상에 타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제가 그거까지 터치할 수는 없잖아요.
Q. 연인의 사랑스러운 점
- 멍청해요. 머리가 나빠요. 그러니까 얘가 이제 이거 하겠다 하면 진짜 하더라고요. 진짜 참 변하지 않고 멍청한 모습이 좀...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꼭 화장실에 가는데 그럴 때마다 여자친구가 "또 똥 싸?" 그래요. 주섬주섬 준비하고 있으면 여자친구가 알아차릴 것 같으니까 혼자 화장실 들어가면서 나지막하게
"또 똥 싸."
그러면 여자친구가 되게 얼빵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그런 걸 예측할 때 여자친구가 당황하는 모습이 좀 재밌죠.
Q. 가족에 관하여
-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면서 가장 작은 단위의 집단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어머니는 거의 현모양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성모 마리아 급인 거죠. 저한테는 화를 잘 안 내요. 제가 어떤 사고를 쳐도 화 안 내고, 제 생각에도 이해 못 할 행동들을 제가 해도 이해해 줘요. 가족에게 헌신적이세요.
저는 그런 거 너무 힘들거든요. 제 삶에서는 불가능해요. 자식 농사는 저에게 너무 리스크가 큰 투자예요. 얘가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고, 중간에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려서 큰돈이 나갈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감수하고 내 노후를 준비할 건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여태껏 저에게 투자했던 걸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진짜 말도 안 되는 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랑은 내게 보장될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확실히 그건 포기한 게 맞더라고요... 확실히 사랑이에요, 엄마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에요. "너 이거 얼마짜리인 줄 알아? 내가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그건 안 돼요. 그건 사랑이 아닌 거죠. 투자지.
외할아버지도 너무 좋은 분이셨어요. 아버지와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아버지는 저랑 약간 비슷한 게,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극단적으로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도 저는 아니면 이해는 못해도 인정해 줘요. 근데 아버지는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면 절대로 다름을 인정 안 해요. 근데 할아버지는 인정해 주셨어요.
제가 미용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저한테 게이라고 했어요. 사내 새끼가 그런 걸 왜 하냐고. 내 꿈을 인정해 주지 않은 거잖아. 난 내가 말하는 방향이 무조건 맞는데 아니라고 한 사람이잖아. 그러면 바로 척을 지는 거지. 게다가 그냥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 게이라고 했잖아. 아버지는 남자 일과 여자 일이 따로 있는 사람인데, 여자 일을 한다고 하니까 문제가 됐던 거죠. 그래서 나를 모욕한 거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이가 되게 많으신데도 제가 미용을 한다고 얘기를 했을 때 인정하고 격려해 줬어요.
"내가 아는 남자도 그런 일 하는데 잘하더라. 너도 잘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출근할 때마다 오늘 일은 어땠냐고 물어보셨는데 아버지는 안 물어봤어요. 뭐 할아버지도 좀 옛날 분이셔서 말은 좀 거칠게 하셔도 저를 생각해 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를 좋아했죠. 저도 제 말을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게 아니라 존중만 해준다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말 같지도 않은 걸로 그렇게 싫어하면 당연히 척 치는 거죠. 그거는 더 이상 바꿀 가면도 없어요.
여동생은 별로 안 사랑하는 것 같아요. 걔도 저랑 비슷해서 서로한테 득 되는 것만 도와줘요. 그거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아예 말도 안 꺼냅니다. 어차피 도움 안 될 거 알고 있으니까.
Q. 사랑이 뭘까요?
- 전에 그런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이 딱 하나 있는데 사실 답은 간단해요.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면 돼요. 졸리면 자면 돼요. 이렇게 되게 가까운 데 답이 있어요.
사랑은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면 사랑이에요. 연예인 '이영지'가 얘기했던 건데, 사랑은 그 사람이 잘 잤으면 하는 게 사랑이라고. 못 자면 안 행복해요. 난 그 사람이 좀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어, 편안하면 행복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돼요. 리스크가 없는 행동은 없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종이접기 하는 게 뭐 리스크가 있어? 시간을 쓰잖아요. 그 시간에 다른 거 하면 비전이 바뀔 수도 있는데 시간이라는 걸 투자해야 되잖아요. 그럼 그게 리스크인 거예요.
