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게

대만 편의점 밀크티

현지에게

by 바지락

2020.9.9

잘 섞인 홍차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아 쌉살한 향이 풍긴다. 녹차보다는 여리지만 결코 코코아는 되지 못한 잎. 000은 대만에서 6개도 넘는 밀크티를 마셨지만 우유를 붓고 설탕을 기호대로 넣어준다는 게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텁텁한 홍차가 한국에 가면 치과를 가게 될 만큼 달고 단 밀크티가 되어버렸다. 홍차는 좋아하지 않지만 입안에는 우유와 설탕 맛 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이, 단단한 설탕 분자들이 입안을 거니는 맛 이전에 혀를 휘감는 살살한 맛이 존재했다는 것. 버블티가 조석현상이라도 일으키듯 밀려왔다 쓸려갈 동안 홍찻잎은 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는 걸 다들 잊은 듯 하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무한대로 펼쳐진 가판대 제일 끝에 있던 두툼한 우유팩을 겨우 두 번만에 열었다. 그것도 두 금 마시고 숨을 돌리려 침대 위에 잠시 팩을 얹는다.
시원하다, 금세 다른 음료들처럼 맛과 향을 내지 못한 채 목구멍으로 사라지고 만다.


몇 년 전 함께 대만에 갔을때 밀크티 대신 푸딩을 먹을걸 그랬어. 살살하다 라는 말이 홍차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쌉쌀하고 달달함을 조금씩 부수어 섞으면 살살한 홍찻잎이 나올 것 같더라.

이년 전 대만은, 두드림이었어. 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끝없이 이어지던 두드림. 우리 방 앞 누군가가 함께 조식을 먹으러 가자 하던 희미한 목소리가 생생해. 수많은 장소와 음식들 사이에서 향도, 맛도 없는 주먹은 왜 선명할까?


우리는 원초적인 방법을 잊은 거야. 방 문 앞에 가기도 전에 전화를 했으니까. 서로의 방 문을 두드릴 용기조차 가지기 힘들었고 지쳤으니까. 조식을 먹고 박물관에서 무료한 한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박물관에서 한시간으로 할 수 있는게 있을까. 가혹한 일정이야. ) 다시 점심으로. 문화의 거리를 들렀다가 좀 더 복잡한 골목길 끝자락에 있는 한국식 삼겹살 집에 멈춰. 바퀴는 또 굴러굴러 숙소로 다시 조식으로.


나는 벽이 있으면 항상 두드려 보는 걸 좋아해. 콘크리트인지, 가벼운 합판인지,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내 주먹을 넘어선 두터운 벽 뒤에는 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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