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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Aug 09. 2023

어머니, 나이 듦의 미학

깡지가 사는 법

내 글 중 시어머니를 존경한다는 문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며느리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을까 싶은데,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며느리에게도 존경받을 만한 시어머니라는 말 자체가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가를 반증한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어떤 위치로 우뚝 선 분들을 보고 존경한다, 나의 롤모델이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물론 사회 유명인사 중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그 위치에 이르기까지 여간 험난하지 않았을 텐데, 타고난 재능뿐 아니라 노력이 있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도 용기만 얻는 게 아니라, 격려와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우리 어머니를 존경하고 닮고 싶다. 내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는 많다.

결혼 전 오빠(지금의 남편)의 가족에게 인사하러 갈 때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을 때 "우리 엄마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했다.

이후사랑하는 가족이 되어서, 10년, 20년, 30년 가까이 뵈다 보니 참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랑비에 옷 젖듯 알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어머니는 물이라면, 나는 불에 비유할 수 있다. 비슷한 점을 찾는 다면 부지런함과 끈기 정도일라나. 

내가 겸손하고, 인자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유달리 끌리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그간 만나본 사람들 중 어머니의 인품과 근면성은 탁월하다. '지혜롭다'는 표현은 쉽게 나오지 않는데 어머니는 항상 '지혜로우시다.'


언젠가 어머니의 지혜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날이 오겠으나, 오늘은 그중 '나 듦', '늙음'을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적고 싶다. 

(예술가도 아니면서 머리 말리다가 갑자니 떠 오른 이 생각이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꿈을 꾸다가 깨면 잊히는 것처럼 그냥 휘발성으로 날려버리기 싫어서..)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셨다. 어찌 보면 맏며느리들의 애환이 있을 법도 한데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이셨다.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 취미생활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글(서예)을 꾸준히 쓰셨고, 등산도 하셨다. 나중에는 민화로 바꾸셨고 연세가 많이 드시면서 등산은 더 이상 못하시고 동네 산책을 하신다. 어머니도 물론 바쁠 때는 생략할 때도 있으나 긴 세월을 보면 항상 꾸준히 하신다. 

어머니의 취미와 체력관리에 대한 나중에 자세히 하겠지만, 매번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로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은퇴하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참 고우셨고 지금도 고우시다. 연세보다 최소 10년은 젊게 보이셨다. 션이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션을 돌봐주셨는데, 보는 사람 대부분 어머니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 빠지지 않았다. 내 눈에도 화장기 없어도 고운 피부, 맑은 눈동자, 풍성한 머리숱, 곧은 다리, 항상 웃으시는 모습이 참 곱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몇 해전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셨다. 대략 2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하시며 한동안 새로 난 흰색 머리카락과 염색을 한 머리카락이 섞여 있어서 보기 싫을 거라고 말씀해 주신다. 나에게 가끔 흰머리 할 건데 괜찮겠냐고 질문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네, 멋있을 거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마침 강경화 장관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흰 단발머리로 자주 TV에서 볼 수 있었는데 정말 멋었었고, 이후 시니어모델 선발 프로그램에서도 흰머리일수록 괜히 더 마음에 끌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흰머리로 탈바꿈하셨는데, 아버님과 가족들은 내색은 크게 하지 않으시지만 반기지 않는 눈치다. 

그럴 때마다 멋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항상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모습에서 흰머리를 선택하신 순간, 어머니도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을 아실 텐데,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크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얼마나 용기를 내셨을 까 싶어서. 


이 용기는 '외모'에 대한 용기가 아니라 '나이 듦'에 대해 마주하겠다는 용기로 보였다. 


실제로 내 눈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머니의 흰머리는 상당히 훌륭했다. 윤기 있으며 웨이브진 은발 느낌을 주었고, 완전 화이트가 아니라 회색이 살짝 가미되어 더 멋있게 보였다. 얼굴이 여전히 고으시고 피부고 하얘서 잘 어울렸다. 모르는 분들도 '머리 색이 멋있으세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나도 이전에는 흰머리를 구분하지 못했는데 관심 가지고 보니 사람들의 흰머리도 다 고유한 색깔과 윤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응원과 달리 피를 나눈 가족들이 응원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더 커서 같다. 어머니의 용기보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예쁘고 젊은 엄마', 연애시절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아름다웠던 나의 아내'를 더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나도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이 항상 그 자리 그 모습 같다가 어느 날 세월이 느껴짐을 느낄 때 괜히 짠한 마음이 든다. 솔직히 나 역시 어머니의 흰머리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말로는 응원했으나 막상 마주치니 생각보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다 어머니와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했는데,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션이 태어나고 함께 다니니 '할머니'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영 마음이 이상하더라는 거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나 역시 '어머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마음 든 적이 있으니까. 역할로서 할머니, 어머니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로서 할머니,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영 낯설었다. 사무실에서는 이사님, 상무님으로 불리다가도 션의 엄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션 엄마'로 불리며 나의 이름은 사라진다. 

그 온도차가 꽤나 극심했다. 

어쩌면 저 호칭도 역할의 정의도 있으나 나이를 느끼게 해 줘서 낯설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나이 듦, 늙음 역시 현명하게 지혜롭게 맞이해 주고 계신다. 마치 우리 자식들을 항상 품듯이 말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다.

그런데, 나이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있다. 20대에는 풋풋함이 있듯이 80대의 아련함과 지혜로움이 있다. 


나도 숫자로 표현되는 나이 말고, 주름으로 보이는 나이를 기쁘게 맞이하는 중이다. 

 주름이 장착되고 흰머리가 늘어가는 내 얼굴이 문득문득 낯설더라도 '이제 나도 늙었구나'가 아니라, 새로 사귄 연인처럼 사랑할 예정이다. 


우리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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