그런데 사실 사랑도 마찬가지죠. 사랑을 하려면 리스크가 정말 커야 돼요. 저는 사랑에 대한 리스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돼요. 본인의 시간, 돈, 노력 그것들을 감안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를 가지면 저는 사랑할 준비는 됐다고 생각해요.
Q. 우정과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 사랑과 우정은 카테고리는 비슷할 수 있어도 무게감이 달라요. 만약 감정이 수면에 떠다니는 부유물이라면 무겁게 가라앉히기 위해 리스크라는 족쇄를 채워야 해요. 그런데 우정에는 리스크가 포함되지 않아요. 그나마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친구는 시간이 나서 만나는 애고 여자친구는 시간을 내서 만나는 애죠.
'나'와 '내'는 작대기 하나 차이지만 무게감이 달라요. 그것처럼 한 끗 차이로 의미가 달라져요.
Q. 사랑은 필수적인가요?
- 사랑은 필수예요. 사랑을 해야 살 수 있어요. 일이든 사회든 사람이든 삶을 살아가려면 뭐든지 동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 동기가 저는 무조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돈을 사랑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할 수도 있고,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도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죠. 혹은 사회에 공헌할 수도 있고요.
근데 저는 사랑이 없으면 죽어도 돼요. 아까 말했듯이 제가 사회에 기여도가 없으면 죽어도 된다고 한 이유는 사랑할 게 없기 때문이에요.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으면 당연히 동기가 없고 그럼 죽어도 됩니다.
Q. 일관성, 리스크 등 현재 본인이 정의 내린 것들이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을까요?
- 정의는 맨날 달라지죠. 왜냐하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데. 다음 날에 어떤 사고가 나서 생각이 바뀔지 몰라요.
콩 심은 데가 어제랑 오늘이랑 같을까? 흙 아래서는 이미 새싹이 나왔을 수도 있는데. 아직 땅 위로 안 올라왔을 뿐이야.
그래서 오늘 내가 말한 것들도 미래엔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랑처럼 추상적인 걸 이야기한다는 건, 무지개를 쫓는 거랑 똑같아요. 무지개를 쫓는 행위 자체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거고, 무지개를 쫓기 위해 산을 넘을지, 평야를 달릴지, 강이나 바다를 수영할지 어떻게 알아요?
몰라, 그건 상황이 다르니까.
무지개를 쫓는 건 똑같지만 과정도 다르고 어디 있냐에 따라 느끼는 것도 다르겠죠. 정의를 좇을 수는 있어도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Q. 사랑에 관해 영감을 받은 작품
- 저 있어요, '어바웃 타임'. 전 그 영화를 보고 프러포즈를 정했어요. 나중에 와이프가 생긴다면 진짜 그렇게 하려고요.
조용히 아무 데도 없는 곳에서 나지막이, 원래 있던 일상의 한가운데서 티가 나지 않게끔, 그러면서도 진심이 느껴질 수 있고 장난스럽지 않은.
저는 그걸 제 프러포즈로 정할 만큼 정말 그 영화를 사랑했습니다. 진짜 한 대여섯 번 본 것 같아요.
주인공 팀이 연극 보고 나서 옛날에 좋아했던 여자를 만나요. 그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와인 한 잔 하자고 했는 데 따라갔다가 문 앞에서 갑자기 나 이제 가야 된다고, 집에 뛰어가서 자고 있는 메리에게 프러포즈하거든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누구에게나 선택권은 있고 그런 상황이 오는데 팀은 제가 원하던 일관성 있는 사랑을 보여줬어요.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가 정한 일관성을 지키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그 장면을 사랑합니다. 그 장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요.
https://youtu.be/wC7K_DsITps?si=7vBdCoQ_nBpVzN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