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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Jan 13. 2023

은퇴 후 일터로 돌아오는 연어족

IT에세이

IT컨설턴트를 하면 프로젝트 단위로 옮겨 다니게 된다.

IT프로젝트는 짧게는 서너 달 기간도 있으나 최소 1년에서 3년 정도의 장기간 수행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 대부분은 대형프로젝트 이므로 1년 이상은 기본이다.

사실 대형 프로젝트 규모가 되어야 컨설팅 업체를 포함시킬 수 있는 비용이 프로젝트 예산에 포함되므로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형 IT프로젝트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단 국내 각 업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들이 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자체가 규모가 크고 매출이 높으니 이를 뒷받침하는 IT시스템도 크고 복잡하다. 그리고 각 업계를 선도하다 보니, 시스템을 새로 구축할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장비들이 적용된다. 수천억 이상의 프로젝트이므로 당연히 IT컨설팅 업체도 함께 참여한다.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는 IT컨설턴트를 참여시킬 예산도 부족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체계화된 프로젝트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프로젝트 추진에 더 방해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각 업계 선두기업들이 앞다투어했던 시스템 재구축 프로젝트들은 '국내 최초 적용'을 외치는 요소들을 최대한 접목했었다. 그 덕에 이름 없던 작은 설루션 업체들이 중견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던 고객사 직원들 중 꽤 많은 것을 습득하기도 했다.


반면, 그 당시 '죽도록 고생했던' IT컨설턴트들은 '이렇게 살다가 제명에 못 죽겠다'하고 어디론가 꽤 많이 사라졌다. 아예 업계를 떠난 사람도 있었고, 더 이상 을은 싫다며 갑으로 옮긴 사람들, 그리고 유명 컨설팅 업체 경력을 가지고 국내 대형 SI 업체로 가서 입지를 굳힌 분들도 많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당시 IT컨설턴트의 단가 대비 지금까지 나아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낮아지기도 해서이다. 국내 기업들이 급 부상하면서 컨설팅업체의 연봉과 복지를 능가하는 곳이 점차 늘었다. 한때 여러 기업체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자 꽤 많은 컨설턴트를 흡수했다.


나도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까를 결정해야 했던 시기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현장에서 뛰는 것'을 선택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차별화 요소로 브랜딩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IT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그렇게 프로젝트를 계속하다 보니 같은 기업을 수차례 하게 되었고, 내가 젊은 시절 만났던 고객들이 지금은 은퇴를 했거나 해야 하는 분들이 상당수 생겼다.


직장인들의 은퇴에 대한 자세와 분위기는 '조용히 은밀하게' 바뀌고 있다.

일단 국내 대형 기업 기준의 이야기다.


내가 30대였을 때 몇 기업에서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이참에 관둬야겠다'는 여성 직장인들, 사내 커플들이 많았다.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만 당시에 여자가 일하면서 육아를 함께 하는 건 정말이지 힘든 시절이었다.  그리고 누가 회사를 나가야 한다면, 여자가 또는 사내 커플 중 한 명이 나갔으면 하는 보이지 않는 기류도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직장에서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진급을 하지 못한 나이 많은 직원들도 꽤나 눈치 보이는 분위기였다. 정년이 있긴 했으나 알아서 '적당한 나이'가 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분들이 꾸준히 있었다. 나이는 많아지고, 나보다 후배가 나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생기다 보면 서로 불편한 경우가 늘어서다.

