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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04. 2018

10년째 글 쓰면서 느낀 5가지

잊지 말자.

1. 몰아치는 열정보다는
   우직한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
   (당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어느 순간,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주로 비가 오거나 술에 취했을 때, 갑자기 엄청난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열정이 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그 열정을 ‘영감’이라고 거창하게 불러도 될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쓴 글들은 폐쇄적이고 과잉된 글들이다. 나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 이미 다 알아들을 만큼 적고서 계속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는 문장들,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비약, 쓸데없이 혼자 비장한 말투. 게다가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언젠가 어디서 읽어본 듯한 문장들도 섞여 있다. 그러면 ‘본의 아닌 표절’까지 오점이 하나 더 늘어난다. 


‘문학의 신’께서 점지해주신 천재가 아닌 이상, 그렇게 몰아치는 열정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별것 아닌 담백한 문장이라도 우직하게 뭐든 계속 써내는 꾸준함이 좋은 글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수식과 묘사는 흉내 낼 수 있어도, 핵심을 관통하는 문장은 꾸준한 공력과 필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열정을 놓치지 말되, 늘 꾸준히 쓴다.’ 그런 점에선 나도 아직 갈 길이 아주 멀다. 


2. 연결이 중요하다.
  멋진 단어 하나보다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문장 그 자체보다는 문장과 문장 사이가,
  하나의 그럴듯한 문단보다는 문단 간의 연결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자에게 잊히지 않는 ‘명문’을 갈망한다. 하지만 글이란 건 단어와 문장, 문단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구조물’이다. 쓰다, 적다 외에도 글을 ‘짓다’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장 하나를 건지려는 노력보다는 본인의 의도에 맞는 탄탄한 구조를 지닌 글을 지으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종류의 글에서 개요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간혹,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이나 풍문을 접하고서 일필휘지로 글을 적어내는 환상을 품을 수도 있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그런 대가들과 동급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우리가 수도 없이 연습하고 체화해야 할 기본적이고 이론적인 과정들이, 대가들에겐 이미 숨 쉬듯 자연스럽다. 무엇보다도 ‘대가처럼 엄청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지금 필요한 방식으로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3. 판단은 나중에 하고,
   일단 떠오른 생각은 꼭 잡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런 생각들 중 대부분은 처음의 느낌과는 달리 별 볼 일 없을 때가 많지만, 그런 판단은 나중의 일이고 우선은 그 생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방금 전까지 꾸던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그런 생각들도 거짓말처럼 몇 초, 몇 분 만에 사라져버릴 때가 많다. 메모를 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일단 말로 전달해두기라도 해야 한다. 나는 주로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기능을 활용하는 편이다. 


4. 아이디어는 의외로
   반복적
 루틴에서 나오기도 한다. 


뭔가 특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일상성을 깨부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소한 일탈, 훌쩍 떠나는 여행, 루틴의 변화, 때로는 놀라운 기행까지. 그런 시도를 통해 일상성 밖에서 창의성을 찾아낼 확률은 꽤 높다. 하지만 돈 많은 전업 작가가 아니고서야 매번 그렇게 일상성을 깨부수며 살 수는 없다. 생계를 위해 다녀야 할 직장이 있고, 생활을 지탱하는 관계들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아이디어를 획득하는 경제적이면서도 건강한 또 다른 방법은, 오히려 지극한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연수 작가처럼 달리기를 하는 방법도 좋지만, 운동은 딱 질색이라거나 무릎이 안 좋을 수도 있으니 뭐가 됐든 상관은 없다. 지키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큼 강박적인 루틴일 필요도 없다. 


나의 경우 일주일에 3번 정도 운동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시집을 읽는 정도다. 운동은 등산일 때도 있고, 달리기일 때도 있고, 헬스나 축구일 때도 있다. 자기만의 루틴을 따르다 보면, 그 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글로 표현되는 루틴은 매번 똑같지만, 그 루틴을 수행하는 현장은 매번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날씨, 사람, 컨디션에 따라 가지각색의 생각들을 할 수 있다.


5.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2번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구조적으로 탄탄한 글이라면, 당연히 글의 주제도 명료해야 할 것이다. 글의 구조가 탄탄한데도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지...?’하게 되는 글도 간혹 있다. 비유하자면, 잘 지은 건물이긴 한데 용도를 알 수 없는 경우다.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하면서 글의 주제, 또는 주제를 함축한 제목을 먼저 작성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물론 글을 쓰면서 그 방향이 조금 달라지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애초에 정해둔 주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글을 쓰는 내내 잊지 않아야 글이 방향을 잃지 않는다. 감성적인 문장이나, 위트 있는 문장을 잘 활용하면서도 글 전체 주제를 방해하지 않는 글들은 이런 주제의식이 명확한 글이다.


6. 이 글의 주제와 목적은


주제는 ‘내가 글 쓰면서 느낀 점’이고,
이 글의 목적은 오만하게 누굴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시로 읽으며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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