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이후에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나의 소속과 직업을 물어보는 곳이 많다는 점이었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야 당연한 물음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조금씩 난감해질 때가 많았다.
헤어샵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미용사가 내게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어보는 질문에 처음으로 버벅거렸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왠지 나 자신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 이후로 한참을 다소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었다.
관심 가는 기업들이 많이 참여하는 컨퍼런스의 티켓을 구입하는데, 소속과 직업을 쓰는 공간이 있었다.
내용을 입력하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고 또 나는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소속에 프리랜서라고 써야하나, 아니면 그냥 무직이라고 쓰면 되는걸까 고민해야만 했다.
결국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프로젝트 이름을 소속으로, 직업은 프리랜서로 기입하고 나서 마치 거짓말이라도 한 기분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학생도 아니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아직 취업준비생도 아닌,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이 질문을 언제 어느 때에 마주치게 될 지 몰랐고 가끔은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꽤 오랜 기간동안 내가 다니는 회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없어지자 나를 대표할 만한 게 무엇인지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작곡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헤매이고 있어요..
너무 무력해보일까? 아니면 한심해보일까?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인데.
나는 아직도 누군가 소속과 직업을 물어보면 조금 움츠러들고 나 자신을 다시 채찍질하곤 한다.
좀 더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