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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2. 2016

나만 빼고 발랄한 세상

더딘 걸음과 짙은 그리움

  서로 다른 두 행성에 살던 존재가 만나, 하나의 다정한 마을을 이루는 일을 사랑이라고 하자. 그만큼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일이 사랑이니까. 그러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 다시 둘은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멀어진다. 숫자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멀고 먼 몇 광년의 거리가 겨우 몇 cm로 좁혀지는 것이 사랑의 기적이라면, 꼭 붙어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몰랐던 시절의 몇 광년보다 더 먼 사이가 되는 것은 사랑의 대가일 것이다.


  남겨진 이는 황량한 폐허가 된 지난 사랑의 마을에서 홀로 누추하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서서 미련스러워도, 시간은 흐르고 바람은 분다. 서로가 같은 계절 속에 지내던 날들. 떠난 이는 간데없고, 나의 계절은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걸어간다. 내 마음은 아직 처량한 가을, 추운 겨울인데 세상은 이내 봄이다.


  나만 빼고 발랄한 세상. 화사한 봄. 남겨진 이가 겪는 봄의 비참을 떠난 이는 알지 못한다. 발랄함이 이토록 치명적인 상처일 수도 있음은 알지 못한다. 눈밭에 함께 뒹굴며 얼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이 봄에 고드름 같은 기다림을 똑똑, 잘라먹는 그 기분을.



                                                                                                                                    

겨울
 
 지나간 사랑은 계절을 닮았다
 한 계절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내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린다


 겨울을 다 앓기도 전에
 봄을 겪는 비참을 너는 알까
 사랑을 잃은 자에게 밀려드는
 속절없는 발랄함을
 진창 되고만 눈밭에선

 아무도 연애하고 싶지 않을 테지
 
 아, 나는 정말
 네 곁에서 얼어 죽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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