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 가시의 은유
우스운 얘기지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나는 ‘갈치’가 아니라 ‘칼치’가 표준어인 줄 알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해산물을 싣고 골목을 누비던 봉고나 포터에서 들려오던 확성기 소리, 동네 백반집 메뉴판, 어딜 가도 ‘칼치찌개’, ‘칼치조림’이라고 했으니까.
출처 : http://blog.naver.com/korea6805/80209936721
여차 저차 해서 ‘갈치’가 표준어라는 걸 알고 난 후에도, 사실 ‘칼치’가 더 입에 붙었다. 실제로 칼치는 한자로는 도어(刀漁), 영어로는 Cutlassfish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어느 쪽으로 보나 갈치가 아니라 칼치가 맞는 것 같은데, 떠도는 썰로는 신라시대 때 ‘칼’을 ‘갈’이라 발음했었다고 하니, 썰을 믿어본다면 갈치나 칼치나 그 생김새 때문에 생긴 이름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기질이 게으른 탓인지, 나는 먹는 음식에 손이 많이 가는 걸 싫어했다. 야들야들하고 맛있는 닭날개와 닭다리를 포기하고서라도 순살 치킨을 먹는 놈이었다. 껍질 까기 번거로운 오렌지보다는 귤을, 씨를 뱉어내야 하는 포도보다는 씨 없는 포도를 좋아했다. 그러니 생선 요리가 아무리 맛있는 걸 알아도, 차라리 동그랑땡이나 계란 프라이나 먹었던 거다. 여러모로 번거로운 생선 요리를 굳이 상에 올려주신 부모님의 정성도 모르고, 나는 생선엔 손도 안 댔다. 특히 얇고 길기만 한 갈치구이나 갈치조림은 내 입장에선 정말 귀찮기만 한 메뉴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입으로는 꾸중하시면서도, 손으로는 열심히 살을 발라주셨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내 눈엔, 엄마의 살 바르는 솜씨는 가히 어떤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갈치 몸통 안쪽의 어디까지가 살이고 어디부터는 가시인지, 잔가시는 어디에 많고, 어느 부위 살이 더 맛있는지, 이미 다 꿰뚫고 있는 엄마의 수저는 훌륭한 발골사의 연장 같았다.
출처 : 먹고합시다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19545
나는 제 손으로 발라 먹긴 귀찮으면서도, 염치없이 엄마가 잘 발라둔 살은 맛있게도 먹었다. 대충 10번 정도 먹을 수 있는 살이 발라지면, 그중 4번은 내가, 또 4번은 동생이, 그리고 나머지 2번을 부모님이 나눠 드셨다. 가수 god의 ‘어머님께’ 노래 가사처럼 굳이 생선 하나를 두고 “엄마는 생선 별로 안 좋아해.” 같은 거짓말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니었는데, 부모란 늘 그렇게 제 몫을 다 챙기기 어려운 존재인가 보다.
아무튼 나는 순전히 그런 부모님의 노고 덕분에, 생선 맛을 알 수 있었던 거나 다름없다. 그중에서도 갈치구이의 맛이 가장 좋았다. 뭐랄까. 아주 거창하게 표현하면, ‘너무 좋은 건 한꺼번에 많이 누릴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 같은 걸 알려주는 맛이랄까. 굴비나 조기, 고등어 같은 생선에 비해 씹는 맛이 고소하고, 비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생선들처럼 한 덩이 크게 밥 위에 얹기엔 매번 조금 아쉬운 양이었다. 어쩌면 그 덕에 더 기억 속 갈치 맛의 여운이 진한 걸 수도. 다 크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대왕 갈치’ 란 놈은 살 한 덩이가 밥 한 숟갈보다 더 크기도 하던데, 그 시절 우리 집 밥상은 대왕 갈치가 눕기엔 조금 좁았나 보다.
출처 : 먹고합시다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20405
그런데, 가끔 엄마가 발라주신 생선살에도 가느다란 잔가시가 남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까탈스러운 나는 굳이, 굳이 그 잔가시를 손가락으로 빼내고 나서야 씹던 음식을 삼켰다. 자식 위하는 마음으로 살 발라주시던 엄마도 그 꼴은 보기 싫으셨는지, “그거 마, 그냥 씹어 먹어도 되는 긴데...” 하시면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살보다 가시가 더 많아 보이는, 엄마가 발라내고 남은 찌꺼기 같은 것들을, 우걱우걱 잡수셨다. ‘아주 맛있다’는 표정은 아니지만 ‘아무렴 어때. 아무렇지 않아’ 그런 표정으로, TV 속 뉴스를 보시면서.
본가에서 나와 살면서 잘 먹지 않게 된 음식들이 있다. 각종 나물과 과일, 그리고 생선. 특히 생선은, 정말 먹을 일이 1년에 겨우 몇 번, 손에 꼽을 정도다. 다른 건 돈 주고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여전히 게으른 기질 탓에 굳이 생선 요리를 사 먹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 서른에 ‘누가 살 발라주면 생선구이도 잘 먹을 텐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생선구이 말고도 먹을 게 많은 것뿐이다.
그래도 가끔, 갈치구이나 갈치조림은 생각날 때가 있다. 그 특유의 식감, 짭조름한 맛, 씹을수록 고소한 생선살, 아무리 잘 발라도 가끔 살에 섞여 있던 잔가시, 그런 ‘맛의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 거다. 그러다 보면 그 기억 속 엄마와 아버지의 말들이, 그때의 모습이 어떤 삶의 은유가 되어 서른의 나에게 찾아온다.
산다는 게, 늘 순살 치킨이나 씨 없는 포도, 누가 정성스레 발라둔 생선살 같은 것일 수만은 없다는 거. 우리는 늘 뼈와 씨, 그리고 가시를 마주하게 된다는 거. 아무리 조심해도 삶에는 가끔 잔가시가 끼어 있을 수 있고, 또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잔가시쯤은 대수롭지 않게 씹어 삼킬 줄도 알게 되는 일이라는 거. 나는 아직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버지는 되지 않았지만, 기어코 살보다 가시가 더 많은 삶을 ‘아주 맛있다’는 표정은 아니지만 ‘아무렴 어때. 아무렇지 않아’ 그런 표정으로, 우걱우걱 씹어 삼킬 줄 알아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거.
오늘 저녁엔 남포동 자갈치 시장에라도 가서, 생선구이를 먹고 싶다.
정성스레 살 발라내는 저녁을 먹고 싶다.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