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Aug 22. 2022

IT컨설턴트와 현실세계와의 간격

IT에세이

그동안 IT업계에서 프로젝트를 숱하게 해 오면서 점차 점차 깨닫게 된 것이 있다.


IBM에 입사하여 IT컨설턴트가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다. (지금은 작은 컨설팅 사업 중)

회사 홈페이지는 각종 자료들이 등록되어 있었는데 필요할 때마다 뒤져서 공부를 하고 내 업무에 적용했었다. 이때는 서점에 가도 IT 관련 서적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고 번역서도 부족했었다.

 

90년대 후반에야 각 가정에 인터넷 보급이 활발해지고 그 당시 우리 윗세대는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이 무렵 회사 동료들과 수다를 떨 때 자신들이 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이런 식이다.

명절날 친척 어르신들이 모여서 어느 회사 다니냐고 하셔서 "IBM 다닙니다"라고 하니, "아이고, 공부 잘해서 좋은 데 갈 줄 알았더니 왜 이름도 없는데 들어갔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거기 컴퓨터 수리해 주는 데지?"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대학생 선호 1,2위 다투는 시점이나 한국에서는 현실세계와 IT는 아주 먼 간극이 있어서 생긴 에피소드다.


이때는 시스템 구축을 할 때 데이터 량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이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새 시스템으로 빠르게 전화해서 옮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시기였다. 그것도 모두 보관이 어려워 다른 디바이스, 주로 테이프에 보관했다. 당시 사이즈가 큰 이미지 파일이 많지 않아서 이런 데이터 타입은 별도 방안으로 진행했다.

20년대 접어들면서 하드웨어의 발달과 인터넷 확산으로 데이터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는데 거기 걸맞춰 IT 프로젝트도 진행되었다.


지금은 카페에 가면 어르신들이 키오스코 앞에서 쩔쩔 매시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머니도 팔순이 넘는 연세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기본은 사용할 줄 아시고 배우는데 그리 두려움이 없으시지만, 카페나 식당마다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키오스코 앞에서 서면 매번 당황이 된다고 하신다. 나이 든 사람이 오면 매장에서 누가 도움을 주면 좋으련만 대게 자기 일만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 컴퓨터였을 때는 노인들이 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없었으나 지금은 생활에 불편할 정도로 IT가 생활 속에 쑥 들어왔다.

메타버스에서 말하는 거울 세계(현실세계+효율성+확장성)가 일상화된 셈이다. 내가 노인이 될 때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한다면 이제는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등장할 것 같다.

나는 "컴맹이야"라는 말로 끝까지 배우기 거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잃는 것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IT업종이 아닌 사람들 중 더 전문가가 많아졌다. 오히려 IT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에 깊게 파고들어야 하니 이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하나만 익히기도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을 일일이 쫓아갈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성향이나 역할에 따라 새로운 기술동향을 찾아보고 적정 수준으로 익히는 분들이 간혹 있으나 대다수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업종 특성상 어차피 나의 전문 분야 외 다른 모든 영역이 고루 얽히기 때문에 하나의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한 전체 모습은 어렴풋이 알게 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렴풋이'

예를 들어서 UI/UX 전문가가 데이터 아키텍처, 인프라 등을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는 소리다.


IT업계에 몸담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키워가며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그 분야를 넓혀보곤 하거나, 아예 역할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IT컨설턴트가 개발자를 하는 경우는 없으나 그 반대는 간혹 볼 수 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똑같은 IT를 하는 사람이지만, 이 둘 간 기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IT업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적 호기심이 남다르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분들의 글을 보면 감탄을 자아낼 때가 많다. IT의 역사도 꿰고 있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함께 엮으며 IT를 바라본다. 허들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는 사람들 같다. 그렇게 바라본 IT 우주 사진에서 우리 같은 IT인들은 하나의 반짝이는 별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 별들은 주변 별만 관심 있지 은하 넘어 저 멀이 있는 별에는 관심이 없고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도 관심이 없다.


