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의 최선은 종종 훗날의 최악이 되곤 한다. 심지어 그때만큼은 최상이라 여겼던 것들도 마찬가지다. 한껏 멋을 부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졸업사진일수록 다시 마주하기 힘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흑역사’는 지나치게 고양된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오직 시만이 문학의 정수라 믿었던 이십 대. 그 시절에 혼자 쓰고 읽고 울었던 ‘나만의 명시’들이 꽤 민망한 문장으로 남은 것처럼.
과잉된 자의식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었음에도, 과거를 돌이켜 보는 일에는 의심과 후회가 덧칠될 때가 많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말걸, 그때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런 생각을 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지만, 후회를 멈추기는 어렵다. 흘러가는 시간을 등지고 서서 닿지 못할 순간들을 몇 번이고 곱씹는 인간, 과거지향적인 인간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의 이십 대는 반성과 후회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과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늘 우유부단했다. 시를 쓰지 않은 날엔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돈이 없는 날엔 애인에게 면목 없었다. 등단도 취업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떠밀리듯 맞이하는 대학교 졸업식에선, 마치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도,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단했던 자아도, 남은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도 모두 끝난 것만 같았다. 세상이 끝나버린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계획과 노력 따위는 모두 부질없다. 나는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우울했다.
8년 동안 곁에 머물던 애인이 ‘글 쓰는 것도 좋지만 결혼하려면 돈 버는 일도 중요하지 않겠느냐’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글을 쓰지 않아야 한다면 너와 헤어지겠다’라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말로 받아치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삶의 균형 감각을 잃은 채로 비틀거리면서, 온갖 상념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어느 순간엔 ‘시’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하고 이기적일 수가 있었을까. 비겁함까지도 슬픔인 양 마음껏 겪던 날들. 내 이십 대는 나의 가장 길고 짙은 흑역사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아무리 과거에 집착하는 인간이라도 미래로만 향하는 삶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절망의 깊이에는 바닥이 있지만, 희망이 향하는 높이에는 끝이 없었다. 곁에서 꾸준히 희망을 말해준 애인 덕에 내 절망은 사그라들었다. 세상이 나를 등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나 하나만 뒤돌아서면 삶은 미래로 향할 수 있으니까.
서른 즈음에,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취직을 하고 집을 구했다. 11년의 연애 끝에 애인과 결혼을 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마음도 전혀 황량하지 않았다. 시적인 순간들은 매일 있었고, 그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만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손끝까지 차오르면, 노트북을 열어 떠오르는 문장을 적었다. 그건 반가운 얼굴을 맞이할 때 입가에 스미는 미소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그 문장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쓴 문장들을 엮어 책을 내기도 하고, 뜻밖의 기회가 찾아와 카피라이터 작업도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후에야, 과거에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하나씩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른 중반에야 비로소 과거의 흑역사와 이별할 수 있었다.
잊고 싶은 과거와 이별하는 일은, 과거를 없었던 셈 치는 것과는 다르다. 없었던 셈 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잊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다 잊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을 맞춰 떠나는 승객처럼 인사도 없이 의식의 뒤편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기억들은 잊으려 애쓸수록 기어코 쓸쓸한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결국 과거와 이별하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인정하는 일이다. 흑역사라는 치욕스러운 과거가 없었다면, 그것을 견디고 선 지금도 없다. 그러니 못나면 못난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두면 된다. 후회되는 것은 후회하고 뿌듯했던 것은 뿌듯해하면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득히 멀어진 ‘과거의 나’와 담담히 작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