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Apr 11. 2018

가끔 찹쌀떡을 먹는다.

꼭꼭 씹어야 하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간식에 관한 우리 아버지의 식성은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나 아맛나. 과자는 맛동산, 빵은 단팥빵, 그리고 떡은 찹쌀떡. 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주요 간식 리스트에서도 팥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것 같다. 이런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어릴 적 우리가 먹을 간식을 사오면서도 꼭 아버지의 주요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두어 개씩 담아 오시곤 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도 찹쌀떡만큼은 웬만한 베이커리에서도 팔았던 것 같다. 왜일까?) 때문에 우리 집 주방 한 켠에 과자나 빵 같은 간식을 담아두는 바구니에는 늘 아버지 몫의 간식이 있었다. 


  하루는 그 바구니에 단팥빵과 찹쌀떡에 동시에 있던 어느 날. 내 생각으로는 나름 고민이 될 법도 한 조합이었다. 비빔냉면과 물냉면,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짜장면과 짬뽕 같은 조합이랄까. (물론 최상은 둘 다 먹어치우는 거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의외로, 아무 고민 없이, 찹쌀떡을 덥석 집으셨다. 마실 것도 챙기지 않으시고 두 입 만에 찹쌀떡 하나를 와구와구 씹으셨다. 아주 꼭꼭.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가, 찹쌀떡을 다 드신 아버지가 대뜸 “빈아, 떡이 빵보다 좋은 점이 뭔 줄 아나?” 물으셨다. 막 고등학교 입학했던, 떡보다 빵을 훨씬 좋아하던 내가 그걸 알 리가. 멀뚱히 있으니 아버지가 이어 말하셨다. “꼭꼭 씹어야 된다는 기다. 음식도 원래 그렇지만, 살다 보면은 꼭꼭 씹어 삼켜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사람은 자꾸 그걸 까먹거든. 떡을 먹을 때는 까먹을 수가 없지.” 그때는 이게 뭔 뜻인가, 싶었던 말씀이 살다 보니 와 닿는다. 


  살아가며 겪는 일들이 어찌 모두 부드러운 카스테라, 꿀떡꿀떡 넘어가는 스프, 시원한 사이다 같겠는가. 때로 어떤 일들은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도 끝까지 꼭꼭 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꼭꼭 씹어 삼켜야 뒤탈도 나지 않는 그런 것들이. 겨울바람을 뚫고 묵직하고 외롭게 허공에 울리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떠억! 망개~떠억!” 소리는 이제 듣기 어려워졌지만, 가끔은 베이커리에서라도 찹쌀떡을 사 먹고 싶어졌다. 꼭꼭 씹으며, 뭔가 내가 대충 삼켜버린 것들이 있진 않았나 돌이켜 보면서. 




이 글은 칸투칸 8F에 기고한 글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7582


작가의 이전글 딸 보민이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