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머스 커피 브랜딩, 첫 번째 이야기
들어가며,
10년 전 가로수길에 처음으로 로스팅 팩토리를 세운 스페셜티 커피 공방 스티머스. 이제 가로수길이라는 한정된 로컬을 넘어 더 많은 장소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스페셜티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규모와 지점을 늘리는 물리적 확장이 아닌, 브랜드 정체성과 관계성을 보다 단단히 다질 수 있는 가치의 확장을 목표로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스티머스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첫 번째 단추로서 창업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브랜딩 프로젝트입니다.
PROJECT CONTEXT
커피는 단순한 음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한껏 고양된 기분과 한층 풍만한 사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에는 한가지 중요한, 아니 커피와는 결코 떼놓을 수 없는 물리적 조건이 있다. 자연스레 우리의 발걸음을 유도하며 편안히 몸을 안착하게 만드는 곳. 그러면서도 낯설고 비일상적 느낌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곳곳으로 가득한 곳. 서로 일면식 없는 이들과도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함께 오랜 시간 어우르면서, 동시에 자신과의 깊은 몰입이 가능한 곳. 바로 카페라는 물리적 공간을 말한다.
카페는 식음료를 판매하는 장소 이상의 역할을 하며 우리의 커피 감각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카페는 물리적 공간(Spatiality)을 넘어 특유의 정서와 감도, 나아가 특정한 문화까지 품어낼 수 있는 장소성(Locality)을 지녔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난 스티머스 커피의 모습이 꼭 그러했다.
1세대 스페셜티 카페로서 10년 이상의 오랜 연혁을 가졌음에도 그 인상은 결코 오래되고 퇴색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번쩍번쩍 화려한 인테리어나 힙의 시크한 이미지는 없지만 스티머스라는 공간, 장소성에는 그만의 단단한 매력이 엿보였다. 그것은 마치 커피 향을 누리고 간 감각의 흔적과 기억의 밀도가 차곡히 쌓인 테이스트 라이브러리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했다.
브랜딩 하기에 늦은 타이밍?
스티머스를 지켜 온 터줏대감이자 바리스타인 김성혁 대표님은 겸손하지만 올곧은 어조로 커피 공방의 새로운 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사라는 한 동네의 커피 공방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장소에서 스티머스만의 테이스트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리고 [스티머스 커피 팩토리샵, SFS(Steamers Factory Shop)]이란 새로운 풀네임이 말해주듯, 그가 말한 브랜드 확장에는 오프라인 공방의 다변화는 물론 커머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도 포함한다.
그런데 어쩌면 타이밍을 놓친게 아닐까 생각했다. 스티머스는 강남의 1세대 스페셜티 커피 공방으로서 누구보다 일찍 터를 잡았다. 그러나 창업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본격적인 브랜딩 작업을 하거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즉 '동네 커피 공방'으로서 스티머스는 존재하지만 '스페셜티 전문 브랜드'로서 스티머스의 모습은 아직 희미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2세대, 3세대 스페셜티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브랜드 활동의 대역폭을 늘리며 온오프라인 무대에서 스페셜티 전문 브랜드로서 존재감을 뽐냈다. 더욱이 마치 패스트 패션처럼 카페의 개성과 유행의 기준들이 빠르게 순환해가는 국내 자영업의 리듬을 볼 때, 브랜드 자산 및 활동을 강화하는 작업을 이제야 한다는 것은 다소간 아쉽게 생각되는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은 본래적 바이브
그렇지만 오히려 바로 그 점에서 스티머스는 유행의 때를 타지 않은 본래의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저마다 화려하고 컨셉추얼한 이미지를 소구하고 있을 때, 우직하면서 단단하게 스페셜티 커피 고유의 맛과 가치를 김성혁 대표님과 그의 동료 바리스타들이 이어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번 리뉴얼 프로젝트의 관건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퇴색하지 않으며 고객과 계속 감응해 온, 즉 스티머스가 간직한 본래적 바이브를 브랜드의 언어와 이미지로 표면화하는 일일 것이다.
