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Feb 20. 2018

김 예찬론

김 없인, 김 빠진다니까!?

편식 쟁이도 반한 ‘김’


 나는 나이에 안 맞게 편식이 심하다. 아니, 사실 ‘나이에 안 맞게’ 라는 건 주변을 의식해서 하는 말이고, 스스로는 나이와 편식에 별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과정에서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의무적인 행위는 아닐 테니까. 아무튼 나는 날 것, 해산물, 해조류, 그 외 말캉말캉한 식감을 가진 것들 일체를 거의 못 먹는다. (벌써 탄식이 들려오는 듯하다. “회를 먹는 즐거움을 모르다니..” 라든가 하는..) 익힌 육류, 계란, 밀가루 음식, 채소 등을 좋아한다. 군대 가면 편식이 고쳐질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소용없었다. 나는 내 몸이 원하는 것을 먹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먹는 해조류가 바로 ‘김’이다. 생김을 불에 요리조리 뒤집어 가며 막 구운 것도 좋아하고, 소금과 들기름, 참기름으로 간을 한 조미김도 좋아한다. 김자반은 볶음밥, 비빔밥은 물론이고 라면이나 국수에 넣어도 따로 조미료가 필요 없는 훌륭한 양념이 된다. 바삭하게 튀긴 김부각은 씹는 맛이 일품인 간식거리이기도 하다.


내가 김을 사랑하는 이유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변에선 나의 편식이 철저하게 기호와 선택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라는 핀잔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인데,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런 음식들을 입에 넣으면 정말 거짓말처럼 목구멍이 콱 닫히고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도대체 왜, 다른 해조류는 입도 안대면서 김만 그리 좋아하는가.


 우선, 김은 다른 해조류에 비해 친숙한 음식이다. 아주 어릴 적 이유식에도 들어가고, 소풍이며 운동회마다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에도 김이 메인이다. 또 김은 다른 해조류에 비해 식감이 좋다. 대부분 햇볕에 말리거나 가공된 제품을 먹기 때문에 미역, 다시마처럼 미끌거리지 않고, 바삭바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다. 김 위에 뜨거운 밥을 얹고, 간장만 살짝 찍어 먹어도 다른 반찬이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이왕에 김을 좋아하고 나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김은 몸에도 좋다. 비타민, 칼륨, 칼슘, 식이섬유, 인 등등 웬만한 해조류가 가져야 할 영양분을 다 지니고 있다. 면역력을 높여주고, 특히 요오드 부족으로 인한 갑상선 질환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칼로리도 낮다. 소금, 들기름, 참기름 등으로 조미된 김 한 봉 4~5g 정도의 칼로리가 겨우 20~30Kcal이다. 때때론, 소주나 맥주의 간단한 안주가 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장점들을 담고서, 김은 맛있기까지 하다.


소설 속, 내가 반한 김

 

 내가 특히 김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이유도 있다. 중학교 2학년, 감수성이 폭발하던 그 시기에, 친구의 소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다. 혈기왕성하던 중2 남학생이 읽기에 지나치게 뇌쇄적인 표현들은 때 아닌 독서욕을 불러일으켰다. 나이를 먹으며 한동안은 매년 1번씩은 정독을 하면서 인간관계의 본질과 허무, 사랑의 의미, 회복과 치유 등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곱씹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상실의 시대’만 9번이나 읽었고, 내 인생에서 청춘의 책을 꼽으라면 아마도 1순위가 ‘상실의 시대’ 일 것이다.


 그 상실의 시대에, 남자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아버지를 대학병원 병실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뇌종양에 걸려 임종 직전에 이른 아버지 병수발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미도리에게는 잠시 바람을 쐬고 오라고 하고, 생전 처음 보는 미도리의 아버지와 와타나베만 병실에 덩그러니 남는다. 미도리의 아버지는 겨우 단답형의 대답만 가능하고, 식사도 거의 하지 않는 상태였다. 와타나베는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들을 시도하다가,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식사를 권하는 대신, 자신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그 때, 그 음식에 김이 등장한다. 김으로 오이를 감아서 간장에 찍어 먹는, 한국에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음식. 와타나베가 감탄하며 김으로 만 오이를 먹는 걸 한참 지켜보던 미도리의 아버지는 물이나 쥬스를 드시겠냐는 와타나베의 물음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오이”


 아작아작, 오이의 식감과 간장의 맛, 그리고 바삭바삭한 김의 식감을 상상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맛이 돌았다. 실제로 술안주로 몇 번 먹어보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오이와 간장은 내 입맛에 좋지 않은 조합이었다. 역시 간장엔 김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조류인 김이 등장했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의 김은, 임종 직전의 환자조차도 식욕을 돋게 만든 음식 아니던가! 이러니 내가 김을 좋아할 수밖에.


김 없인 정말 김빠진다니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김을 좋아한다. 밥상 위에서 김은 때로는 식사 전체를 책임지는 훌륭한 주연 같으면서도 때로는 다른 음식들의 뒤에서 맛을 돋궈주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랑받는, 아주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장르 구분 없이 어느 밥상, 술상에나 잘 어울리는, 그런 김. 내가 너무 김 예찬론자처럼 얘기를 늘어놨지만, 실제로 '김 없는 밥상'은 정말 '김빠지는 밥상'이 되어버린다니까!?

작가의 이전글 안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