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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4. 2016

겨우 글 따위나 쓰는 나를

겨우 그런 것으로 행복해지는 날들

  '능력'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곧 '자본'인 요즘이다. 때문에 나는 스스로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상념을, 허무와 후회를, 불안과 자책을 도저히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돈 되는 능력이라고는 조금 건강한 몸과 마음뿐이라, 땀 흘려 움직이며 동시에 웃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그에 응하는 돈을 번다. 그나마 전공을 살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요즘은 다행스럽다.


   간간이 글을 읽고 쓰는 일은 능력이라기보다는 더딘 습관일 뿐이다. 더군다나 그리 큰 돈이 되지도 못하니 손끝에도 뭉툭한 불안을 달고 지낸다. 짙은 밤. 피로한 좁은 방으로  새로 오픈한 치킨집에서 흐르는 최신가요가 꽉 들어차고, 해야 할 일과 하고픈 일의 간극에서 일시 정지해있던 내가 겨우 읽다만 시집의 귀퉁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그래도 행복이 부푼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통해 내 어쭙잖은 글이 조그만 잡지 한 페이지에 실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글이 우리 엄마에 대한 글이어서, 엄마가 주인공인 잡지를 선물해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일 년 전 최명희 문학관에서 부친 편지가 일 년 뒤 여자친구에게 도착했을 때. 문득 마주친 과거가 낭만적일 때. 잠들지 못하는 여자친구에게 요즘 읽는 시집의 시를 읽어줄 때. 그러다 잠들어 대답 없는 스마트폰 안 공간에서 미세한 잠결이 들릴 때. 뜬금없는 친구의 호출로 나가 다른 좋은 친구를 소개받을 때. 술 취한 친구가 어쭙잖은 내 글의 팬이라고 쑥스럽게 웃으며 말할 때. 지쳐서 일을 그만할까 싶은데 때마침 보름달이 환할 때. 같이 일하는 마흔 형님에게 달이 환하다고, 한번 보고 일하자고 말할 때. 그가 그런 거 좋다고 웃어줄  때.  


  아직, 겨우 이런 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을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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