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게

달큰한 오디 열매의 향

수아에게

by 바지락

"오후 네 시에 갤러리2관에서 두 명의 레즈비언이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겠어요, "

하고 객석 쪽을 보는 배우에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히 만난 여자들의 이야기를 위해 필연적으로 만난 여자들이 함께 앉아있었다.

낭독극을 처음 관람했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긴 의자 하나와 각자의 타블렛을 가지고 모든 걸 하기에는 소품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수 개월 동안 금세 몇 개의 낭독극과 음악극을 더 보고 난 후에 그건 순전히 내가 낭독극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극의 진행에 따라 타블렛은 카메라, 핸드폰, 책, 카톡 등 다양한 수단으로 바뀐다. )


이동 가능한 계단형 좌석이 있고 그 앞으로 놓인 무대 구조도 특이했다. 무대에서 올려다본 소규모의 객석이 정해진 좌석이 아닌 선착순으로 들어가며 고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앞쪽 열에 계신 연륜 있는 분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추천해주셔서 쭈뼛거리다 금세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평소라면 계란의 흰자가, 흰자가 되기도 전의 점액질인 액체가 그만 어딘가에 엎어지거나 보글거리며 끓어 넘치는 뜨끈한 냄비로 몸을 지지고

금세 노릇한 흰자가 되어서 계속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던 것 마냥 따뜻함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며 계속 돌고 있었을 텐데. 날계란과 익힌 계란을 구분하는 법으로 계란을 돌려 보면 된다고들 한다. 도무지 방향을 정하지 못해 줏대 없는 익힌 달걀이 나였다. 가운데 앉아 계시던 분의 갈색 가방 사이로 비닐봉지에 싸인 계란 껍질이 보인다.


예상지도 못한 적극적인 자리 안내에, 노년층은 극형식의 무대에 익숙하지 않다는 단단한 편견이,
그 손짓 몇 번으로 휘휘 휘돌려 애매한 온도에 섞이지 못한 채 떠다니는 천장형 에어컨 바람과 함께 환풍기로 사라진다.
그리고 희미하게 코끝을 스치는 그들의 오딧빛 안도의 향.


이름도 모르는 동굴 안 오디로 만드는 와인을 숙성시키는 동굴이었다. 아마 속초쯤이었던 것 같은데 (가족 여행지가 생각나지 않을 때 무조건 속초를 말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겨우 열댓 살이었지만 아직도 그 보랏빛 과실 오디 향이 생경했다.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추운 어두운 동굴에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리쬐는 따가운 해 아래에서 그림자진 나무 정승과 함께 잇는 건 더 싫었다. 감각은 신경을 자극하고 그 안에는 장면이 하나 들어 있으며(그거 하나면 된다.) 순간 그들의 가방에 묻어나는 오디의 향에 괜스레 코가 찡 아려온다. 그 오디는 항상 오디를 갈아 주던 할머니, 그걸 먹지 않던 엄마와 에어컨 온도를 조정하는 직원의 코에까지 들어간다. 왜인지 오디 향은 이 공간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공간에 있던 모두의 옷자락부터 머리카락에 오디가 붙고 그들은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어느 누구도 재채기를 하거나 숨을 내뱉지 않았다.


여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퓨즈처럼 얽혀 빛과 열과 감도를 전달한다.

언어일 수도 있고 몸짓이나 닿음, 접촉을 통해서 차마 자기장이 갖지 못한 생동감과 활기를 여기저기 퍼트린다. 주도적인 언어와 친밀성의 주파, 여물은 궤도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오디향을 맡았다.

뚜렷하지는 않을뿐더러 말을 걸 용기도 없었지만 평소 알던 포도와 거봉과는 전혀 달랐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 알 수 없는 관객들의 연대감이란 보통 공연이 끝나고 무대인사에 박수를 치는 순간에나 미세한 떨림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하기에 이 골목골목 사랑과 무지한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오는 길에는 모텔과 서성이는 커플이 정말 많았고 아직 오후 네 시였다.) 주택가 오르막 끝자락에 있는 극장까지 찾아온 다양하고 수많은 여자들.

각기의 떨림과 설렘이 펼쳐지기 전의 느낌은 어둠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듯이 막연하다. 제 옆자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의자 그 사이에 앉아 적막 속에서 그들의 크나큰 애정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또한 내가 소극장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물론 금전적인 이유도 빼먹을 수 없다.)

여성 서사극을 위주로 관람하게 된 이후로는 이런 스치듯 불어오는 설렘을 꽤 자주 느낀다. 특히 이날 레즈비언의 연애를 말하는 이 공연 맨 앞 줄에는 앉아계셨던 중노년층의 여성분들. (보통 중, 노년층에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는 건 보편적이고 꽤 정확한 정보이다. ) 적어도 이들이 이 고개를 넘어 공연을 보러 왔다는 것, 그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이 수면 위로 올라온 아가미 없는 물고기라거나 푸르기보단 어둡고 깊은 심해를 마주한 민물고기 같은 느낌이다.



쓰고 나니 분위기 얘기 밖에 없네. 극에 나오는 주영이라는 인물의 전 애인이 유디트에 대한 공연을 올렸다고 해서 네 생각이 났어. 그 사람이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것도,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너가 떠올랐단다. 편지체로 쓰지 못한 건, 어차피 발송될 일이 없어서야. 잘 지내고 있니? 다시 생각해보니 같이 연극을 본 할머니 분들께서도 레즈비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난 정말 편견에 절어있구나. 규탄해도 좋아. 다함께 첫번째 줄에 앉아 계셨어. 내 앞, 왼쪽에 앉았던 머플러를 하신 분은 계속 노트에 필기도 하시더라. 우리도 멋진 할머니가 되자.


너랑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건 확신해. 용기가 나면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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