PERSPECTIVE
앞서 카페는 특유의 장소성(Locality)을 가진다고 했다. 장소성이란 무엇인가. 선구적 연구자 렐프(Relph, 1976)의 정의에 따르면 장소성이란, 하나의 공간이 물리적 요소들(Materials)와 사람의 생동적인 움직임(Movements)이 만나 독특한 형태의 문화적 의미(Meaning)를 발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장소성의 개념 구도를 스티머스 브랜드의 본래적 바이브 찾기라는 우리의 과업에 대입해 보자.
이 세 가지는 그 자체로 답을 의미하지는 않고, 스티머스 브랜드의 바이브를 그려내기 위한 방향추 역할을 한다. 이 방향추를 기준 삼아, 지난 10년 동안 스티머스 방문객들의 기억과 감각으로 기록된 브랜드 경험을 추적한다. 소셜 네트워크와 블로그 인터뷰 등에서 아카이빙된 스티머스 경험 데이터를 기준으로 유의미한 정성적 키워드와 동시에 가장 많은 언급이 된 순으로 정량적 키워드를 모두 크롤링한다. 그런 다음 두 키워드 간 교차점을 연결하고 이를 위의 세 가지 장소성의 개념 구도로 다시금 정렬한다.
이렇게 정리된 맥락적 키워드(Contextual Keywords)를 중심으로 먼저 진행했던 구성원 인터뷰 자료와 대입하면서 스티머스만의 본래적 바이브를 위한 핵심 단초들을 도출한다.
재료, 로컬, 사람에 대한 존중
스티머스라는 공간에는 재료, 로컬, 사람이 있다. 각각의 요소는 스티머스가 보유하고 있는 물리적 자산이면서도 그들만의 고유한 바이브를 매개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하다. 우선 재료(RAW)는 어렵게 꾸며낸 스페셜티가 아닌 원두 본연의 테이스트를 최대한 살리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두 번째 로컬(LOCAL)은 인위적인 컨셉츄얼로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오래도록 그 안에서 지속하고 편안하게 자리할 수 있는 로컬 속 공방을 지향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사람(MAKER)은 함께 만드는 이들, 팩토리의 메이커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삶의 밸런스를 주고자 노력하며, 그런 배려와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
재료에 대한 존중, 로컬에 대한 존중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 스티머스 일원들은 이 존중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가꾸어 나갈 때 스페셜티 본연의 것들 - 본연의 테이스트, 본연의 로컬 바이브, 본연의 관계 - 을 소중히 지켜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리하여 스티머스만의 브랜드 바이브는 [Respect Original, 스페셜티 본연의 것에 대한 존중]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근래 몇 년 사이 다양한 모습의 스페셜티를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많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상향평준화되는 커피의 품질과 카페라는 장소성의 컨셉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생존전략이 깔려 있다. 그렇다보니 스페셜티 커피 그 자체의 고유한 감각이나 경험 보다는, 지역의 가벼운 힙한 물결에 따라 저마다의 트렌디함과 컨셉츄얼로 무장하기 그리고 그 동네의 흥망에 따라 쉽게 뜨고 지는 모습들이 빈번히 목도된다. 이런 숨가쁘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스페셜티 본연의 자연스런 바이브를 존중하며 10년 이상 로컬의 한 자리를 오롯하게 지켜 온 스티머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분명 스페셜티 시장을 넘어 국내 커피 문화의 존귀한 자산이라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존중의 언어를 브랜드 관점으로 다시 쓰기
다만 스티머스의 고유한 바이브를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확산시켜나갈 언어적 토대가 부족했다. 당장 Steamers라는 브랜드 이름에 대한 의미적 전달력도 쉽지 않고 시각적 자산도 패키지와 매체에 따라 상이한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 통일되고 유기적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제약점이 많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Repsect Original이라는 스티머스의 본래적 바이브를 중추로 브랜드의 언어적 시각적 자산을 하나씩 재정의하면서 대고객 확산을 위한 자원들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NARRATIVE
스티머스가 앞으로 고객들에게 전하는 스토리텔링의 구체적 기준과 내러티브를 정의하는 작업이다. 어렵게 설명했지만 Respect Origin이라는 스티머스만의 관점을 고객의 언어로 풀이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물론 모든 소재들을 브랜드 에센스에 맞춰 기계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하나의 핵심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전체 브랜드 내러티브의 줄기를 잡아간다. 그래야 스토리텔링의 그림이 유기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스티머스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메이커들이 있다. 질 좋은 원두 본연의 테이스트를 살리는 것도, 로컬 속에서 편안하게 방문객을 환대하는 일도 그리고 따스한 동료애로 스페셜티 바이브를 흐르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을 매듭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스티머스(Steamers)란 단어는 라떼 위 거품을 내는 파트를 담당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업계 내부의 용어로서 보편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다양한 테이스트를 선보이는 스티머스를 대변하기에도 대표성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steam'을 따로 떼어 놓고 그로부터 새로운 정의들을 억지로 만들자니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어로는 중언부언한 설명이 될 것 같아 아예 한국어 조합의 연음을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스페셜티 메이커스 = 스티머스'로 한글 표기(발음) 상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여 브랜드만의 관점이 정직하게 연상되도록 했다.
