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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06. 2018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선 하나의 경계

시집 <다시, 다 詩> '골목의 내력' 中



 골목의 내력이란 결국 담과 담 사이의 고독이어서 담 너머의 소리나 냄새를 은근히 보관해두는 것 말고는 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다. 


 골목의 내력이란 또 배척과 배척 사이의 압박을 감당하는 다행스러운 틈이어서 그 바닥이 평평하지 못하고 항상 울퉁불퉁한 주름이나 골을 지니고 있다. 비 온 뒤 날이 개고 햇살이 따사로워 지상의 것들 모두 마른 몸으로 까슬까슬해질 때, 늦게까지 골목의 골에는 눈물처럼 빗물 담겨있는 것이다.


 골목이란 결국 상대적인 거라 큰 길이 들어서고 나서도 늘 어딘가에, 누군가의 마음에 문득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님이었던 사람들이 낯선 얼굴의 남이 되었다가 끝끝내 등 돌리고 돌아서면 그대로 굳어 담이 되니, 그 사이의 골목에서 하염없이 걷거나 울어보는 날들이 어김없이 몇 번씩 찾아오는 것이다.


 돌아보면 좁은 골목으로 어지러운 서로의 동네. 그 어느 어귀에서 당신과 내가 만나게 될는지. 헤매는 골목에는 노랗게 익은 가로등 불빛이 위로처럼 내려앉았다.



골목의 내력


골목의 내력이란 결국

담과 담 사이의 고독

비정한 배척의 벽, 그 사이에서

압사당하지 않으려 버티다가

좁게 쪼그라든 몸

그래서 골목에는 늘 

주름 같은 골이 파여 있다.

낮은 골목 한 켠

검버섯 핀 듯 녹슨 양철 대문을 열고

마른 나뭇가지 같은 노인 하나 걸어 나온다.

한 때는 장골의 어깨를 휘저으며

대로를 거닐었을 사내

그의 여위고 구부정한 등줄기는 이제

골목을 닮았다.

님이라 부르던 이들이 하나 둘

낯선 얼굴의 남이 되고

끝끝내 돌아서 굳으면 

그대로 담이 되어버리던 지난 세월


담과 담 사이의 골목을 따라

노인이 고독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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