명절날, 아이의 엄마들 만날 때, 또는 다른 업종의 사람들을 만날 때, 새로운 만남이 있을 때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항상 뭔가 바빠 보이는데 IT컨설턴트가 뭔지 감이 안 와서다.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나도 언제부터인가 설명하려다 포기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IT를 한다고 하면 바로 '개발'을 한다고 생각해서 더 곤란했다. 가장 쉬운 설명이 "개발자들이 개발을 잘할 수 있게 컨설팅해 줘요"인데, "그러면 개발 잘하시겠네요"라고 한다. "아니요, 개발해 본 적 없어요."라고 하면 더 이상해 한다.

이전에는 "건물 지을 때 기획하고 설계하고 짓잖아요. 시스템도 건물하고 비슷해요. 앞단에서 기획, 계획, 설계, 관리가 필요한데 그런 일 하는 거예요"라고 부연한다.

그러다 지금은 그냥 "3D업종에서 일해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릴 때 '아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택할걸, 이러야 원 바쁘기만 하니 애 돌볼 수도 없고, 살림도 배워야 하고. 차라리 요리, 미술, 음악 이런 거 업으로 했으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좋았잖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밥을 해 먹을 수도 없고 아이와 놀아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실생활에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이었다.


그런데, 서두에서 말했듯 프로젝트를 계속하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에서 얻은 경험이 실생활에도 꽤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1.

프로젝트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람은 셀 수가 없다. 이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졌다.


'왜 계획 마감일까지 자신의 일을 저 정도로 밖에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나이가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타당하지 않은 경우도 많으나 그 조차 이유로 인정이 된다.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폄하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불어 잘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몫이 작아도 해 낸다.

성향이 특이하여 빈축을 사는 사람도 가만히 보면 자신의 옷에 걸맞지 않은 역할을 맡아서 생긴 일이 많다. 그 사람의 장점을 잘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역할을 주면 완전 반대의 평판을 얻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적시적소에 사람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배움에 있어서도 속도가 다 다르다. 내가 빠르다고 남도 그 수준으로 맞춰서는 안 된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치는데 꽤 오래 걸렸다.  learning corve를 고려해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몇 예만 들었을 뿐인데, 아이를 키우면서 얻은 노하우와 일할 때 쌓인 노하우가 어느 날 서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다 똑같았다. 한쪽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쪽에 적용하면서 '사람'으로 바라보니 프로젝트 '갈등'요인도 아이의 낯선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프로젝트할 때 대부분 남자들이라 한국의 남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기회도 많았다. 남편을 대할 때 이것도 꽤 도움이 되었다.

 

2.

 IT컨설턴트는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계획, 관리를 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건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물론 '미루기'습관은 누구나 있듯 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는 간단한 일정 계획을 습관적으로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일할 때 일정준수는 지나치게 원칙주의자이다.)

프로젝트를 할 때 '계획 대비 진행'이라고 하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프로젝트 일정과 아이의 일정, 가정의 대소사 일정까지 모두 챙기려면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구멍이 뚫려도 뚫리게 되어있다. 이리 계획을 세워둬도 실제로는 제대로 되는 법이 없다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은 '미리' 해 둔다.


지금은 션이 커서  '프로젝트 일정' 이거 하나만 챙긴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


처음 IT컨설턴트를 시작했을 때는 나의 생활과 일의 간극이 넓어도 너무 넓었다.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10년, 20년 넘어가서 30년 가까이 가니 일에도 생활에도 '사람'이 보인다.

내가 대학 입학할 당시 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미래는 IT가 각광받을 거야, 여자도 차별 없을 거야'라는 말을 듣고 전공을 강요받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직 그 미래가 아닌 중간 단계일 수도 있겠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내 일을 사랑하나 보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게 하고, 건강도 빼앗고, 아이와의 시간도 빼앗고, 잠자는 시간도 빼앗았는데, 그 모든 것에 나의 '선택'이 있었다. 아이도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라고, 일에 열정을 가지고 보낸 세월만큼 일에도 '키운 정'이 철썩 들러붙은 것 같다.


내 직업이 형체를 가지고 있다면 한번 정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나를 힘들게 한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를 여기까지 성장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사실은 너를 많이 사랑한 거 같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기간이 짧은데 다 해야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