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들에 대해서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해질 무렵만 되면 속절없이 우울했다. 겨울엔 오후 5시쯤, 여름엔 오후 7시쯤이었겠다. 저학년 때는 하교 후 친구들과 이리저리 쏘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을 테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학원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테다. 그 순간에 나는 보통 혼자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도 보도블록에 지는 땅거미를 눈치채거나, 문득 올려다본 하늘색의 채도가 낮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정환경이 불우하지도 않았고 교우관계에도 큰 탈은 없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삭제해버린 기억이 있거나 무의식의 영역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처 따위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서른을 넘긴 지금에 와선 그저 감수성이 풍부했다 정도로 넘길 수밖에.
중학생이 되고서는 그런 증상도 사라졌다. 생활 패턴이 바뀐 덕이라고 생각한다. 하교 시간이 늦어지면서 해질 무렵에도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왁자지껄한 하굣길, 세상이 조금 어두워져 간다고 우울할 틈이 없었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면 깜깜한 밤. 하루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해질 무렵의 우울을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놓쳐서 다행이다 싶은 게 있다는 것도 그즈음 배웠다.
언젠가 구토처럼 울음을 쏟아낸 적도 있다. 주말이었나, 아니면 조퇴를 했던가. 아무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Mnet이었던가, Mtv였던가, 모르겠다. 무슨 뮤직비디오였던 것 같은데. 신승훈이었던가.
그걸 보다가 갑자기 슬퍼졌다. 뭐야, 내가 왜 이러지. 당황해서 한 10분을 허둥지둥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해질 무렵이었다. 뻐꾸기시계가 조용했으니 정각은 아니고 5시 반쯤, 혹은 6시 반쯤이었을까. 처량한 하늘색을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누굴 잃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잊힌 것처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처럼 울었다. 엉엉 울다가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서 소파에 엎드려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그러면서도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멈출 줄 모르고 울음이 치밀어서. 이러다 엄마가 오면 뭐라고 말하지, 왜 우냐고 물으면 어쩌지.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속이 메슥메슥했는데 때마침 해질 무렵이어서 그랬다. 그렇게 말하면 안 믿어줄 텐데.
울음이 멎고 숨을 고르기까지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다행히 아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짓말처럼 울음의 자리는 말끔했다. 누가 목 뒤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끄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미친 듯 울었고 그보다 더 미친 듯 아무렇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퉁퉁 부은 눈두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다. 아, 그때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던가.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과 엄마가 왔을 것이고 아마 저녁을 먹었겠지. 아빠는 회사에 계셨을까. (격일로 일을 하셨다.) 모르겠다. 아무튼 왜 울었느냐는 질문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는 해질 무렵의 우울도, 영문 모를 울음도 없었다. 20살, 창이 서쪽으로 나있던 고시원 방에선 디지털카메라로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오는 동안을 촬영했다. 좁은 방에 누워 1시간 남짓 되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그걸 다 보고 나서 공책에 뭘 적기도 했는데, 몇 년 뒤엔 그 문장들이 시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해질 무렵의 하늘이, 그 하늘 아래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무뎌진 건가.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아니면 미련스러운 걸까. 어쩌면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 취향의 변화랄까.
하지만 어린 시절 느꼈던 해질 무렵의 우울은 분명했고 내가 쏟아냈던 울음도 위선이나 위악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그 시절이 그리운 것도 아니지만, 가만히 과거의 나를 기억하다 보면 괜히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울한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굳이 우울하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지만, 참을 수 없을 땐 그냥 울어도 된다고. 서른 즈음엔 그런 것쯤은 품어줄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있을 거라고. 어쩌면 그 우울과 울음 덕에 이런 글도 한 편 짓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