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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ug 12. 2019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와 동생은 8살 터울이다. 맏이인 나를 낳은 뒤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고, 엄마의 건강도 그리 좋지 않아서 미루다 태어난 동생이다. 그 사이에 여자아이를 입양해보려고도 해봤다는데, 남동생이 태어나서 다행이다 싶다. 만약 여동생이 있었다면, 나는 그 아이를 애지중지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했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내 동생을 홀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6월에 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고작 8살이었지만, 그래도 신생아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기엔 꽤 의젓한 편이었다. 동생은 정말 귀여웠고, 정말 잘 먹었고, 잘 웃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분유를 타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셀 수 없이 많은 뽀뽀를 해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동네 친구들도 내 동생의 형 역할을 자처해주었다. 같이 축구를 하고, 동생이 휘두르는 장난감 야구 배트에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같이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했다. 지금은 나보다도 훨씬 덩치가 커서 마치 산적 같은 외모지만, 유년기의 동생 사진은 지금 봐도 사랑스럽다.


미운 4살, 죽이고 싶은 7살이라는 말처럼 특정 시기에 발현되는 모난 성격을 제외하면 동생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으레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며, 약간은 떼도 쓰고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그렇게. 반자동 팽이 장난감인 탑 블레이드, 한국판 파워레인저인 벡터맨을 특히 좋아했다.


그중 벡터맨은 정말 이골이 날 정도로 자주 봤다. 본 걸 또 보고, 또 봤다. 볼 때마다 어린 동생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통통한 외모로 보아 동생은 ‘벡터맨 베어’가 분명했지만 자기는 곧 죽어도 ‘벡터맨 타이거’나 ‘벡터맨 이글’이어야 했다. (벡터맨 이글은 배우 기태영 분, 김성수 분이 맡았다.) 영상 속 벡터맨들의 액션을 따라 하려 촐랑대고, 정의감이 극에 달하면 가만히 앉아있던 나를 악당 삼아 발차기를 해댔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발음이 부정확한 편이었는데(후에 설소대 절제술을 받기도 했다.) 특히 벡터맨을 “파따슈”라는 이상한 단어로 발음했다. 놀라울 정도로 두 단어는 중복되는 자음과 모음이 하나 없는데도, 동생은 벡터맨을 파따슈라고 불렀다. 변신할 땐, “파따슈~이글!”이라고 외쳤다. 그 와중에 타이거, 이글, 베어는 왜 정확한 건데.


더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동생에겐 팥빙수도 “파따슈”였다는 것. 그나마 팥빙수와 파따슈 사이에는 중복되는 자모가 있기라도 한데, 어째서 벡터맨와 팥빙수가 같은 단어로 발음되었던 것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더운 여름의 주말, 아점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난 뒤 거실에 앉아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벡터맨을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는다. 나는 지긋지긋하고 동생은 신나는 순간. 엄마가 얼음을 갈아 빙수라도 해오는 날엔 동생은 ‘파따슈 먹으면서 파따슈를 시청하는’ 호사를 누리곤 했다. 


아무튼 그런 시절도 다 지나고, 동생은 나보다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엿한 성인이 됐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고, 직접 닭 숯불구이 가게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자영업 사장님들과 형님 동생 하며 허물없이 지내고, 친구들도 많아서 늘 바쁘다. 엄마 눈엔 늦둥이 동생이 여전히 못 미덥고 부족하게만 보이는 것 같지만, 동생은 분명 대견하리만치 잘 컸다. 벡터맨을 파따슈라고 불렀던 부정확한 발음은 이제 추억이 됐다. 동생에겐 지긋지긋하고 가족에겐 귀여운 추억. 


동생이 다 커버린 후로도 나는 운이 좋아 늘 주변에 어린아이들을 두고 살았다. 엄마가 아는 분의 아기, 20살 이상 터울 사촌 동생들, 그리고 봄이와 토리까지. 아름이 쌍둥이 여동생인 D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첫째 딸 봄이(만3세), 둘째 아들 토리(만1세, 17개월 25일). 지금은 우리 집과 D의 집이 도보 5분 거리라 일주일에 1,2번씩은 꼭 아기들을 본다. 보고 싶어서 만나면 너무 피곤해지고, 헤어지면 금세 또 보고 싶어 지는 봄이와 토리. 


첫째 봄이는 언행이 야무지고 특히 말이 빠르다. 타고난 성정도 있겠지만 엄마 D의 화법이나 독서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벌써 주체 높임법을 활용할 줄 알고 발음도 정확하다. 눈치가 빠르고 감정이 섬세해서 어른들의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을 감지할 줄 알고 ‘수영’과 ‘헤엄치다’를 구별해서 사용한다. 엄마인 D에게 “엄마, 나랑 토리랑 돌봐줘야 해.”라고 말해서 D가 돌봐주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돌봐주는 건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거야.”라고 대답할 정도다. 만 3세에 나는 무슨 말을 했던가. 기껏 해봐야 밥 달란 말이나 할 줄 알았을 텐데.


그렇게 똑 부러지는 봄이가 유독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일부러 안 하는 걸까?) 단어가 있다. 바로 TV. ‘텔레비전’이라고 하거나 ‘티비’라고 하면 될 텐데 꼭 “티리리비”라고 한다. 시댁이 가까워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자주 보낸 이유라면 ‘테레비’까진 이해가 되는데, “티리리비”라니. 몇 번을 그게 아니라고 알려줘도 봄이는 “아니야! 티리리비야!”라며 고집을 부린다. 그 단어에 꽂힌 이유가 뭘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봄이는 건강하고 밝고 사랑스럽다. 아직 ‘미운 4살’ 구간에 진입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으레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며, 약간은 떼도 쓰고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그렇게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다. 


잘 자라는 데 있어서, 내 동생의 파따슈나 봄이의 티리리비 같은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삶에는 정확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말들이 있고, 틀려도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는 법이니까. 그건 그 시절만의 고유한 모습, 어쩌면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지나고 보면 그게 모두 과정이어서, 있는 그대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요즘의 나는 무엇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며 살고 있을까. 완전히 틀려놓고 모른 체하고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줄까. 어쩌면 나는 나의 유년기보다 더 겁이 많아진 게 아닐까. 나의 파따슈, 나의 티리리비. 내게도 그런 마법 같은 단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성장의 증거가 되고 따듯한 추억이 되는.


      


서른과 어른을 위한 에세이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브런치 책방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1718


그 외, 책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구입처

교보 문고 :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87229254

반디앤루니스 : https://bit.ly/2QYkNnC

yes24 : https://bit.ly/2R1hEDK

인터파크 : https://bit.ly/2RaP9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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