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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파편 Jun 30. 2024

아부와 아름다운 말, 그 간극에 대하여.

느낌적인 느낌의 명확화

유튜브를 보던 중 우연찮게, 말과 관련된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왔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의 특징, 배려하는 말투, 상대방을 기분좋게 하는 말 이런 류의 영상이었다. ‘맞아… 맞아… 저렇게 얘기하면 좋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음… 그렇다면 ‘아름다운 말’과 ‘아부’와 의 차이는 무엇일까?’ 언뜻 보면 비슷해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꽤나 큰 차이가 존재했고, 그 차이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말은 하고 싶지만, 아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 아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우려의 느낌이 드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과 아부에 대해 생각해보며 예시들을 떠올려보았다. 둘 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두 말을 들으면 상대방은 기분이 좋아진다.


또, 둘 다 어느 정도 상대방을 배려하며 민감한 사항이나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혹은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하는 특징도 존재한다. 두 말을 들으면, 상대방은 적개심이라거나 분노 등 부정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게되며 상대방에 대한 안전감을 느낀다. 또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되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이렇게만 보면 둘 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배려를 하는 좋은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아부는 이미 알고있듯이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 다른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거리는 행위이다. 가끔은 거짓을 얘기하기도 하고 과장을 하기도 한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과장을 하기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음 그렇다면 거짓을 얘기하는 것도, 과장을 하는 것도 아니라 사실을 말한다면 아름다운 말인가? 분명히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부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 더 생각해보았고 결국 답을 얻게 되었다. 나의 답에서는 진실성의 여부보다 더 큰 것이 존재했다. 의도가 ‘얻기 위함’이냐 ‘주기 위함’이냐였다. 아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행위이고, 아름다운 말은 주는 행위이다. 말의 내용과 특징은 비슷해보일 수 있을지언정 분명히 다른 행위이다.


아름다운 말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도로 상대방에게 말로 기쁨을, 위안을, 감동을 주며 상대방에게 ‘주는’ 행위였던 것이다. 얻고자 하느냐와 주고자 하느냐의 큰 차이가 그것을 가르고 있었다. 언뜻 봐서는 비슷해보이고 미묘해보일 수 있지만 분명히 달랐다.


우리는 정확하게 같은 말을 하더라도, 평판이나 좋은 인상 등을 얻기 위해서 할 수도 있고, 순수하게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 할 수도 있다. 매 번 말을 하기 전 찰나의 순간에도, 무언가의 생각을 하고 무언가의 의도를 담는다. 단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엄청난 통찰도, 새롭고 신선한 통찰도 아니지만, 느낌적인 것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확실하게 그 차이를 규명하고 명확화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두 차이를 알게된 만큼 아부를 할 일도 없을 것이고, 아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우려의 느낌도 들지 않을것이기에. 또, 내가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 준다면, 나의 마음이 정말로 편안하겠구나 하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에.


아름다운 의도로, 아름다운 선의를 품고, 아름다운 말을, 아름답게 전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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