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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22. 2018

참기름의 이름, 진유(眞油)

가짜 참기름이라는 이름의 역설

설탕보다 참기름


 ‘슈가 보이’ 백종원 씨는 음식의 감칠맛을 위해 설탕을 활용하지만, 나는 다양한 음식에 참기름을 활용하기 좋아한다. 여름이면 자주 먹는 매콤한 비빔국수에 진한 참기름 몇 방울 더해주면, 직설적이기만 했던 매운맛이, 보다 부드럽고 풍성해지기 때문. 주로 맵고, 짠 음식에 참기름을 더해주면,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내가 이렇게 참기름을 좋아하게 된 건 군대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다른 군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복무했던 공군의 어느 방공부대에선 오징어볶음이나 생선 튀김 반찬을 ‘극혐’했다. 특히 조식으로 그런 반찬이 나오는 날에는 헌병, 사통, 발사 보직처럼 새벽 근무를 뛰는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 외 일반 병사들도 조식을 거르거나, 몇 숟갈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알고 보니, 그건 가짜 참기름이었네


 처음엔 조식을 챙겨 먹으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안 먹겠다는 걸 손수 입에 넣어줄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포대장은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비벼먹을 고추장과 참기름을 비치해두는 것. 정 먹을 게 없으면 그렇게 비벼서라도 먹으라는 거였다. 처음엔 ‘우릴 6.25 세대로 보나’ 하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막상 먹어보니 꽤 맛이 괜찮았다. 병장들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김가루를 담은 비닐봉지를 건빵 주머니에 담아와 비벼먹기도 했다. 그때부터 군용 참기름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전역 후에,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 군대에서처럼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비벼먹었다가 예상보다 참기름 향이 너무 강해서 놀란 적이 있다. 참기름이라고 다 같은 참기름이 아니었던 것. ‘군용이 다 그렇지 뭐’ 하고 넘기기에도 너무 큰 차이였다. 알고 보니 병사 시절 내가 먹었던 것은, 순수한 참기름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참기름 향을 섞은 향미유였던 거다. 그래도 이름이 ‘참’ 기름인데, 향미유라니. 이거 그럼 ‘참’ 기름이 아니 ‘가짜’ 기름 아닌가?


 실제로 네이버에 ‘가짜 참기름’이라고 검색해보면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참깨로 낸 기름이라 참기름이기도 하지만, ‘가짜 참기름’이라는 건 이미 그 이름부터가 역설적인 거다. 참기름의 한자 표기는 진유(眞油), 진짜 기름이란 뜻인데, 가짜 진짜 기름이라니, 이 무슨 말장난이란 말인가.


참기름의 이름이  진유(眞油)라는 걸


 진짜 제대로 된 참기름, 진유(眞油)는 국내산 참깨로만 기름을 낸다. 원산지가 불분명한 수입산 참깨도 없고, 향만 내는 향미유도 없다. 급하게 고온으로 압착하면 향은 더 진한 듯하지만 탁하고, 벤조필렌이라는 유해물질이 섞이기 때문에 요즘은 저온 압착 참기름이 더욱 선호된다. 맑은 참기름, 향이 풍부하고 건강한 참기름의 조건은 분명하다. 국내산 참깨 100%과 저온 압착.


 덕분에 요즘엔 제대로 된 참기름, 진짜 진유(眞油)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군대에서 먹던 가짜 참기름은 잊고, 진짜 참기름으로 요리를 한다. 참기름에 채 썬 무와 소고기를 볶아서 된장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나물 무침에 무심하게 쓱, 둘러주기도 하고, 비빔국수에 몇 방울 더해주기도 하면서. 참기름의 또 다름 이름이 진유(眞油)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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