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컨설턴트에게 필요한 소양 중 '문제해결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나도 한 적이 있다.
문제해결력이란
명확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으며 복잡하여 예상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해결방안을 수립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여 체계적인 진행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라고 말한다.
문제해결력의 구성요소로는
맥락 파악 & 문제정의, 문제 구조화, 가설 수립, 우선순위화,
Work planning, 분석과 통합,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실행과 모니터링
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생기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부분 문제해결력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어떤 방법이든 해결해 보려고 애쓴 과정 모두가 문제해결력의 예이다.
숙제가 몰렸는데 내일 시험까지 겹친 데다 마침 몸살이 왔을 때,
내 꿈은 파일럿인데 부모님은 경영학을 전공으로 했으면 하고 원하실 때,
친구들 중요 모임과 애인 100일 축하일이 겹쳤을 때 등 굳이 컨설턴트가 아니라도 우리는 매일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은 항상 생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참 뜬구름 잡는 말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하면 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서 간략히 답변을 했는데, 이후 다시 차분히 생각해봤다. 그때 예시를 적었는데 좀 더 상세히 풀어보면 이해가 더 쉬울 거 같아 보인다. 가끔 내 블로그에 IT컨설턴트가 되고 싶거나 현재 몸담고 있는 주니어들이 있어 보여서 도움이 될까 해서다.
8월 초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어려움이 많은 주였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프로젝트도 긴박하게 돌아가서인데, 일주일 중 3일간의 나의 행적을 적어보면 IT컨설턴트가 프로젝트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 애쓴 사례가 될 듯하여 소개한다.
현재 프로젝트에서 나의 역할은 전체 프로젝트 진행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진단'하여 고객사 대표에게 보고하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잘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에 대한 근거를 잘 정리해서 가져가서 고객사 대표님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보고/설명을 드리는 것까지 나의 역할이다. 여기까지만 제대로 해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
고객사가 우리 회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프로젝트 진단'을 해 달라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객사 대표는 그 진단 결과를 듣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잘되고 있다, 문제가 있다를 듣고 '아 그렇구나'가 아니다.
내가 대표라면 잘되고 있다고 하면 다소 안심은 되지만, 직원들과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는지 알고 싶을 테고,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움직이고 싶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 프로젝트 수행의 책임이 있는 고객 PM/수행사 PM/PMO PM에게 바로 지시를 내리게 된다. 방법이 어찌 되었건,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라고'.
궁극적으로 '프로젝트 진단'을 하는 이유는 '보고 자체'가 아니라 '성공적 오픈'이다.
따라서 나의 역할이 '보고'라고 하더라도 컨설턴트로써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진단 결과 보이는 문제에 대해 '보고'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해결을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나의 행보는 다음과 같다.
<월>
우리 팀이 발굴한 여러 사실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문제점들을 도출하되, 프로젝트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하고 우선순위 높은 문제들만 따로 정리를 시작했다. 이 작업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난주부터 계속 이어진 작업이었다.
내일까지 마무리해야 할 작업이라 체력 안배 차원에서 11시경 일찍(?) 퇴근했다.
퇴근하자마자 밤 12시에 갑자기 두드러기가 생겨 온 다리에 퍼져 응급실로 갔고 응급조치 후 퇴원해서 집에 오니 새벽 3시였다.
<화>
3시간 자고 9시에 사무실 도착했다. 어제에 이어 작업을 계속하여 새벽 2시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진단과정에서 도출된 몇 가지 문제는 당장 프로젝트 멤버들에게 알려줘도 보완할 일정이 촉박해 보였다. 문서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내일인 수요일 일정은 오전 고객사 대표님 보고 후, 오후에는 타 계열사 설명회 일정이 하나 더 잡혀 있었고 위치가 다 달랐다. 만약 프로젝트 멤버들에게 설명회까지 추가한다면 급히 미팅 일정을 잡아야 하나 지금은 새벽 2시다.
<수>
다시 3시간 자고, 8시 출근길에 프로젝트 멤버 중 한 분에게 급히 연락했다. 10시 40분 회의실을 잡고 프로젝트 사람들에게 설명회 공지를 부탁했다. 그리고 오후 방문할 계열사에게는 별도 설명회 자료를 전송해 달라고 따로 부탁했다. (고객사 내에서 만든 자료는 함부로 유출해서는 안되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9시 고객사 대표님에게 '프로젝트 진단 보고'를 하였더니, 역시나 동석한 고객사 임원과 부장님들에게 해결 지시를 내리신다. 이분들께는 이미 10시 40분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프로젝트 진단 설명회 소집을 했으니 거기서 내가 설명을 먼저 진행하고, 이어서 당부의 말씀 및 추가 말씀 더 하시면 된다고 안내했다.
프로젝트 진단 설명회 후 관련 자료 공유하고, 점심 후 다시 계열사로 이동하여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계열사 설명회는 나의 업무 범위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계열사별 확대를 해 나가는 것으로, 과거에 이미 진단한 여러 사실들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계열사에 Lessons learned로 미리 알려주면 비슷한 시행착오를 하지 않을 것 같아, 이 역시 먼저 다가가 설명을 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있었던 일 중 '문제해결력'은 크고 작게 이루어졌다. 문제해결력의 이론적 정의가 어찌 되었건, 내가 했던 행보는 '고객 입장' 그리고 '성공적 오픈'을 위해서 나의 일을 중심에 두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두드러기 치료를 위한 병원 방문을 목요일로 미뤄야 했고 3일간 잠도 몇 시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수요일 계열사 설명회까지 마치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표님 보고만 하면 되는 역할이나 실제 내가 만난 사람은 수직, 수평으로 펼쳐진다. 아마 대표님 보고만 하고 서면으로 관련 내용이 하달되었다면, '자신의 치부를 밝혀내는 보고를 위한 조직'이라며 환영을 못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발로 뛰고 사람들 만나며 Q&A를 하면서 해결에 대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이들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해야 할 일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된다.
문서가 '힘'을 가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적고 나면 나의 삶이 꽤 고단해 보인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365일 이런 게 아니다. 필요할 때만 이리 움직이면 된다.
IT컨설턴트들이 비교적 적극적이기는 하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그중 나는 적극성이 상당히 높은 경우다. 과거에 비해 숨 고르기를 하는 편이기는 하나 프로젝트 진행 시 '타이밍'은 너무 중요하기에, 나의 판단에 '지금' 움직여야 프로젝트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것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지금은 경험이 쌓여서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기보다 사람들이 변화관리를 할 수 있도록 시간 간격을 두면서 강도를 조절하는 편이다.
일에 몰입하면 내 건강을 해칠 만큼 덤벼드는 성격이기도 해서 이것도 많이 자제하고 있다. (이후 목금은 가볍게 일하고 토일은 회복 차원에서라도 아예 푹 쉬었다.)
아마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일도 내 삶이다. <정체성의 심리학>에서 워라밸의 최근 정의는 일과 삶의 의미를 '시간'의 축이 아닌 '의미'의 축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정말 공감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대충하고 칼퇴근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해서 워라밸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일을 할 때 나의 가치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할 뿐이다.
매번 '이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해 가면서 하나씩 행동에 옮기다 보면 고객사 건, 수행사 건 결국 상호 신뢰도 쌓이게 된다.
IT컨설턴트의 문제해결력의 예를 든다고 들었는데, 내포하는 의미는 많다.
매번 말하지만 '선택'의 문제다.
태어나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저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서 하지 않는다'에 핵심이 있다.
문제해결력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발'로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