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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y 14. 2019

덤으로 주어진 17초

신호등이 점멸할 때

몇십 미터 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보일 때, 때마침 초록불로 바뀌고 이내 점멸하기 시작하면 나는 주로 뛰는 쪽이었다. 임박한 약속도 없고, 딱히 몸이 근질근질한 것도 아니면서. 기어코 뒤통수에 빨간불을 묻혀가면서 뛰었다. 초록 인간이 점멸하는 게 마치 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면 괜한 신호등 탓을 하는 것이겠지. 다른 일에는 느긋하면서 꼭 횡단보도에서만 조급증이 도졌다. 걷는 대신 뛴다고 시간이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증상은 약 20여 년 동안 지속됐다. 


스물에 아름이를 만났는데, 벌써 우리가 서른하나라니. 11년의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변해서 다행인 것들이 있다. 점멸하는 횡단보도 신호등을 보고도 더 이상 뛰지 않게 된 건, 변해서 다행인 것 중 하나다.

 

요즘은 웬만해선 뛰지 않는다. 혼자일 때도 그렇고, 아름이와 함께 걸을 땐 더욱 그렇다. 시기상 아름이와 연애를 하는 동안 변했을 텐데 콕 집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걷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걷다 보니 어느 날엔 몇십 미터 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보였을 것이고, 때마침 초록불로 바뀌어 이내 점멸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뛸까? 안달이 났다가도 일부러 맞춘 보폭이 아쉬웠을 것이다. 잡은 손이 이제 겨우 따뜻해졌을 것이고, 아마도 집에 바래다주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느긋하게 걸었을 것이다. 뛰는 대신 걷는다고 시간이 느려지는 것도 아닌데, 내심 느려지길 바랐을 것이다.


오늘도 집 앞 이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골목을 돌아서자 보인 신호등은 초록 인간 대신 17이라는 초록 숫자가 막 16으로 바뀌는 참이었다. 서둘러 뛰면 여유롭게, 잰걸음으로도 빠듯하게는 건널 수 있는 시간. 여느 때처럼 나는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화단을 거니는 길고양이와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보면서. 새삼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크게 심호흡도 하면서. 덤으로 주어진 것만 같은 17초를 천천히 흘려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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