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탄생은 대단한 일입니다.
일전에 회사 팀장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갓 태어난 딸 아이를 안은 직후 "자기 인생이 정말 크게 바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아이가 생기고 나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부모님과 저는 매우 친했습니다. 서먹한 아들 느낌보다는 다정다감한 아들 포지션이었네요.
취업하고 30대 초중반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 호프집에서 술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습니다.
자연스레 부모님은 내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데요, 특히 엄마는 항상 이야기 하셨어요.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봐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저는 딱히 반박하진 않았고, 언젠간 결혼하고 아기도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솔로였고 삶이 굉장히 단조로웠는데, 가족이 생김으로 인해 이전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우주가 생길 것임을 기대하곤 했습니다.
어느덧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에 힘입어 적당한 회사에 취업해,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2년 1월 18일 아내의 출산 장면을 지켜보았고, 이쁜 공주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탯줄을 자르는데 손이 약간 덜덜 떨리며, 다소 질긴, 이세상 물질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투명한 그것을 잘랐습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자 말자 울먹였고, 간호사분께서는 능숙하게 호스를 통해 아이 몸 속의 이물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저도 너무 긴장했는지 입원실에 들어갈 때 체온이 높아서(37도) 같이 들어가지 못하고, 코로나 PCR검사 음성을 확인한 다음날에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동생이 먼저 아이를 낳았습니다. 여동생은 전적으로 육아를 엄마에게 많이 의존을 했는데, 사실 당시 저는 조금은 못마땅 했습니다. 아이는 본인들이 낳고 책임져서 키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한테 하소연을 많이 하셨었죠.
하루는 어머니 아버지와 삼겹살에 술을 마시며 제가 농담삼아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자꾸 애기 낳으라고 하는건 우리들에게 복수 하시려는거 아니냐"
"육아의 고통을 느껴보라고..."
참 철없던 이야기입니다만, 지금 육아를 하며 드는 생각이 일정부분은 맞는거 같기도 합니다. 복수라기 보다는 공감을 해보라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 보라고..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꿈틀꿈틀 아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이 아기는 지금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저의 기억은 어디서부터 언제부터였을까요. 어느 아득히 먼 심연으로부터 온 것 같습니다.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부모 또한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아가는 지금 순간을 기억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생생히 기억하겠지요. 출산, 가족의 성장, 자녀의 결혼과 또 다른 출산의 굴레가 인간 영생의 방식이 아닐까요?
아가는 태어난 이후 100% 부모에게 의존하며,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합니다. 엄마 손을 꼭 쥐는 촉감, 목욕할때의 따스한 물, 모유를 먹으며 배고품을 충족하고, 트름을 하는법, 방귀를 뀌는 법도 자연스럽게 아기의 속도로 천천히 익힙니다.
첨엔 방구뀌는것도 어려워 했습니다. 얼굴까지 시뻘게 지면서 온몸에 힘을 다 주면서 트림을 하는건지 방구를 뀌는건지 아가가 참 힘들어 했는데 너무 귀여웠던 기억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롭습니다.
아빠와 엄마에게는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이러한 것들을 아기의 입장으로 돌아가 다시금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