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하려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부의 추월차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 등 많은 책에서 시스템으로 돈을 벌게 하고 일찍 은퇴한 후 자유 시간을 즐기라고 권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아끼고 저축을 열심히 하는 사람, 투자 및 재테크를 열심히 하는 사람 등, 이런저런 경제 공부를 하고 발품 팔면서 열심히 미래를 위해 살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자유시간'에 대한 갈망은 나도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
그런데 나는 필요할 때마다 '자발적 야근'을 해 왔다.
누구 눈치를 보기 위해 늦게 까지 앉아 있다기보다, 한정된 시간 내에 일의 완성도를 더 높이고 싶어서가 큰 이유였다. '일이 많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같은 일을 해도 좀 더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고객 중 한 분이 질문을 하셨다.
그렇게 잠 못 자고 일하면 힘들 텐데, 왜 그렇게 하냐고.
답은 빤했다. 재미있으니까.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손길이 좀 더 닿으면 어느 순간 일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러다 실마리가 풀리면 오락거리와는 또 다른 쾌감과 가까운 재미가 느껴진다.
나뿐 아니라 우리 팀 공통 증세다. 이 말을 들은 고객은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게 더 해석이 안될 거 같다고 바로 이해하신다.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팀 모두 일할 때는 저리 집중하고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조기 은퇴는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보인다.
경제적 독립의 수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그 목표를 달성하면 일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 보이는 문구가 많다.
반면 나는 '일'에 대해 미련이 많다.
아마도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더 맞는 표현일 듯하다.
한때는 일중독인가, 노는데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으나,
나보다 먼저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일도 생활의 일부분, 아니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당연히 소중한 것임을 알려주는 태도를 꾸준히 보여주셔서 안심을 했다.
이왕 일하는 거, 일 할 때 재미를 느낄 만큼 열심히 하고, 짬짬이 쉴 때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면 일하곤 놀건 매 순간이 즐거워진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매 순간 감동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성실히 사는 삶과
현재에 집중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일에 몰입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삶은
서로 다른 듯해도 어느 정도는 닮아 있어 보인다.
경제적 자립이 그냥 되나, 성실은 기본이고 전략이 얹어져야지.
하지만 내 마음을 뒤로한 채, 경제적 자립만이 인생의 목표가 돼서 이를 부르짖고 싶지 않다.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해서 성실하게 살면, 이런 날들이 쌓여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 경제적 자립이라는 단어가 참 애매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있어야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큰 부를 모아서 엄청난 자산가가 되겠다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경제적 자립'은 가계 규모 내에서 알뜰히 쓰면 된다.
non 파이어족이라는 말은 없다. 그냥 내가 만든 단어다.
나는 경제적 자립을 한 사람보다, 평생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더 부럽다.
경제적 자립 이전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사회에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시점이 온다.
이어령 선생님, 박형석 교수님처럼 그 시점을 지나서도 계속 좋아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립을 하신 분들보다 더 대단해 보인다.
나도 여가시간의 달콤한 즐거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최대한 누리려고 한다.
매일 일에 매몰되어 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본다.
점차 일의 비중은 줄여나가겠으나, 언젠가 평생 해 온 일과 안녕을 고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non 파이어족을 꿈꾼다.
대신 5년 후, 10년 후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형태를 바꾸지만
일의 가치는 여전히 존중하면서
좀 더 나의 삶에 맞도록 '조화롭게'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