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고. 지희에게
우리가 있는 은하계도 그저 어떤 것의 내부가 아닐까? 하는 친구의 말에 갑자기 뜨끈한 피가 도는 느낌이 든다.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과는 다른 소속감에 휩싸인다. (오래전 일기)
내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생각보다 감정적이다. 외부보다 훨씬안정감 있으면서 따뜻한 안전함을 새겨준다. 다시 신발을 신는 것이 무서워지도록.
계속 그 밖과 안의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가끔씩 들어가서신발에 묻은 흙을 털고 발을 녹이기도 했지만 금세 어찌저찌 하다는 이유로 누구에게서 쫒겨나곤 했다.
한참 계절을 다 보내고 다시 눈이 올 때쯤 창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너무 밝아서 눈도 못 뜨는 빛과 오고가는 이야기 속에서 상처받고 다치며 침묵하는 36도의 사람들을 보았을때.
기억은 왜곡되고 바뀌고 미화된다. 죽도록 싸우던 기억은 화해 후의 어색하지만 기쁜 기류로, 불이익을 당했던 기억은 그를 고치기 위해 투쟁하여 쟁취해낸 기억이 된다.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그때의 내 기억은 아직도 백업된 적이 없다. 반강제적으로 짜여진 관계 속에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드는 건 정말 웃기도록 어려웠고 내내 끼어들 수 있는 틈새를찾아 기웃거리다가,
나는 우연히 눈을 돌린 곳에 있던 그림자와 발자국들에게 이끌려 어딘가의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나도 무형의 발자국이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따뜻하고 안락한 사람들은 엄지 발가락이 조금 간지러워도 죽을 뻔했다고 믿지만 유난히 해가 지지 않던 그날 나는 작고도 작은 일개미에게 물렸었다.
틈을 만들고 문을 두드리는데 썼던 인도만한 노력을 제주도만한 내 공간을 탐구하는데 쓰기 시작했다. 거절당할 용기를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 흰 눈밭이 으스러지지 않은 곳이 없게 가득히 걸었다. 발이 얼어 오는감각과 전에 보지 못했던 눈꽃송이의 각짐에 빠져. 창문을 깬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감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