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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Sep 11. 2022

소식좌 만세

깡지가 사는 법

어느 날 유튜브 추천 영상에 소식좌 영상이 뜬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다가 속이 후련해졌다.

먹방이 난무하는 가운데 적게 먹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도 어려서부터 워낙 적게 먹었다. 편식은 하지 않고 채소 건 육류 건, 생선이건 고루 먹었으나 '양'이 작았다. 조금이라도 더 먹으면 목구멍까지 음식이 가득 찬 것 같아 힘들었다.

나에겐 정량이었으나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새 새끼 모이 정도로 먹는다고 할 정도였다.

마르고 약해 보이고 키도 월등히 작아 부모님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셨다가, 그래도 감기 외 잔병 치례 없이 잘 자라서 건강 걱정은 덜 하셨다. 키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170cm 가까이 크다 보니 그냥 적게 먹는 체질인가 보다 하신 듯하다.

무엇보다 편식 없이 다 잘 먹어서 나도 딱히 집에서는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적은 없다.


단지 유제품은 먹기만 하면 속이 울렁거려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버터, 치즈, 빵, 케이크 등을 먹지 못했다. 우유도 당연히 못 마셨는데, 키가 워낙 작아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키가 크고 싶어 코를 막고 작은 우유팩 하나를 1년간 먹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빵류는 초코파이였고 그것도 하나가 정량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어울려 다니며 식사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친구와 선배들 먹는 량을 보고 내가 적게 먹는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저렇게 많이 배에 들어갈 수 있구나를 가끔 생각했나 보다.

음식 남기면 안 된다며 깔끔히 다 먹는 모습 보면서,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애당초 먹을 만큼만 덜어 먹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저리 많이 시켜놓고 억지로 다 먹나 가 이해가 안 갔나 보다.


사회생활하면서는 일이 많아서 거르는 일이 더 많아졌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리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일에 집중하는 데는 밥을 먹고 먹지 않고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주위에서는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냐고.

최근 읽은 책들을 보니, 단식을 하면 소화를 시키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필요치 않아 뇌가 더 활성화된다고 하던데 그 이유였나 보다.


그런데,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사무실에 가끔 단체 간식을 먹을 때가 있다. 피자나 햄버거, 소시지, 샌드위치 등을 함께 먹을 때였다. 피자 같은 경우, 큰 조각 하나 먹고 두 개째 먹으면 배가 부르다. 그래도 맛있으니 억지로 두 개 정도 먹는데, 이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이 자제심이 대단하다는 거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 인가했는데 알고 보니 어떻게 피자 두 조각만 먹고 더 먹고 싶은 욕심을 누를 수 있냐는 소리였다.

나이가 드니, 처음 본 분들은 나더러 '관리를 너무 잘한다.'류의 말씀을 종종 하기도 한다. 여전히 일이 많거나, 쉬고 싶을 때, 끼니를 종종 거를 때가 있는데, 이런 모습 보면서 '다이어트'하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를 아는 대부분은 내가 매일 모든 끼니를 다 챙겨 먹지 않기도 하고, 먹어도 1인분을 다 못 먹는 걸 안다. 그래도 서로 불편해하지 않는 이유가 다들 함께 먹으러 가면 양 조절이 딱 좋다. 많이 드시는 분에게 내 분량을 덜어드리면 다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


올해 들어서 그래도 1인분 먹을 때가 있는데, 오래된 지인은 깜짝 놀란다. 이럴 다 먹었냐고.

'1인분'의 양을 내 위장이 정한 게 아니라 식당 주인이 정해 준 것 같은데, 나도 제법 양이 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1인분 다 먹을 걸로 개인기를 보여줄 수 있다니.


먹는 양으로 그리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았는데 딱 한 곳만큼은 예외였다.

결혼 후 시댁에서다.

'복스럽게' 먹는 사위, 며느리가 예쁘고 사랑받는데 나는 양이 너무 적었다.

그렇다고 적게 먹는다고 눈치를 주거나 하지 않으셨으나, 가족을 위해 요리해 주신 분들은 맛있게 두세 그릇 싹싹 비워주면 얼마나 보람 있겠는가.

어머니, 형님 모두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나도 감탄을 하며 먹긴 하지만 많이 먹기란 불가능했다. 반면 우리 동서는 리액션도 좋았고, 실제로 복스럽게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괜히 나 스스로 비교가 되어서, 나도 도전해 보려다 목구멍까지 음식이 찬 느낌이 들어서 집에 돌아오면 토할 것만 같았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냥 내 양 대로 먹었다.


50이 된 지금, 여전히 양은 적다.

종종 끼니를 거르는 습관은 여전하고, 위장은 튼튼하다.

나의 동료들은 한때 억지로 먹이려고 하더니 지금은 이해해 준다.


한동안 먹방이 유행을 하길래 왜 인기가 좋은가 하고 보려다가 말았다.

남이 먹는 걸 왜 보고 있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맛있게 먹는 것과 많이 먹는 것의 경계가 참 오묘했다. 적게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그 많은 양을 다 먹으며 감탄사를 곁들여야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소식좌'가 등장했다.

적게 먹어도 배부른 사람들이 나타난 거다.

안 먹어도 배 고프지 않고, 적게 먹어도 배 부른 사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아기 때부터 그리 큰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너무 반가웠다.

지금은 소식좌 중에서도 나는 이제 가끔 1인분 먹을 때가 있으니 대식가에 들어가겠지만,  대식가 일색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이어트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자제심이 커서도 아니다.

그냥 위가 작을 뿐이고,

양이 적어도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안다.

무엇보다,

음식으로 최대 효용을 낼 수 있음을 알려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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