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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9. 2016

소금 같은 별빛이 밑간을 하는 새벽

시는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시 쓰는 일에 가격을 매겨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늘 좌절한다. 시라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도 무가치한가요. 아무도 내 시를 위해 돈을 지불할 생각이 없잖아요.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시로 돈을 벌지 못한다면 노동으로 시를 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시를 벌기 위해 일 한다면, 나는 꽤 부자인 편에 속할텐데. 그런 생각 끝에 시가 아니라는 제목을 달고 시를 썼다. 이건 시일까, 시가 아닐까.                                                                                                                 


시는 아닙니다
 
노동으로 시를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계좌에는 단순한, 너무나도 단순한 시어들이 한 치 시적허용 없이 기록되고 나는 가끔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립니다.
 
소금 같은 별빛이 꽤 근사하게 밑간을 하는 새벽, 시 한 구절 못 벌어도 하루치 먹고사는 것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가끔 편의점에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먹을 것을 사기도 합니다. 씹어삼키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입에 시라니요.
 
아마도,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쓸 돈이 없다는 사실이 쓸 시가 없다는 사실보다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노동은 신성했지요.
 
밤은 원래 어둑한 것인데, 미처 별이 뜨지 못한 날은 유난히 앞길이 캄캄했습니다. 꺽꺽 입 벌리고 울어도 별은 끼니가 되지 못하는데, 미처 별이 뜨지 못한 날은 아득하게도 허기가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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