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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9. 2016

아쿠아리움의 상어

체념과 타협의 공간

고시텔에 살면, 굉장히 갑갑하다. 물론 처음엔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안락함도 있었지만, 사지를 한껏 뻗고 누울 수 없는 공간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원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6년 전쯤, 부산 아쿠아리움에 가본 적이 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 겸 갔었는데, 두 번 다시 가본 적이 없는 걸 보니 딱히 감흥이 있는 곳은 아니었나 보다. 다만,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상어. 어쩐지 '물고기'라는 앙증맞은 단어의 경계를 넘어버린 듯한 몸집과 위압감을 지닌 상어들이 아쿠아리움 유리벽 너머에서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어의 몸집만큼이나 넓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고시텔에 웅크리고 누워 문득, 그 날의 상어를 떠올려본다. 그 상어들은 자유롭다 느끼고 있었을까. 갑갑하지 않다고, 이 정도라면 이 아쿠아리움 속에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까. 현실 속 체념과 타협의 공간이 넓다고 해서 자유가 될 수 있을까. 




아쿠아리움
 
 충분히 큰 수족관이라는 거, 있기나 한 걸까
 굳이 바다가 아니어도 되겠다 싶은
 자유로운 구속 같은
 그러다 바다를 잊고도 살아지면
 그 상어를 상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아무리 수족관 유리를 닦는다 해도
 투명이 수면이 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하던
 갇힌 물결을 파도라 여겨야 한다고 말하던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되겠다 싶은 걸까, 너는
 외로운 애인이어도 괜찮은 걸까
 그러다 사랑받지 않고도 살아지면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상어는 의외로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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