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조카에게서 배우는 졸업의 의미
가끔 본가에 들러 동네 거리를 걷다 보면 어쩐지 낯익은 얼굴들을 스칠 때가 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괜히 서로 고개만 갸웃거리다 각자의 방향으로 엇갈린다. 곰곰이 기억을 뒤적이다 보면 대개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누군가일 때가 많다.
그런 날에는 새삼 동창들의 얼굴을 되짚어본다. 고등학교 동창은 꽤 선명하고 중학교 동창은 조금 흐릿하다. 윤곽만 겨우 남은 초등학교 동창 몇몇을 떠올리려 애쓰다가, 문득 무용하다는 생각에 관둔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의 얼굴들이 남아 있기는 할까 싶어서.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건,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전학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자란 김해에선 ‘동네 친구들’이 초중고를 통틀어 함께 성장했다. 반이 달라지고, 학교가 나뉘어도 동네 친구들과는 헤어진 적이 없었다. 서로의 치부와 방황과 연애를 지켜보며 가족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안다고 생각할 때쯤,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소년은 청년이 되고 연습뿐이었던 삶은 매 순간 실전이 됐다. 허구한 날 만나 축구를 하고 싸구려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도 하루가 뿌듯하던 시절은 끝나버린 것이다. 그나마 청첩장을 받으면 몇 년 만에 여러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기분은 어쩐지 싱숭생숭했다. 그 시절에 우리가 꿈꿨던 모습과는 모두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첫째 조카가 6살일 때, 처제네는 부산에서 양산으로 이사를 했다. 조카에게는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양산에서 다니게 될 어린이집도 부산에서 다니던 곳보다 훨씬 크고 쾌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기준이었다. 2년 동안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들과 하루아침에 헤어져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전학 가는 일이 조카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고, 큰 시련이었나보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조카는 며칠은 시무룩하다가, 또 며칠은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가,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동생에게 화를 내기도 했단다. 하루는 이른 저녁에 방에서 나오지 않는 딸이 걱정되어 처제가 살갑게 말을 걸었더니, “엄마, 새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쉽지 않아.”라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겨우 6살 아이가 그 말을 뱉기까지 얼마나 혼자 속앓이를 했을까.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관계 맺기 위해 나름대로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러고도 바라던 마음을 받지 못한 날에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의 친구들과 선생님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삶에서 그런 이별은 수없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나도, 아내도, 처제도 그 사실을 몸으로 익혔기에 목 놓아 서럽게 우는 6살 아이에게 “그럼 다시 예전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함께 들어가 딸의 관계 맺기에 간섭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그저 6살 아이가 스스로 이별을 수습하고 새로운 만남에 나서는 혼자만의 과정을 묵묵히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몇 주가 지났을까.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조카의 표정이 점점 편안하고 밝아지더니, 하루는 부산의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단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기 전이라, 처제에게 대신 적어달라는 부탁을 한 조카는 목을 가다듬고서 편지를 읊었다.
“친구들아, 나는 여기에서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쩌면 영영 잊어도 상관없을 과거의 인연에게 다정한 안부를 전하며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6살 조카가 이별을 배웅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조카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린이집을 옮겼을 때에 비해 훨씬 극적인 변화였을 텐데도, 조카는 큰 슬픔이나 방황 없이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함께 졸업한 친구들을 ‘동창’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려주니, 이모와 이모부도 졸업을 해봤냐고 천진한 질문을 던졌다. 4번, 5번씩이나 해봤다고 답했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카에게 졸업이 대체 어떤 의미였길래 그리 놀라는 걸까. 졸업이 뭔지 아느냐는 질문에 조카는 이렇게 답했다.
“모두 같이 모여서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우리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하는 거야.”
동창(同窓)의 한자어를 달리 읽으면 ‘같은 창을 바라본 사이’가 된다. 나는 나의 동창들과 어떤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봤을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 시절에 창으로 본 풍경의 대부분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다. 희망은 멀고 좌절만 수시로 발끝에 채던 날들을 거쳐 서른 중반의 어른이 되었다. 바라던 모습과 꿈꾸던 세상은 거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서글픈 어른.
그러나 아직 어린 조카에게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는 않다. 조카가 친구들과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그 풍경들은 마냥 신기루는 아니었으면 싶어서다. 조카는 나보다 더 멋지고 행복한 어른이 되어서 친구들과 웃으며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어코 어린 시절 꿈꾸던 세상과 만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