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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Sep 05. 2016

맨발

맨 처음의 도약, 맨 처음의 넘어짐

 먼저 결혼한 여자 친구의 여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봄에 태어나서, 예명이 봄이. 원래 아기를 좋아하는 나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여자 친구와 봄이네로 간다. 험상궂은 외모 탓에, 볼 때마다 1,2시간씩 낯설어하며 울지만, 이내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는 그 미소가 좋아서 그저 즐겁다.


봄이가 태어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산후조리원에서 아주 잠깐 봄이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의 토실토실한 외모와는 달리 작은 몸통과 가녀린 팔다리의 봄이는, 그야말로 한 줌의 존재였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한 줌에서 시작했음을 믿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작고 부드럽고 연약했다.


혹여나 잠에서 깰까 싶어 조심스레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살짝 건드려보기도 했던 그때. 마치 입술처럼 말랑말랑한 봄이의 맨발, 그 발바닥을 만졌을 때.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직 한 번도 땅을 디뎌본 적 없는 그 맨발.


이 아기가 자라서, 이 여린 맨발로 우뚝 서는 그 날. 비로소 발은 한 세계를 딛고, 한 존재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생애 최초의 도약은 맨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야 비로소 넘어짐을 배울 것이다. 일어서는 것들은 쓰러지기도 한다는 것을. 쓰러지는 것들은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맨발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방황한다는 것을. 봄이는 그렇게 맨발로 삶을 배울 것이고, 나 또한 맨발로 배워가고 있다. 




맨발


기저귀 갈고 난 뒤 뻗치는 발바닥을 보며

아직 한 번도 땅을 짚어보지 않은

입술만큼이나 말랑하고

무구한 맨발을 보며


어쩌면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은 

생애 처음으로 온몸을 저 스스로 견뎌보는 일

작은 면적으로 커다란 한 존재를

일으켜 세워보는 일

땅을 밀어내며, 밀어내며

원하는 것을 향해 전력질주해보는 일

두려워 뒷걸음질 치다 쓰러져 울어보는 일

비 오는 거리 귀퉁이에서 젖은 발로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며 서있는 일

정처 없이 방황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그렇게 맨발로 세월을 밟으며 걷는 일


이 맨발이 지상에 첫 입맞춤 하는 날

비로소 족적이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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