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지 않고 딱 한 발씩 나아가기
예전에는 마라톤 대회를 신청할 때,
오르막이 있는 코스를 가급적 피했다.
괜히 힘든 길을
일부러 고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회 신청 전, 코스도를 확대해
고도 그래프를 먼저 확인했다.
가능하면 평지가 많은 대회,
업힐이 짧게 끝나는 코스를 골랐다.
그런데 대회 경험이 쌓일수록 알게 됐다.
평탄한 길만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는 걸.
선배 러너들은 업힐을 이렇게 달리라고 말했다.
힘들수록 고개를 들어 멀리 보지 말 것.
상체는 살짝 숙이고,
보폭은 짧게 가져갈 것.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오르막이 눈앞에 나타나면
생각은 늘 원점으로 돌아가고
시선은 어느새 저 언덕 끝에 가 있다.
'저기까지 어떻게 가지?'
쓸데없는 걱정이 발목을 잡는다.
그때마다
다시 선배 러너들의 말을 되새기려 한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낮추고
멀리 보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지금 내 발 앞에 놓인 아스팔트 길,
딱 한 걸음만 본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몸이 반응한다.
호흡은 가빠지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점점 당겨온다.
시계에 찍힌 페이스는 내려가고,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누가 대신 달려줄 수 없다.
오직 내 두 다리로 해내야 할 일이기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성실히 가다 보면
어느새 오르막길은 끝나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오르막들도 늘 그랬다.
거대한 경사가 앞을 가로막을 때면
이제 나는 끝난 것 같고,
더는 못 버틸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은 지나왔다.
시간이 해결했다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넘겼을 뿐이다.
요즘도 역시
삶을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
1년 계획, 5년 계획 같은 건 잠시 접어둔다.
당장 내 앞에 놓인 하루,
오늘을 넘기는 것.
그 정도만 목표로 삼는다.
오늘을 버텨내면,
내일은 또 내일의 힘으로 살아진다.
오늘 숨이 가쁘면
내일은 숨이 조금 덜 찰 수도 있고,
오늘 다리가 무거우면
내일은 다른 근육이 나를 밀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치 힘만 쓰며 산다.
앞으로 또
어떤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더 길고, 더 가팔라서
이번보다 훨씬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도 지금처럼 할 생각이다.
끝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딱 한 발씩.
영원할 것 같은
오르막길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