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 詩
작년 가을, 예상치 못하게 시집 한 권을 냈다. 그때 즈음해선, 내 의지보다도 그저 기질 탓 때문에라도 평생 글을 쓰겠단 생각은 했지만 책을 내는 건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대학시절 수십 번도 더 시도했던 문학 공모전에서 겨우 2번의 대학 문학상을 받았다. 우스운 얘기지만, 그렇게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 글들을 내가 껴안아 사랑하기가 어려웠다. 내 품에 있는 것들은 내가 사랑해야 하는 법인데. 그러다 보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글도 어쩐지 모두 조악하게 느껴졌다. 훤칠한 외모도, 번듯한 직장도, 금수저 집안도, 뭐 하나 갖춘 것 없는 시절. 내가 쓴 시와 글만이 내 자존감의 유일한 심지였으니, 어쩌면 스스로를 가장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던 때가 바로 작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감기처럼 어떤 기분으로 앓았고,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는 글을 쓰곤 했다.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도 업로드하고, ‘GLO BE’라는 문학 창작 페이지에도 공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간절히 바랬으니까. 이왕이면 읽고 난 후에 어떤 반응이라도 확인하길 바랬으니까. 그러다 작년 8월 말에, 한 출판사에서 GLO BE 페이지에 올린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라는 시를 보고 출판 제의를 했다. 얼떨떨하고 행복했다. 뭐가 어떻게 됐건, 내 책이 나오기만 한다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지금에 와서 보이는 거지만, 사실 내 책은 아주 철저하고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출판된 것 같진 않다. 소형 출판사에 무료 출판이니 유통이나 마케팅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첫 출판 분에 10군데 넘는 오타가 있었으니. 아무튼 그렇게, 일사천리로 첫 연락이 오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다시, 다 詩>라는 제목으로 내 인생 첫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심심할 때마다 죄책감을 빚었다
멋대로 주무른 후에 툭, 던져두고
무관심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었다
내 이십대의 면적은 좁고
결국 발 디딜 곳 없어지자
무관심할 수 없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매일 청소를 하는데도 먼지가 얇게 쌓였다
참, 부지런하구나. 너희들은
버려야 할 것들을 겨우 다 모으고서
버릴 곳을 찾지 못해
다시 방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내 방은 자꾸만 구석들을 잃었다
내 이야기를 너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입을 벌려 봐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누가 내 성대를 훔쳐 갔을까
시간을 닫고 고요해지면 좋겠다
그리고 벌써 5개월 정도가 지났다. 결과부터 말하면, 내 시집 <다시, 다 詩>는 약 300권 정도 팔렸다. 책 구매 고객의 대부분이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다.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기뻤다. 어쩌면 지금의 내 허무함과 불안감은, 간사한 사람의 욕심 탓인지도 모른다. 혹시 ‘인세로 목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속물근성 탓도 있겠다. 책을 내기 전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책으로 간직하고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팔리지 않는 책의 저자로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하는 쓸쓸함을 수시로 느낀다. 좁은 골방에 갇혀 궁상을 떨다가, 세상 밖으로 힘차게 나설 줄 알고 문을 열었더니 원룸에 들어선 기분이다. 확실히 더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꿈꾸던 곳은 아닌 기분. 아마 내 시집을 가장 많이, 정성 들여 읽은 사람은 바로 나일 것 같다.
글이나 음악, 그림, 온라인 콘텐츠, 뭐가 됐건 창작해낸 것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닿길 원한다. 그래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초 단위로 자꾸만 길어지고,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도 결국 다른 사람이 읽게 되는 순간이 오는 거다. 나는 이십대를 통과해오며 적어둔 내 글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해서 브런치와 8F, ㅍㅍㅅㅅ 같은 웹진에 글을 기고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내 책의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판매 현황을 확인한다. 거의 대부분은 추가로 판매된 기록은 없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건 하나도 외롭지 않다. 하지만 날 좀 봐줬으면 하는 단 한 명에게 외면받는 건 사무치도록 외롭다. 요즘은 오히려 책을 내기 전보다 외로운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내 글이 관심받지 못하는 건, 내가 관심받지 못하는 거니까. 내 글은 내 일부니까.
이런저런 글 작업을 하기 위해 자주 가는 카페가 몇 군데 있다. 역시 제일 만만한 건 스타벅스지만, 가끔 부경대 쪽으로 나올 때면 ‘계절의 온도’라는 카페로 향한다. 오래된 건물의 2층을 리모델링한 카페.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조명과 음악이 좋은 카페. 문학동네 시인선 시집이 가득하고, 한쪽 벽면엔 음소거된 영화가 상영되는, 아인슈페너가 맛있는 카페. 최근에 방문했을 땐 ‘비포 선 라이즈’나 ‘리틀 포레스트 2’가 상영되고 있었다. 자막 덕분에 소리 없이도 영화를 감상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계절의 온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쌓여있는 시집 한 권을 뒤적인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가 무심하게도 계속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그 영화보다 내가 조금 더 외로웠다.
내 책 속의 시들이 조금 더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