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Mar 13. 2019

읽기의 인내심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보통 인내심이라고 하면 우직하게 무엇인가를 참고 견뎌내는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거나 포기하게 되는데, 인내심은 배우고 익혀야 할 것 중 하나로 믿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점에선 인내심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식으로. 


인내심의 사전적 정의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인데, 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즐거움이나 부푸는 행복감을 견디는 데에도 나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가령 취직이 되지 않아 낙담하는 친구 앞에서 나의 승진 소식을 덮어두는 인내심 정도는 필요할 테니까. 근질근질한 마음을 다스리는 인내심. 


나의 경우 여러 인내심 중에서도 특히 ‘읽기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글을 쓰는(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입장으로서 쓰기만큼이나 읽기도 나의 숙명이라, 아주 대단한 다독가는 아니어도 꾸준히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요즘은 에세이에 빠져 있다. 솔직히 말해 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해도 요즘 서점가에서 잘 팔린다는 에세이의 절반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거나 속 빈 위로, 정제되지 않은 감성,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읽는 책들이 아주 고상하고 고급스러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백영옥, 임경선, 김연수, 김중혁, 김소연 작가의 글이 좋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사례, 담담한 슬픔, 툭 던지는 유머, 햇살의 온도를 닮은 자연스러운 위로, 억지스럽지 않은 긍정. 나는 그런 글이 좋다. 


아무튼 오늘도 김연수 소설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과 작가 40명의 산문을 모은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를 읽는다. 분명 좋은 글인데 20분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견디기가 힘들다. 읽던 글에서 어떤 소재나 단서를 얻을 때도 있고 (굳이 거창하게 영감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문득 지금 써야 한다는 기분이 밀려들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렇게 내 읽기의 인내심은 순식간에, 속절없이 바닥나고 만다. 


지금도 그렇다.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이 글을 쓴다. 쓰고 나니 목적도 알 수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읽기의 인내심이 바닥이어서 좋은 점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부풀었을 때 지체 없이 글을 쓰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쓴 글이 이렇게 형편없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단점은 치명적이다.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을 행복하게 허비했다는 것만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행복에 대한 인내심만큼은 키울 필요가 없는 아닐까. 행복해지고 싶을 때 지체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인내심을 키우기만 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중요한 건 인내심의 종류를 구분할 줄 아는 것, 인내심의 정도를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참아야 할 때는 참고, 참지 않아도 될 때에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다. 


굳이 내 미약한 읽기의 인내심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마땅히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