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Apr 12. 2016

다시 너에게 젖을 때까지를

해류라는 숙명을 타고 오는 파도 같은 너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제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떠나는 이를 마음으로 잊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함께 했던 날들의 기억이 짙어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탓이고, 혹여나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하는 미련이 무거워 쉽게 발을 옮기지 못하는 탓이리라. 흘러갈 사람은 흘러가고 남은 사람도 제 갈길로 떠나야하는 인생이 어쩌면 그렇게 각자의 해류를 따라 흘러가는 바다와 닮았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떠나지 못했다. 바다의 밖에서, 그 아슬한 경계에서 젖은 발로 서있다. 너를 사랑할 때 내 인연의 모든 끈, 그 다발을 너의 손목에 묶었다. 굵고도 긴 그 끈의 끝자락에 나, 이렇게 서서 무거운 닻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로 어긋나 있는 것들도 살다가 한 번, 마주치는 날 있으니 다시 너에게 젖을 때까지를 우리 인연이라고 해도 될까. 다시 너일 때까지를 내 온 생애라고 해도 될까.



기다림

                                                                                                                                                                             해류라는 숙명을 타고 저기,

 니가 밀려온다
 흰 거품 물며 지친 기색 역력한데
 우리는 아주 잠시,
 서로 젖어볼 뿐이다
 종일 너를 닮은 다른 파도가
 해안선을 따라 지쳐 쓰러진다
 쓰러지며 떠내려간다
 
 다시 너일 때까지
 다시 너에게 젖을 때까지를
 우리, 인연이라고 해도 될까
 
 썰물 때 드러난 얕은 수심 속 맨 얼굴들을
 니가 빚어놓고 간 초상처럼 바라본다
 너는 또 얼마나 먼 곳까지 다녀와야 하니
 어긋나있는 것들도 살다가 한 번,
 마주치는 날 있으니
 
 다시 너에게 젖을 때까지를
 나의, 온 생애라고 해도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