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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셉 Jul 04. 2021

[행간의이미지] 초기 토막글 모음(2/2)

이미지 리터러시를 위한 짧은 습작들, 두 번째 묶음




"점층? 점강? 아니 나열? 다시 비약? 산문시? 그런가 하면 돌연한 행과 연이다. 가지런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가 다시 처음의 꼬리를 문다"


그래픽은 점층하고 인물들은 점강하는 대조적 표현을 통해 시적인 레이아웃을 완성한다. 현실의 표정들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상승 곡선의 메시지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시어의 맛은 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현실태가 잠재태로 이동하고 그 역전의 세계가 현실로 마주하게 되는 것. 그렇기에 시의 현실은 잠재된 상상력의 재현에 가깝다. 한마디로 보이는 그대로의 것은 점강하고 내적인 메시지가 점층하는 현실 역전의 세계. 바로 이 이미지처럼. 이미지는 분명 시적인 운율감을 전달하고 있다.


#행간의이미지 #시적인그래픽




“본래 맥락으로부터 떼어내 인위적 구조 속에서 재구성한, 덜 사실적인 듯 그린 그림이 훨씬 더 실체와 유사해 보인다”


베이컨의 방식으로 파우스트를 그려낸 이 일러스트는 정말로 영리하다. 왜곡과 탈맥락으로 자아의 한계를 뚫고 들어가는 파우스트 박사를 표현하기엔 베이컨만한 참조점이 없으니까.


#행간의이미지 #베이컨씨의파우스트씨




"메를로-퐁티는 내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선 보여지는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것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공통의 살을 기반으로 대상 속으로 들어 감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대상 속으로 침투할 때 대상 역시 내게 침투하기에, 보는 자는 보여지는 자가 되고 보여지는 자는 곧 보는 자가 되는 기묘한 마법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시지각이 침투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아주 크거나 아주 작거나한 세계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작디 작은 세계의 이미지를 아주 커다란 회화 장치로 관람객에게 내보인다. 바라보는 이와 대상 사이에 공통의 살을 형성하기 위한 장치일까. 아니면 시지각의 불가능성을 깨닫게 하기위한 전략일까. 어떤 경우이든 이 전시의 주제는 마이크로 세계의 이미지도 거대한 오브제도 아니고 이를 바라보는 이의 당혹감인 것만은 분명하다.


#행간의이미지 #당혹감의시선




"90년대 사이버페미니즘을 점화시키며 그렇게 새로운 실험 공간을 창출해낸 인터넷 문화의 잠재력은 21세기에 들어서자 시들해졌다. 오늘날 온라인 인터페이스에서 시각성의 지배는 정체성 정치와 권력관계, 그리고 자기-재현적 젠더규범이라는 익숙한 방식들로 복귀하고 있다. (중략) 오늘날 웹에 잠복해있는 억압의 가능성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추려내면서, 페미니즘은 오랜 권력 구조의 은밀한 복귀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반면, 그러한 잠재력을 요령껏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그것들을 보증하는 물리적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젠더가 실시간적으로 생겨나는 실로 다종다양한 움직임으로 정의된다고 볼 때, 슈퍼쉬(SuperShe)가 만드는 커뮤니티는 오직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게 될 것이다. 대신 거기에는 기존의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연대하고 그 안에서 거주 가능한 주체 모델을 창조하는 대안적 실험이 있다. 월시의 브랜딩 작업은 기존의 규범들이 이 대안 공간에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시각적인 저항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행간의이미지 #시각성의회복




"참치들이 그물 위에서 펄떡인다. 짙은 푸른색 몸뚱이들이 하얀색 물보라를 일으킨다. 뻐끔거리는 입과 헐떡이는 아가미에 어부들은 갈고리를 꽂아 넣는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참치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온다"


나날의 생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에는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삶의 독특한 지문을 새기어 간다. 그것이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절박함이라면 지문의 색은 더욱 또렷한 깊이를 가질 것이다. 특히 어부와 물고기가 서로를 향해 어기어차 겨루는 투쟁의 빛깔은 그 어떤 색보다 영롱할 것이다. 사고를 이렇게 이어나간다면 이 정어리캔의 그라데이션이 자연의 섭리가 빛으로 남긴 것의 집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얼마간은 과장이겠지만 또 얼마간은 진실한 말이라해도 괜찮은 것은, 이 영롱한 패키지의 이미지가 그자체로 아름다운 색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행간의이미지 #생존의지문




"언캐니는 공포감의 한 특이한 변종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


나에겐 적어도 밤바다가 언제나 언캐니한 것이었다.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둑함 속에서 밤새 스스로를 매질하며 내뿜는 밤바다의 울먹거림이 온 몸을 무력화하게 한다. 포근하게 세계를 덮고 있는 낮의 바다를 알고 있기에 밤바다의 언캐니 정도가 더욱 수직상승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올리비에 부캐론의 3d 작품 <some where beyond the sea>는 이러한 언캐니한 밤바다를 질료적 이미지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어 온몸에 뾰족스런 전율을 받게 한다.


#행간의이미지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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