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꽤 많은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해 왔다. 서른을 넘기면서 1년에도 몇 번씩 결혼식에 다녀오곤 했는데, 서른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다녀온 횟수가 더 많았다. 친인척, 친구의 조부, 조모상과 부친상, 그리고 친구의 장례식까지. 돌이켜 보니 결혼식의 기억보다 장례식의 기억이 더 선명한 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쓸쓸한 길을 걸어온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장례식은 결혼식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결혼식장에선 멀끔한 옷차림으로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것 말곤 딱히 신경 쓸 일이 없지만, 장례식장에선 사소한 실수도 자칫 고인과 유족에 대한 무례함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듯, 장례식도 예고 없이 치러지는 일이라 부고 소식은 늘 갑작스러웠다. 옷차림이 마땅하지 않았던 이십 대엔 급하게 정장을 빌려 입거나 어두운 옷들을 골라 입곤 했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해 빈소에 분향이나 헌화를 하고 고인에게 재배를 올리는 것까진 어렵지 않은데, 상주와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상주와 맞절을 하며 표정으로 마음을 주고받거나 가끔 손을 꼭 잡는 것으로 애도를 표하곤 했다.
장례식장에서 먹는 음식에는 왠지 모를 비릿함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맛이 비리다는 건 아니고 목숨의 허망함, 삶의 비릿함이 신물처럼 올라와서 그랬다.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쉰 목소리, 젖은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이는 눈매, 황망히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뒷모습.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그런 장면들이 뒤꿈치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그 쓸쓸함이 며칠을 갔다. 특히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뜬 자식의 장례식장은 견디기 힘들 만큼 처연했다. 부모가 울부짖는 울음에 빈소의 촛불들이 헐떡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스물다섯에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 초등학교 동창의 장례식장에 조문 간 적이 있다. 골목에서 함께 술래잡기를 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던 친구였다. 장례식장에는 중학교 졸업 후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분향을 하고 재배를 올린 뒤 잠시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죽음이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고, 죽음을 실감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실신할 듯 통곡하는 어머니와 충혈된 눈으로 입을 꾹 다물고 서 있던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육과 육개장, 조촐한 밑반찬이 차려진 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서로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소주에 잔을 채웠고, 우리는 뭣도 모르고 잔을 부딪혔다. 눈치도 염치도 없는 그 소리에 죽은 친구의 누나가 퉁퉁 부은 얼굴로 애써 웃으며 “장례식장에선 건배하는 거 아니데이. 죽은 동생은 이해해 주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칸다.”하고 일러주었다. 그 뒤로도 몇 잔을 더 마셨다. 서로 의미 없는 근황을 묻다가 잔을 비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날 장례식장에 가득했던 상실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소리와 온도와 냄새가 온통 쓸쓸했다.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한동안은 죽은 친구가 그립고 궁금했다. 그러고도 몇 년이 더 지나는 동안 여러 장례식 다녀오면서, 이제는 고인보다도 유족들, 산 사람들의 일상이 더 걱정되고 궁금해졌다. 철없던 우리를 꾸짖는 대신 슬픈 와중에도 장례 예절을 알려주었던 친구의 누나는 어떻게 지낼까. 친구의 부모님은 아직도 자주 우실까. 이제는 예능을 보며 깔깔 웃고 맛집에서 음식 사진을 찍기도 할까. 가끔은 죽은 친구를 잊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을까. 주제넘지만 나는 그들이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산 자들 사이의 이별과 고인과의 사별은 다르다. 죽음은 재회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리움은 한없이 길어지는 일이니까.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없는 상실감은 온전히 회복될 수 없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상실의 방을 지으며 사는 건지도 모른다. 온전히 채울 수 없는 방, 채우려 할수록 더 허망해지는 방, 쓸쓸한 채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그런 방.
상실의 방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쓸쓸해지겠지만, 그 방을 품고도 살아내는 사람일수록 존재의 터는 더 넓고 단단하고 다정해진다. 헛헛한 상실의 방을 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길 때, 누구보다도 성실한 사람이 된다. 상실을 딛고 살아내는 사람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산 자의 성실한 삶이야말로 삶을 미처 더 누리지 못하고 떠난 고인을 존중하는 방식이 된다.
죽음 뒤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뒤편이 죽음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고인에게는 고인의 길이, 산 자에게는 산 자의 삶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