그래도 이 시기 은퇴를 결심하신 분들은 결혼을 일찍 한 세대라서 아이들이 다 자란 경우가 많았고, 그 윗 세대가 그러했듯 머지않아 손주 재롱을 볼 준비를 했다. 돌이켜 보면 어떤 분들은 현직에 있을 때 자녀 청첩장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이때 '명퇴금으로  뭔가를 차렸데' 소식이 간간이 들리긴 했으나 몇 해가 지난 후, 남은 사람들이 학습한 것은 괜히 돈 날리지 말고 '오래 다니자'였다. 그리 성공적인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꾸린 경우가 없었다. 최대한 오래, 가늘고 길게 버티자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대략 50대 중후반 정도가 되면, 회사에 남은 선임 중 선임이면서 임원이 되지 못한 부장, 팀장 정도 된다. 진급 운이 없는 경우 더 아래 직급인 경우도 있고, 팀장을 했으나  물러난 경우도 제법 있다. 요즘은 젊은 분들의 결혼 시기가 많이 늦어져서 이분들 자녀들도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이나 대게 미혼들이다.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하여 퇴직하시는 분들은 꾸준히 늘었다. 가끔 안부를 여쭈어 보면 은퇴 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최대 2년이 지나고 나니 대부분 무료하고 심심해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일하셨고 의욕에 찼던 시절을 오랜 세월 봐왔기 때문에 일을 관두고 괜찮을까를 걱정했는데, '노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며 신나게 자유를 즐기시다가 2년 정도 지나면 '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지겨워. 놀 사람도 없고'라는 말이 여기저기 들린다.


그러다 최근 분위기는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작은 회사 또는 같은 회사에 돌아오되 연봉은 낮춰서 재취업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젊은 사람들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의 일자리를 더 만들면 어떡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역할'이 다르다. 경험이 많은 분들만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으므로 신구 세대의 격돌로 봐서는 안된다.

오히려 고령화 사회에 나이 드신 분들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향후 젊은 세대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 줄 수 있다고 본다. 세금을 내는 나이대를 이미 출생률이 심하게 줄어버린 젊은 세대의 몫으로만 줘버리면, 이 또한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인력 신규채용, 교체, 감축은 여러 면에서 효율적인 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나의 생각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두 다 기업에서 내 보내기에는  몇 분의 경험과 노하우는 상당히 빛이 났다. 이들의 노동력을 적정한 타협점을 가지고 다시 활용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개인 입장에서도 서로 윈윈 할 전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실제로 지난번 프로젝트 마지막 보고서에 간략하게 이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서 고객사 임원에게 전달드린 적도 있다. 아이디어 성 내용이지만, 고령화 사회에 기업이 할 수 있는 사회 참여 방법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아직은 소원한 일이지만, 주니어들과 제대로 된 멘토 시스템까지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전에는 은퇴 후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업종을 아예 바꿨었다. TV에서 가끔 대기업 임원이 편의점을 해요, 바리스타를 해요 등의 소개가 나오기도 하고, 택시를 타면 과거에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말씀해 주시는 분도 있다. 카페, 식당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동일한 일'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미흡하게나마 조금씩 열리고 있다. 물론 이전과 다른 조건이지만, 이분들이 원하는 건 '과거의 화려한 영광'과 '빵빵한 연봉 또는 복지혜택'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다.


이들을 '일터의 연어족'이라고 이름을 붙여봤다. 이분들의 장점은 '은근한 성실함과 노련한 경험'이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도 있다.  사람은 필요하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게 우리 사회다. 내 생각에는, 이런 분위기가 더 확산되지 않을까 한다. 여러모로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주변과 좋은 관계와 업무 능력은 있어야 이런 기회도 주어진다.)


나와 친한 두 분의 동료와 가끔 진지한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우리 셋의 특징은 '좋아 죽는 취미생활'을 2개 이상 가지고 있다. 일도  재미있어한다. 우리끼리  '은퇴'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결론이 같았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을 것 같아.

하지만 그 좋아하는 취미가 활동적인 것 한 가지만 있으면 노는데 한계가 올 수 있지.

정적인 활동을 하나 더 좋아해야 관계의 균형이 맞추져.

이왕이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활동을 하면 생활에 활력을 주지.

그리고 일도 재미있으면 계속해도 되지 않겠어?

연이 닿는 데 까지...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325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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