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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Sep 07. 2016

지고 나면, 아침이야

지는 것들에 대하여

 휴학과 전과로 인해 길고도 길었던 대학 생활이 끝났다. 동기들은 일찌감치 졸업해 다들 바쁘게 돈을 벌며 살고 있다. 그들이 먼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가 싶었다. 조금의 악의 없이 축하해주었다. 그런 가벼운 태도의 배면에는, 나도 자연스럽게 저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글밥을 먹고살 것이라는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으므로, 아마 등단을 하거나 출판을 하여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리라.


 정작 졸업을 하고 보니, 내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란 건 없었다. 다음이 정해져 있지 않은 졸업은 처음이었다. 2년째 근무 중인 재수학원에서 수능 국어를 가르치는 일과, 아웃도어 브랜드의 콘텐츠 텍스트 제작하는 일을 겸하며 생활비는 벌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나 직업은 아직 아니다. 이제야 뉴스를 도배하던 청년 실업이 나의 일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자격미달의 청년일 뿐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문득 돌이켜본 내 지난 대학생활이 온통 실패와 패배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무수한 공모전 투고와 무수한 낙선. 겨우 두어 번의 당선. 신춘문예는 꿈도 못 꿀 형편없는 글솜씨. 분명 이기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이기는 날이 또 있을 것이고. 다만 지는 날이 훨씬 많았고, 훨씬 많을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내 이십 대는 온통 어머니들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지고만 있는 나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다. 새벽 내내 술을 마시고 토악질을 하며, 실패와 패배와 좌절과 그 비슷한 것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제멋대로 망가지는 날이 누군들 없었겠는가. 그러나, 매일 밤마다 저 달은 진다. 늘 패배하면서도 밤마다 달은 다시 뜬다. 새벽 내내 우리가 세상에게 지고 좌절하는 동안, 달도 환히 몰려오는 아침 햇살에게 지고 희미해져 간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아침이다. 진다는 것이 반드시 먹먹한 어둠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만 한 것은 아님을. 나는 달을 빌려서라도 잊고 싶지 않았다. 시를 쓰면서 나는 나의 등을, 또 다른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일어나, 아침이야. 비로소 아침이야.


 


아침이야


질 수 없다고 말했잖아

더 이상 그늘을 떼어먹고살 순 없다고

늘 그렇게 말했잖아

새벽 4시 반쯤

이틀 전 졸업한 너의 대학교

그 장엄한 문주에 기대어 오바이트를 하면서도

지지 않겠다고 질 수 없다고

세상에게 지고 싶지 않다고 

울면서 말했잖아


세상에 져본 적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는

철없는 위로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니

그저 너의 굽은 등을 두드리며

밤벌레의 시체들 그득한 가로등 불빛 아래

굽은 너의 상체가 드리우는 그늘을 보며

나는 동이 트는 하늘 아래 서있을 뿐이었지

문득 도로가 환해졌을 때


동굴 같던 지난밤의 출구에서

비로소 달이 졌구나, 하는 생각

지고 나니 비로소 환한 아침이구나, 하는 생각


매일매일이 지는 연습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그믐달이라도 뜬 밤처럼 떼어먹을 그늘도 한 점 없고

첫새벽에 빈 속을 게워내어야 할 것이라고

그렇게 남김없이 다 지고 나면

그믐달도 묵묵히 다 지고 나면

니 등을 두드리며 말해주고 싶었다


일어나, 아침이야

비로소 아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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