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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r 28. 2019

취향 발굴

그럴듯한 취향, 그럴듯한 사람

     저격할 취향이 있다는 건


꽤 그럴듯한 취향이 있고, 그것을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유유상종이라고, 십수 년 전만 해도 나처럼 취향 따위에 무딘 인간들 주위엔 죄다 비빔밥처럼 아무 취향이나 가리지 않고 비벼대는 친구들뿐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인스타그램 10분만 돌아다녀도, 마음에 쏙 드는 취향의 저격 사례에 눈과 가슴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만다. 비록 인스타그램이 위장된 아름다움으로 넘쳐난다고는 해도, 눈요기 거리가 넘쳐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내게도 나름의 취향이야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방귀 소리라든가 삶은 계란의 익힌 정도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상태를 의미할 뿐이지, 남에게 드러낼 만한 스타일을 지닌 것들은 아니다. 애초에 방귀 소리 따위에 취향이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생각해보라. 과연 누가 궁금해하겠는가, 나의 방귀 소리를.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취향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혼자 품을 취향이 아니라 저격할 취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꽤 그럴듯하게 살아온 셈이다. 


     돈은 없어도, 애정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궁핍할수록 취향도 투박하고 가난해진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논리 정연하고, 그래서 씁쓸한 글이었다. 음식도 먹어본 놈이 잘 알고, 옷도 입어본 놈이 잘 입는다는 말처럼 취향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구축해가는 과정에 충분한 돈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기는 하다. 


하지만 풍족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취향을 찾아내고, 그것을 꾸준하게 내면화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비록 돈은 없어도 애정만은 넘치는 사람들. 그들은 돈 대신 발품과 수고로움과 성실함을 내세워 취향을 획득해낸다. 매번 음반을 살 돈이 없으면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들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던 부모님 세대의 학창 시절이나, 교보문고 대신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그마저도 빠듯하면 염치도 없이 졸업한 대학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지금의 나처럼. 그러다 보면, 차츰 자기만의 취향이라는 것도 윤곽을 드러낸다. 


     찾아 듣는 BGM,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노래들을 찾아 듣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찾아들은 노래가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그 노래 때문에 활자에서 느껴지던 감성이 방해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과정을 통해 정적뿐이던 독서에도 작가가 의도한 BGM을 깔아볼 수 있고,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는 유난히 구체적인 음악, 지명, 묘사 따위가 많은 편이라 찾아들어볼 노래가 많았다. 『상실의 시대』 일본판 원제이자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을 비롯한 비틀스 노래들부터 시작했다. 헨리 맨시니, 빌 에반스를 알게 되었고 퀸시 존스의 ‘데스피나도(Desafinado)’, 팔자에도 없는 바흐나 브람스의 연주도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비 내리는 밤 나오코의 방에서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하는 장면은 BGM이 깔리면 훨씬 더 극적으로 변한다. 마음의 상처를 부자연스러운 이야기 다발로 풀어내는 나오코를 위해 와타나베는 군말 없이 레코드를 걸어준다. 


「나는 처음 한동안은 적당히 맞장구를 쳤지만, 그러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나는 레코드를 걸고 그것이 끝나면 바늘을 올려 다음 레코드를 걸었다. 대충 다 걸고 나자 다시 처음 레코드를 걸었다. 레코드는 전부라야 여섯 장밖에 없었고, 사이클의 시작은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이고, 끝은 빌 에반스의 <왈츠 포 데비>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71page

이 부분을 읽고서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와 빌 에반스의 <왈츠 포 데비>를 연달아 들어본다. 경쾌한 밴드 멜로디 위에 얹히는 록 사운드의 비틀스로 시작해 그야말로 차분하고도 다정한 빌 에반스의 연주로 끝나는 사이클. 그 사이에 어떤 곡들이 이어졌을지 모르지만, 이 두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설 속 장면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극적으로 와 닿았다. 포도주의 취기와 빗소리의 낭만, 끝도 없이 내뱉는 이야기 더미 안에 숨겨진 나오코의 상처, 결국 터져버린 울음과 서로를 껴안은 밤까지. 그 모든 장면 내내 머릿속에선 두 곡이 번갈아 재생되었다. 


     찾아 듣는 BGM,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그런가 하면 김연수 소설가의 에세이에는 가수 故 김광석의 이야기와 노래가 자주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의 노래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김연수의 에세이를 읽을 땐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기쁨보다는 같은 취향을 만난 반가움이 더 자주 느껴진다. 가령, 『청춘의 문장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1989년 여름, 춘천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친구의 연애담을 듣는 장면에서도 김광석의 노래 한 소절이 등장한다. 대학 시절 운동권 서클이었던 친구가 같은 서클의 여자와 연애를 하다 들켜, 끝내 서클에서 쫓겨났던 기억. 이제는 헤어진 그녀를 생각하며 친구는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어쩌구저쩌구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적혀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김광석의 ‘기다려줘’이다. 혈기왕성하던 대학 시절, 구국의 신념마저도 저버릴 만큼 뜨거웠던 연애의 날들, 아슬아슬하고도 아련한 키스의 추억까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 이해하지 못할 것이 되어버리는 인생사. 결국,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취향은 발굴하는 것


책 속에 등장한 노래들을 찾아들어보는, 의외로 품이 많이 들지만 꽤 즐거운 습관 덕분에 내게도 그럴듯한 취향이 쌓여가는 것 같다. 이런 노력이 아니었다면 내가 무슨 계기로 빌 에반스라든가 바흐, 브람스의 곡들을 들어보겠는가. 거기다 똑같은 노래라도 스토리가 더해지니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맛과 멋이 있다. 故 김광석의 ‘기다려줘’라는 노래가 있는데 말이야, 소설가 김연수 알지? 그분 친구가 춘천에서 강릉 넘어가는 시외버스에서 운동권 활동하다가 사랑에 빠졌던 연애담을 추억하다가 흥얼거렸다더라고. 뭐 이런 식으로. 


사람은 각자 생긴 대로 살아간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서는 자기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챙기고, 외모를 가꾸고, 지식을 쌓는 일련의 활동처럼 취향을 만들어가는 일에도 노력과 성실함과 애정이 필요하다. 취향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발굴해내는 것이니까.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나서서 찾아보자. 보고 듣고 읽고, 또는 마시거나 입어보기도 하면서 꽤 그럴듯한 취향을 발굴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스스로가 꽤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  



이 글은 칸투칸 8F에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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