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Feb 20. 2018

안부

오랜 고독 가운데 잠깐의 평화이길

 전역 후 동생과 연지공원에서 축구공을 갖고 놀다가 왼쪽 어깨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어깨와 쇄골뼈가 어긋나면서 주변 인대가 터졌다. 철심을 박았다가 빼는 수술을 했고 거의 3개월 정도는 입원을, 퇴원 후에도 3,4개월 정도는 어깨 보조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온몸의 근손실이 심했지만, 그럴수록 더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선 매일 계단을 오르내렸고, 퇴원 후엔 매일 경운산을 오르내렸다. 하도 자주 다니다 보니 같은 등산로가 지겨워서 여기저기로 쏘다녔다. 주촌에서, 내동에서, 삼계에서 종횡무진 숨은 산길을 개척했다.
-
 경운산에서 딱 한 번, 환한 대낮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삼계 동신 아파트 뒷길로 오르다가 유난히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숲이 어둑해진 기분이 드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야산에 으레 있는 이름 모를 봉분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특별할 것 없이 길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하고 다리가 후덜거렸다. 등산객은 하나도 없었다. 하필이면 나는 영적인 존재를 믿는 편이었고, 심지어 초등학생 때 갔던 불교학교에서 까불다가 등산로 옆 봉분 위로 고꾸라졌던 기억도 났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봉분들 속 어르신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
 오늘은 금련산을 올랐다. 등산 목적이라기보단, 오르막길을 달리며 하체 운동을 할 요량이었다. 열심히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또 여기저기 봉분들이 보였다. 유난히 날은 따뜻하고, 햇살도 좋고,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가운데, 봉분들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나는 숨도 고를 겸, 봉분들 앞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너스레 떨며 안부도 물었다. 날씨가 좋죠? 등산객이 많아 외롭진 않으시겠어요. 사는 게 쉽지 않네요, 지혜를 좀 주세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따뜻한 날씨, 포근한 햇살, 산새 소리. 이 평화가 봉분 속 어르신들께는 참 오래된 고독이었겠구나. 내 평화가 당신께는 고독이었구나. 당신의 오랜 고독 사이 내 잠깐의 평화를 얻었구나. 


내 안부가, 당신의 고독을 아주 잠깐 평화롭게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타이퍼 #바트 #typer #bart #등산 #봉분 #무덤 #경운산 #금련산 #인사 #안부 #고독 #평화 #에세이 #시 #글귀 #작가#clover707dlx #tbt #계절의온도 #부경대카페 #경성대카페


* 페이스북에서 'typer, bart' 페이지를 검색해보세요. 

  페이지 좋아요, 팔로우하시면, 

  수동 타자기로 꾹꾹 눌러쓴 마음과, 글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typerbart/

* 인스타그램에서도 typer, bart를 팔로잉하고,

  매일 업로드하는 사진과 글을, 매일 읽어보세요!

https://www.instagram.com/typer.bart


작가의 이전글 다행히 사람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