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컨설턴트가 가장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는 고객이 존중해 주지 않을 때이다.
'존중해 주지 않는다'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공개 미팅 자리에서 공격적인 발언이나 비하 발언을 할 때다.
이렇게 말하면 고객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컨설턴트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는 소리다.
과거에는 오후 늦게 리뷰를 하고 "내일 아침에 봅시다"부터, "아니 내가 해도 이것보다 낫겠어요. 월 O 주고받은 문서가 겨우 이 정도예요?"라는 말들이 쉽게 행해졌던 때가 있었다.
고객의 항의성 발언도 본보기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기도 했다. 대게 악명 높은 고객들이 있어서 이들의 서슴지 않는 멘트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으나 언제부터인가 서로 예의를 지켜주기 시작했다.
갑질 문화 근절, 성차별 근절, 상사 괴롭힘 금지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정화된 덕분이기도 하고, 세대 물갈이도 어느 정도 되어서다.
아마 우리 윗 세대는 사회 곳곳에서 이런 분위기가 더 심했을 듯싶다.
그렇다면 IT컨설턴트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위축감은 어떤 상황에서 생긴 것일까.
일반적으로 SI 업체는 시스템 구축이라는 업무 Scope이 명확하다. 계약된 범위보다 더한 것을 요구할 수가 없다. 일정을 준수하냐, 품질이 만족할 수준이냐 등을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SI 업체는 고객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듣고 분석하여 화면을 만들고 테스트하며 도출된 결함을 해결하면 된다. 그래서 그 시작점인 요구사항 베이스라인만 정하고 나면 이후는 그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반면 IT컨설턴트들의 업무 Scope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예로 '프로젝트 관리'라고 하자. 진척 관리, 품질관리, 이슈 및 리스크 관리 등이 있는데 이를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문화하기 어렵다.
추상적인 범위로 적힌 Scope으로 계약을 하게 되니, IT컨설턴트는 프로젝트 진행과정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방안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 "이건 계약 범위 밖입니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특정 주제를 다루는 예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드 도입 안'을 만들어 보자고 가정하자. 어느 정도까지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지는 미리 알 수가 없다. 진행과정에서 고객과 서로 적정선에서 '합의'과정에 이르게 된다.
컨설팅 업무 자체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일반적으로 SI업체에 비해 컨설팅업체에게 요구하는 수준도 더 높다. 문제는 어디까지 요구하는지 명확하지는 않고, '이것보다 더'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고객 또한 답을 몰라서 컨설팅을 요청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관리'를 컨설팅사에 맡긴 경우, 고객들은 IT컨설턴트들이 '알아서' 일해주기를 바라고 자신들과 SI업체 모두를 '리딩'하고 때에 따라서 SI업체에 자신들을 대신하여 '쓴소리'를 해 주기를 바란다. 혹시 임원보고를 하게 될 때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지만 제대로 된 보고를 하기를 바란다.
IT컨설턴트의 심정을 비유하자면, 딸 일곱 이후 여덟째에 아들을 낳은 집에 시집갔더니 시부모님 두 분, 시누이 일곱 분, 남편의 비위를 잘 맞추어 주되 때에 맞춰 이들 여행도 모시고 다녀달라는 것 같다. 게다가 시누이들끼리 다툼이라도 있으면 서로 잘 조율해서 화해를 시켜달라고도 한다.
마음 같아서야 한 몸 불살라서 해 주고 싶으나, 그렇게 일했다가는 끝도 한도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받고, 바로 눈앞에 닥친 일도 버겁다. 가끔씩 떨어지는 숙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 아니 그냥 주관식이 아니라 논술 같은 거라서 해결하기가 쉽지도 않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정 수준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고객이 처음 접하는 일이면 괜찮다. 그만큼 알려주면 되니까.
문제는 고객도 지식이나 정보가 있거나, 과거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고객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사점을 가지고 오거나, 경험했던 다른 컨설팅 프로젝트나 컨설턴트와 비교해서 나은 점이 없다면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몇 번 기회를 주고 다시 해 오거나, 추가 주문을 해 달라는 요청이 오는데, 결과물이 흡족하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면, 서로 얼굴 붉힐 상황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 역할에 대해 선을 긋지 말고 지금까지 몇 번 언급했듯 '성심껏' 일하면 된다. 어차피 그 선이라는 것이 대부분 업무의 경계에 있거나 애매한 일들이라 아예 무관하지 않다. 가려운 곳을 몇 번 긁어주면 신뢰가 쌓이는데, 이 신뢰가 쌓이면 이때부터는 어떤 고객이건 내 편을 들어준다.
이렇게 적으니 대충 툭 던지는 말 같지만 사실이다. 한 달 정도 이리 성의껏 일하면 고객도 마음을 열어주며 공감을 해준다. 다음 두세 달째는 훨씬 편해져서 만 석 달이 되기 전에 IT컨설턴트로써의 입지와 자존심은 저절로 세워진다.
IT컨설팅 시장에서 새로운 것으로 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최근 20년 이내 차세대 프로젝트 안 한 곳이 없다. 이를 계기로 이미 컨설팅의 맛은 다 봤다고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내재화되어 버렸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로 찾아가서 90도 인사받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이다.
지금의 새로운 기술은 컨설팅 업체뿐 아니라 일반 기업도 발 빠르게 해외 시장으로부터 전달받는다. 우수한 인력도 이미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습득력도 빠르다.
과거에는 컨설턴트에게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했던 고객들이 지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대한다. 그런 이들에게 IT컨설턴트가 보여줄 서비스는 '그들의 일을 내 것처럼 생각하고 진짜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할 말을 '대신' 해 주는 것도 해당한다.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의외로 앞서 언급한 '시누이 간 다툼' 앞에 놓일 일이 많다.
<차세대 시스템 마스터플랜 수립>이라는 컨설팅을 한다고 할 때, 어떤 목표 시스템은 얼마간의 기간을 두고 어떤 방법으로 할지 방안을 세우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만 하면 되니까.
실제로는 고객사 내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갈등도 풀어가야 한다.
리더 십간 생각이 다르고 조직 간 알력이 있고, 업체 간 견제도 들어오므로 이를 잘 조율해 가며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한다.
이럴 때 때로는 타협의 기술도, 때로는 쓴소리를 논리적으로 잘 포장할 기술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IT컨설턴트가 오롯이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사와 더불어 해 나가는 거다.
그래서 상호 '신뢰'가 필요한 것이고, 그 신뢰에는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내 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고객이 고민하는 것에 충분히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초기 투자는 족하다. 이때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
이게 바로 컨설턴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하면, "고맙다"라는 말을 들으며 일하게 된다. 컨설턴트의 자존심은 별게 아니다.
내가 만족할 만큼 일하는 것이고, 고객이 만족하는 표정을 볼 때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