메이커스의 관점으로 정의된 핵심 가치
대고객 제공 가치의 풀이 역시, 메이커스의 시선과 태도 그리고 관계적 움직임에 따라 이루어진다. 스페셜티 본연의 감각을 중시하는 오롯한 태도, 공방을 방문하는 이에 대한 진심 어린 환대 그리고 이 업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것들 모두 스페셜티 메이이커스로서 스티머스가 공방 고객들이 진심으로 느끼길 바라는 가치의 테이스트다.
첨언하면 세 가지 핵심 가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오리지널리티’에 있다. 사전적으로 고유함과 창의성이란 뜻을 모두 포함한 단어로, 가장 본래적인 것(본연의 테이스트)로부터 가장 독창적인 것(우리만의 바이브)가 발휘된다는 뜻으로 스티머스 메이커들의 신념을 잘 반영해준다.
커피 팩토리샵의 포지셔닝 정의 구체화
더불어 지역의 한 커피 공방에서 온오프라인 팩토리샵으로의 리포지셔닝 선언에 관한 스토리텔링도 개발하였다. 동네에서 로컬리티로, 로컬리티에서 온오프라인 전문샵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팩토리샵’의 개념으로 알곡히 채운다. 서비스와 퀄리티에 대한 약속과 신념을 강조하며, 커피가 가진 진정한 테이스트 경험을 나누려는 스페셜티 메이커스로서의 선언을 풍성히 다져나간다.
EPILOGUE
브랜드 리뉴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새롭게 변화된 모습은 자칫 브랜드가 쌓아 온 이미지를 훼손시키거나 고객들에게 브랜드 인식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뉴얼 작업에는 오래된 익숙함과 의도된 새로움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본 프로젝트는 익숙함 대 새로움이 아닌 다른 종류의 균형감각이 필요했다.
네이티브 대 바이브. 스티머스가 지켜 온 가치를 올곧게 헤아리고 그것을 본연의 맛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표면화하기.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도록 적절한 언어적 맛의 바이브가 느껴지도록 하기. 이를 위해 앞 서 보았듯이 브랜드가 간직한 유무형의 기억들에서 네이티브 가치를 추출했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마음에 확산될 수 있는 이야기의 바이브를 깨우기 위해, 브랜드 캐릭터(스페셜티 메이커스)를 매듭으로 언어적으로 다시 쓰는 과정을 거쳤다.
이에 따라 우리 작업은 새로운 느낌으로 변모하는 리뉴얼(Re-new)이 아니라, 고객들 마음에 스티머스의 약속들이 다시금 일깨우게 하는 리마인드(Re-mind)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과정이나 그 결과가 바이럴의 성격 보다는 본래적 바이브를 찾기 위한 정공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이게 맞다고 믿는다. 스티머스 메이커스들의 태도인 Repsect Original은 화려함 보다는 고유함에, 과시적이지 않고 편안함을, 복잡한 감각 보다는 자연스런 감응을 존중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시작된 그리고 지금도 오롯하게 쌓아 갈 스티머스의 존귀한 테이스트가 더 많은 이들의 커피 감각을 일깨울 것을 믿는다.☺
WORK SCOPE
브랜드 에센스 정의, 버벌 & 스토리텔링, 비주얼 아이덴티티
PEOPLE & TIME
SFS. 스티머스 커피 팩토리샵, 14주 (22년 5-8월)
WORK & WRITE
Brand Creative Union, 워킨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