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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Oct 12. 2018

겨우 이런 미래형 식사

미래에도 먹고 싶은 건

겨우 이런 미래형 식사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에는 선두(仙豆)라는 것이 등장한다. 아직 손오공이 원숭이 꼬리를 단 꼬마였을 때, 높은 탑에 사는 고양이 신선 카린에게서 처음 받아먹은 콩이다. 이 선두는 한 알만 먹어도 기력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 아무리 심각한 상처라도 순식간에 낫게 만드는, 그야말로 신선의 콩이자 묘약이다. 전투가 잦은 애니메이션에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드래곤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법하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정말로 저런 선두가 개발되겠지? 한 알만으로 식사도 되고 치료도 되는 간편하고도 효율적인 무엇인가가.’

물론, 선두가 필요한 순간이 있기는 하다. 출처: 나무위키.

‘미래형 식사’란 대체 무엇일까? 당장 인터넷 포털에 ‘미래형 식사’라고 검색해보니 허무하게도 플라스틱 통에 담긴 분말 시리즈가 튀어나온다. 물이나 우유를 섞어 걸쭉한 음료 형태로 마시는 식사다. 차라리 선두가 나왔다면 유년기의 추억이라도 즐겼을 텐데. 더욱 의문스러운 건, 미래형 식사 제품마다 따라붙는 또 다른 표현들이다. 간편 식사, 식사대용, 마시는 식사 등등. 겨우 이런 미래형 식사라니.


그래서 직접 먹어봤습니다


오늘 직접 그 미래형 식사를 먹어봤다. 코코아, 커피, 블루베리, 그레인 등등의 다양한 맛 중에서 커피 맛을 골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먹는 방식은 매우 고전적이고 단순했다. 분말이 담긴 플라스틱 통에 물을 붓고 잘 섞일 때까지 흔들면 끝. 2018년의 어느 아침, 그렇게 나는 미래형 식사로 한 끼를 해결했다.


특별할 것은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불만스럽지도 않은 맛이었다. 미숫가루보다는 달달했고, 미음이나 죽보다는 훨씬 묽어 씹을 것이 전혀 없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먹는 단백질 보충제처럼 위장에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영양 성분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비롯해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고루 담겨 있었지만 한 끼 식사라기에는 칼로리가 너무 낮았다. 다만 제조 과정부터 식사를 끝내기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간편함만은 최고점을 줄 만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식이 조절을 하려는 사람, 너무 바빠서 단 10분도 식사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정말 미래형 식사란 말인가.


식사가 아니라 식문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는 의식주가 있다. 입고, 먹고, 머무는 일. 이 세 가지 일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또 사람마다의 성격에 따라서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급소를 보호하려는 목적만으로 입는다면, 거적때기만 있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양식이 있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패션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비바람이나 막을 요량이라면 동굴로도 충분하겠지만, 인간은 공간을 구획하고 인테리어를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 곳을 꾸린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식사(食事)는 한자어 그대로의 ‘먹는 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하나의 식문화(食文化) 전체를 의미한다. 설날에는 떡국을 먹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는다. 아무 날에나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이지만, 생일날 먹는 미역국의 의미는 남다르다. 운동회와 소풍에 진하게 배어있는 김밥의 추억과 배고프지 않아도 먹곤 했던 장례식장에서의 육개장, 경사 때 으레 먹던 국수와 한 솥에 비벼 다 같이 먹어야 제 맛인 비빔밥까지.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먹어왔다.


어쩌다 우리의 미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런 미래형 식사가 성행하는 현상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정간편식을 넘어 조리 과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 대용식 CMR(Convenient Meal Replacement) 시장이 확대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출근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 수면 시간 부족한 수험생과 취준생, 부엌에서 요리한답시고 일 벌이고 싶지 않은 자취생이나 1인 가구 등등. 복잡한 식사의 과정에서 얻는 의미보다, 간편한 식사로 얻는 여분의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 이들에게 과학 기술의 발전이 선사하는 미래형 식사는 충분히 유용하다.


그러나 사람은 기술만으로 살지 않는다. 우리가 행복한 식사를 상상할 때 그곳에는 함께 하고픈 사람이 있고, 제각각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있다. 다정하고 차분한 조명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어쩌면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가 꿈꾸고 원하던 식사 장면에 작금의 ‘분말 가루 미래형 식사’는 없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으로 킨포크나 라곰을 검색하면서, 다른 손으로 가루를 탄 물을 마시는 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던 미래형 식사인가. 우리에게는 단순한 식사(食事)의 미래가 아니라 보다 행복한 식문화(食文化)의 미래가 간절하다.


때로 어떤 일들은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대체되지 않는 진정성을 품고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일 같은 것. 전화, 문자, SNS가 더 빠르고 편리하기야 하겠지만 가장 진정성 있는 방법은 굳이 먼 길을 걸어 상대방을 찾아가는 것이다. 가서, 직접 마주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먹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간편하고 효율적인 식사가 발명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 주는 식사의 진정성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드래곤볼의 선두가 개발된다 해도 나는 혼자 삼키는 선두보다는 함께 먹는 한 숟갈의 밥을 먹고 싶다. 갓 지어 뜨끈한 밥과 푹푹 끓인 김치찌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서로의 이야기와 한숨, 웃음, 그 모든 것들을 함께 먹고 싶다. 지금도, 먼 미래에도.


이 글은 논객닷컴 연재 칼럼 <위로의 맛>에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http://www.nongaek.com/news/articleView.html?idxno=46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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