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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10. 2018

여전히 우리는

10년이 지나도 이렇게

샤워하면서 내 얼굴 보기


샤워를 하면서 어쩌다 한 번쯤,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영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울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대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뭐 대충 이 정도면 어때’ 싶어 지는 것이다. 딱히 피부 관리를 한 적이 없어서 여기저기 여드름 흉터, 그리 쫀쫀하지 못한 모공, 콧등에 선명한 피지들까지. 불만스럽기로 마음먹으면 한도 끝도 없지만, 어쩐지 정이 갔다. 여태 이 얼굴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얼굴로 살아갈 테니까. 특별히 성형을 하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게 정말 내 얼굴인가, 이런 얼굴로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하고, 추잡스럽게 웃어젖혔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도 이런 얼굴로 계속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뭔가 잘못된 얼굴을 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때. 물론 거울에겐 잘못이 없으니, 문제는 전적으로 내 얼굴에 있다. 고등학생 때였나, 늦잠을 자고 일어나 급하게 씻고 나와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다가 울컥, 눈물이 났던 적도 있었다. ‘세상에, 왜 이 따위로 생긴 거야. 어제까진 이렇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내 인생 흑역사는 늘 현재 진행형!?


최근에 나는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지켜오던 70~75kg 몸무게 상한선이 무참히 깨졌다. 거의 9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는 L 사이즈를 XL 사이즈로, 32인치를 34인치로 늘렸고, 그렇지 않아도 큰 하관을 더 튼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과 인식이란 늘 스스로에게만 관대해서, 어쩐지 이 모습도 매일 보니 그리 충격적이지 않게 되었다. “야, 너 살이 많이 쪘구나.” 거울을 보며 마치 남의 일처럼 툭, 한 마디 던질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봄 아직 벚꽃이 만발했던 어느 주말에 다름이 네와 경주에 다녀온 뒤로 다시 나는 충격에 빠져야 했다. 경주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후에 그 사진들을 보는데 고등학생 때의 울컥함을 다시 느껴야만 했다. ‘이게 나라니. 이 따위 모습으로 잘도 벚꽃 구경을 하고, 웃고, 사진을 찍었단 말이지, 염치도 없이.’ 내가 내 얼굴에 당황스러워하는 동안, 아름이는 나를 위로했다. 이 사진이 이상하게 나온 거라고, 여기 이 사진은 괜찮지 않으냐고, 빈이는 잘생겼다고. 


그런데 아름이는 차승원, 공유를 좋아하고...


여기서 잠깐, 아름이가 좋아하는 배우를 읊어보자면 소지섭, 감우성, 차승원, 공유 등등. 그러니까 아름이가 나에게 잘생겼다고 말해주는 건 연애 9년 동안 정말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거나(사실 이 정도면 거의 실명 수준인데...), 마음씨가 참 곱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뭐, 어느 쪽이든 감사한 일이다. 엎드려 절 받기, 눈 가리고 아웅. 그렇다는 걸 다 알지만 그래도 아름이의 위로는 나를 안심하게 만든다. ‘아, 적어도 이 여자에게만큼은 (설령 그 말이 거짓이라도) 나는 괜찮은 남자인 거구나.’ 하면서. 


거울과 사진은 둘 다 내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어쩐지 거울은 때에 따라 내 마음대로의 인식적 왜곡이 가능한데 반해 사진은 그렇지 않다. 지극히 객관적이다. 변명이나 회피의 여지가 없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이 그랬다는 명백한 증거로서 사진은 가차 없이 나 스스로를 나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피사체가 괜찮은 외모를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얼짱 각도’를 찾고, 보정 효과가 좋은 카메라 어플을 사용해서 순간의 자신을 기록하는 건지도 모른다. 분명 내게도 보다 더 나은 각도가 있을 것이다. 칙칙한 얼굴색을 환하게 보정하면, 좀 덜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선의 각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 연인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나를 좋다고 말해주는 아름이의 노력이 새삼 대단하다. 어쩌면 연인이라는 게, 서로 최선의 각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런 관계 아닐까.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그런 와중에도 잘생기고 예쁜 구석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런 관계. 자기 눈의 보정 효과를 풀가동해서, 보잘것없는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관계. 가끔,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날에도 “괜찮아, 넌 여전히 너인데.”라고 말하며 사랑했던 날들의 기억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관계. 


물론 나는 운동을 하고, 살을 빼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를 것이다. 책을 읽고, 일을 하고,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스스로가 더 괜찮은 피사체가 되기 위해,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눈에 담는 모든 순간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장면이 될 수 있도록. 힘들고 슬픈 날들도, 시간 지나 돌이켜 보면 쓸쓸한 낭만일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기억들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어느 늦은 밤 서로에게 “괜찮아, 여전히 너는 너고, 여전히 나는 나잖아. 여전히 우리는 사랑하고 있잖아.” 위로를 건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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