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루 살지 말자.
2015년 2월부터 2017년 11월 23일까지, 3년 간 부산의 한 ‘독학 재수 학원’에서 국어 담당 강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얼핏 봐선 ‘독학 재수’와 ‘학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처럼 보인다. 하루 종일 빽빽하게 수업 일정이 잡혀 있는 기숙형 재수 학원과 혼자 공부하는 독서실의 중간쯤 되는 학원이랄까. 아무튼 그런 학원의 특성상 수십 명의 학생 앞에서 일방적인 수업을 하는 티칭(Teaching) 강사가 아니라, 매주 1,2회씩 1:1 상담과 질의응답, 문제 해설, 계획 작성과 점검 등을 하는 코칭(Coaching) 강사로 근무했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가까이 진행했던 코칭 시간엔 모의고사 해설이나 짧은 개념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고민 상담도 많았다. 성적, 연애, 가족 문제 등등. 지금 생각해도 학생들이 그런 속 깊은 얘기를 내게 털어놔줬다는 게 신기하고 고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더 정이 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유난히 나를 잘 따르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염두에 두던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반드시 올해 대학을 가야 하고, 재수 생활이 끝나면 아마 나와의 인연도 끝날 것이다.’라는 거였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고생 끝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도 바쁜데 재수 시절 학원 강사와의 인연을 굳이 신경 쓸 겨를도,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도 “너 올해 꼭 대학 가고, 재수 시절은 싹 잊어. 선생님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니가 고생해서 이룬 결과를 마음껏 누려.”였다. 그런 태도의 배면에는 매년 수능이 끝나자마자 내게 밀려드는 허탈함을 스스로 달래 보려는 이유도 있었고.
간혹 잔정 많은 몇몇 학생들은 이듬해 2월, 입학 전까지 학원에 먹을거리를 사들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 예상대로 각자의 길을 따라 멀어졌다. 크게 아쉽거나 서운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방식의 관계 맺음이 누군가에게 ‘선생님’으로 불리는 일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사실 난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큼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작년 11월 수능을 마지막으로 학원을 그만두면서, 그나마 매년 사이클처럼 재수생을 떠나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일도 끝이 났다. 학생과 선생으로 관계 맺을 일이 사라진 거다. 생계의 차원에선 다시 돈 벌 궁리를 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선생님’ 타이틀에서 벗어난 후련함도 컸다.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기분으로 입고, 먹고, 글을 썼다. 칼럼을 기고하고, 라디오 다큐의 작가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다시 철없는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생활 중에도 3년 전, 2년 전 제자였던 동생들(나는 그냥 동생들이라고 하고 싶다. 나도 걔네들에게 그냥 편한 형이나 선배이고 싶고.)의 연락이 오곤 했다. “쌤, 잘 지내시죠? 저 누구누구인데요...” 하면서.
2주 전, 학원에서 만났던 K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대뜸 전화가 왔다. 2년 만이었다. 학원에서 같이 재수했던 U와 술을 마시다가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면서. 약간의 취기가 스마트폰 너머로도 느껴졌다. “쌤, 진짜 감사했어요. 쌤 덕분에 힘든 재수생 시절을 그래도 즐겁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쌤, 진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사실 K는 워낙 성적이 좋은 학생이어서, 사실 코칭 시간에 학습적으로 전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자질구레한 일상 얘기와 나름 심각한 연애 고민 상담이 주였다. 감사와 고마움을 받을 만큼 준 게 없어서, “아니, 내가 뭐 해준 게 있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곧 입대한다는 U와는 그로부터 며칠 뒤 밥을 먹었다. U도 내게 고맙다고 했다. 아니 대체 뭐가... 너네가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간 건데...
가장 애착이 갔던 학생 중 한 명인 여학생 L은 대학 입학하고 나서도 매년 추석이나 설, 크리스마스 때마다 꼬박꼬박 안부 연락을 해왔다. 항상 밝은 성격 덕에, L과 코칭을 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더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던 학생. 올해 초에 L은 대뜸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가끔 선생님 생각이 나요. 누구보다 진심으로 잘 들어주던, 말 한마디 허투루 안 하던 선생님. 그 앞에서 더 진심인 말을 할 수 있었던 제가 생각이 나서 또 고마워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황송하고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아니야.. 나 그렇게 선생다운 선생은 아니었어, 얘들아...
이러나저러나, 내가 한때 누군가의 선생이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선생님 소리 들을 일 없이 살지만, 그래서 좀 철없이 살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예전의 학생들에게 나는 여전히 “쌤!”이다. 그래서 아주 허투루 살 수가 없다. 조금 게으르고, 조금 제멋대로일 수는 있지만 아주 비열하거나 저속한 짓거리를 할 수는 없는 거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문득 어디선가 “쌤!”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누군가의 선생이었다는 건, 때로는 불편한 눈칫밥이고 때로는 과한 자기검열이다. 하지만 그 덕에 조금 덜 부끄러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예전의 학생들이 언제고 “쌤! 밥 사주세요!” 연락이 와도 민망하지 않을 수 있는, 적어도 그 정도의 사람으로는 살아야겠다. 기왕이면 돈도 넉넉히 벌어서, 걔네가 먹고 싶어 하는 걸 마음껏 사줄 수 있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