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게

소음

벌새

by 바지락

20. 11.12


얼마 전에 영화 벌새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헤드폰에서 징징대는 소리가 울리길래 아마 <파리대왕> 처럼 일부러 소리 효과를 넣은 것이겠구나 했어요. 우연히 여름인 영화의 계절과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머리가 아려 오는 그런 소리요.
영화가 끝나자 한두시 정도였습니다. 영화나 책이나, 사진을 보거나 글을 읽으면 금세 느껴지는 포만감에 만족스러워하며 머리 속에 있는 두루뭉실한 것들을 차마 단어로 옮길 생각은 없는지 뚜껑이 열리지 않은지 오래인 펜을 한 손으로 돌려댑니다. 그 징징거리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함에 양화를 너무 감명깊게 보았던지 귀를 두 손으로 닫아버립니다. 구깃구깃 접어서 귓구멍을 막아버리죠. 이명이라면 귀를 막아도 들렸을 텐데 위쪽에서 들려오는 지직거리난 소리에 상체를 젖혔습니다.
방 전등 아래에 개미처럼 생겼지만 날개가 달린 벌레 한 마리가 계속 일정한 높이로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작고 어두운 방 안 그가 갈 곳은 전등 아래밖에 없다는 듯이 네모난 빛을 경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영화 내내 함께하다니 참 끈질기다 싶었고 소리로 제 존재감을 과시하듯이 날갯죽지는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삼십분 남짓의 대치 끝에 휴지를 있는 힘껏 구겨 버린 저는 아마 그 안에서 몇 초가량 움직였을 날개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벌새를 생각합니다. 영어판 제목이 허밍 버드여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애매하게 잘 어울려서 두었던지 간에 그를 발견했을 때에 저릿하던 진동음을 생각해요. 벌새가 무슨 새였던지, 어떻게던 소리를 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우둘투둘 돋아 있던 팔에 난 소름이나, 일,이초 정도 떨리는 어께도 같은 느낌이겠죠. 하품을 하면 소름이 돋는데 다른 이도 그런지 모르겠네요. 인조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한번 쓸어 보다가 낙타의 괜스레 두꺼운 가죽이 연상되는 건조한 살결을 만져 보았습니다. 은희와 유리 사이, 은희와 지숙 사이 애매하게 이어지던 온기도 이런 느낌일까요? 미숙한 손끝에 털끝이 곤두서고 어께부터 무릎까지 소름이 돋아옵니다. 쥐가 난 왼쪽 발이 미세하게 찌릿거리는 것도, 시원한 뒷목과 옆구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간지럼을 타는 것도 어딘가에 쓸모있는 몸의 기능일까요? 아니라면 사랑이나 오해나 같은 얼기설기 엮인 몸들의 서툰 감정일까요. 지금 제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곳은 앞으로 채 한걸음 가지 못하도록 네 면이 막혀 있는 독서실이랍니다. 벌레의 날갯짓보다는 시원하지만 그와 비슷한 소리가 사- 하고 퍼져나오고 있죠. 실제 공기청정기일까 아니면 스피커일까요. 백색소음치고는 소리가 좀 커서 이어폰을 꼈습니다. 옅은 털이 나 있는 제 굽은 허리를 원하지 않는 면접에는 가지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구부정하게 책상에 앉아 있어요. 하품을 한번 하고 다시 무언가라도 공책에 써볼게요. 글은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쓰는 일은 위로가 되요. 창작을 해야지 싶은 날에는 무기력하고 파도를 정면으로 맞은 날에는 오히려 물 속에서 공책을 찾아요.


벌새는 일초에 아흔 번이나 날개를 움직여 나는 새라고 해요. 오늘은 집에 가서 향을 피워야겠습니다. 며칠 째 티베트 고산에 있는 사원을 떠올리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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