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씹어야 하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간식에 관한 우리 아버지의 식성은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나 아맛나. 과자는 맛동산, 빵은 단팥빵, 그리고 떡은 찹쌀떡. 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주요 간식 리스트에서도 팥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것 같다. 이런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어릴 적 우리가 먹을 간식을 사오면서도 꼭 아버지의 주요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두어 개씩 담아 오시곤 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도 찹쌀떡만큼은 웬만한 베이커리에서도 팔았던 것 같다. 왜일까?) 때문에 우리 집 주방 한 켠에 과자나 빵 같은 간식을 담아두는 바구니에는 늘 아버지 몫의 간식이 있었다.
하루는 그 바구니에 단팥빵과 찹쌀떡에 동시에 있던 어느 날. 내 생각으로는 나름 고민이 될 법도 한 조합이었다. 비빔냉면과 물냉면,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 짜장면과 짬뽕 같은 조합이랄까. (물론 최상은 둘 다 먹어치우는 거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의외로, 아무 고민 없이, 찹쌀떡을 덥석 집으셨다. 마실 것도 챙기지 않으시고 두 입 만에 찹쌀떡 하나를 와구와구 씹으셨다. 아주 꼭꼭.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가, 찹쌀떡을 다 드신 아버지가 대뜸 “빈아, 떡이 빵보다 좋은 점이 뭔 줄 아나?” 물으셨다. 막 고등학교 입학했던, 떡보다 빵을 훨씬 좋아하던 내가 그걸 알 리가. 멀뚱히 있으니 아버지가 이어 말하셨다. “꼭꼭 씹어야 된다는 기다. 음식도 원래 그렇지만, 살다 보면은 꼭꼭 씹어 삼켜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사람은 자꾸 그걸 까먹거든. 떡을 먹을 때는 까먹을 수가 없지.” 그때는 이게 뭔 뜻인가, 싶었던 말씀이 살다 보니 와 닿는다.
살아가며 겪는 일들이 어찌 모두 부드러운 카스테라, 꿀떡꿀떡 넘어가는 스프, 시원한 사이다 같겠는가. 때로 어떤 일들은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도 끝까지 꼭꼭 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꼭꼭 씹어 삼켜야 뒤탈도 나지 않는 그런 것들이. 겨울바람을 뚫고 묵직하고 외롭게 허공에 울리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떠억! 망개~떠억!” 소리는 이제 듣기 어려워졌지만, 가끔은 베이커리에서라도 찹쌀떡을 사 먹고 싶어졌다. 꼭꼭 씹으며, 뭔가 내가 대충 삼켜버린 것들이 있진 않았나 돌이켜 보면서.
이 글은 칸투칸 8F에 기고한 글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7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